장자 추수편에는 기(嗜)라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발이 하나밖에 없는 전설상의 기는 발이 아주 많은 지네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이 지네는 자신은 발이 너무나 많아서 발이 아예 하나도 없는 뱀을 부러워하였다. 지네는 자신의 너무나 많은 발이 부담스럽고 귀찮았던 것이다.
발이 하나도 없는 뱀은 자신은 계속 땅바닥을 기어 다니기만 해야 하니 기어서 다녀도 되지 않는 바람을 너무나 부러워했다. 뱀은 바람이 가고 싶은 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자신이 마구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 싫어서 가만히 있어도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눈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이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서는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을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마음은 자신은 다른 무엇보다도 전설상에 존재하는 기라는 동물이 가장 부럽다고 했다.
우리는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잘 모른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을 부러워할 뿐이다. 돈이 별로 없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돈 많은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여기저기 언론에서 떠들어 대니 너무 골치가 아파서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가난한 서민을 부러워한다.
우리는 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이 부러워하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얻게 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함을 알고 행복해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가면 또 다른 무언가를 분명히 부러워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 만족하며 사는 방법은 없을까?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지는 않은 것일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배웠으면 배운 대로, 배우지 못했으면 배우지 못한 대로, 힘이 세면 센 대로, 힘이 약하면 약한 대로, 그저 그 모습에 스스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추구하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정말 소중한 것까지 잃게 되지는 않을까? 나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일까?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서로 인정해 주고 받아 주는 그러한 것은 진정으로 불가능한 것일까?
존재는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 여기에 인간의 인식이 더해지기에 그 아름다움이 변하고 만다. 부러움은 그 인식의 필요 없는 부산물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