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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 울트라 마라톤 100km를 뛰고 나서

by 지나온 시간들

청남대는 예전에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이제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누구나 언제든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청남대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정말 아름답다. 눈앞에는 대청호가 펼쳐져 있고, 주위에는 산과 나무가 많고 조용하여, 마치 호수 섬과 같은 분위기를 안겨준다.


청남대 울트라 마라톤은 청남대 울트라 마라톤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하는 것으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 코스가 험하지만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가장 많은 마라토너들이 찾는 울트라 대회이다.


울트라 마라톤이란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 이상을 달리는 것을 말한다. 주로 100km 대회가 가장 많다. 100km는 사실 일반 마라톤 풀코스의 거의 2.5배에 해당하는 거리로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100km를 16시간 안에 들어와야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된다. 16시간이 어찌 보면 충분히 긴 시간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40~50km를 넘어서면 일반 사람들의 몸은 한계에 이르러 체력은 바닥이 나게 된다.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은 반은 걷고 반은 뛰면서 몸의 상태를 보며 가야 하기 때문에 만약 몸이 경기 당일 좋지 않다면 결코 끝까지 완주하지 못한다.


또한 오후 4시에 출발하여 밤을 새워가며 뛰어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들어와야 한다. 원한다면 밤에 잠을 잘 수도 있지만, 시간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밤새도록 계속 달려야만 한다.


이 대회의 코스는 청남대에서 출발하여 대청호와 속리산을 돌아오는 100km이다. 코스의 힘든 부분은 아무래도 속리산의 오르막길이다. 특히 초반 15km 부근의 염티재와 후반 80km 부근의 피반령은 4km 정도의 계속되는 오르막길이라 뛰어서 이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염티재 4km와 피반령을 4km를 넘는데 각각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 지점에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느껴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마라톤을 나가기 위해서는 훈련을 많이 하는 것이 정상인데 나 같은 경우 여러 가지 일로 바빠 훈련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름대로 시간을 내서 연습을 한다고는 했지만, 내가 훈련하고자 했던 시간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게다가 대회가 열리기 2주 전에 몸살로 인해 몸이 너무 아파 1주일 이상을 앓았고 그 와중에 대회 막바지에 훈련을 너무 하지 못해, 걱정이 많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울트라 마라톤을 뛰겠다고 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말렸다. 나이도 있고, 체력도 좋지 못하고, 너무 바빠 연습도 많이 하지 못해서, 완주는커녕 중간에 부상을 당할 수도 있으니 취소하고 그냥 가을 춘천 마라톤 풀코스에 나가라고 권유를 했다. 어찌 보면 합리적이고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포기하게 되더라도 뛰는 데까지는 뛰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대회가 있는 주간에 매일 연습을 좀 더 하려고 하였으나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어머니를 돌봐 드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틀은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훈련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어 마음을 비우고 하루만 연습을 했다.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 많은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대회 날이 다가왔다. 오전에 할 일을 하고 나서 오후 2시 넘어 대회가 열리는 청남대를 향했다. 청남대 근처는 도로가 2차선이라서 많은 차들로 인해 길이 너무 막혔다. 청남대에 도착하자 주차장은 이미 포화상태였기에 길가에 주차를 한 후 대회 본부로 향했다.


본부석에서 배번을 부여받아 옷에 부착하니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여 준비를 모두 끝낸 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또한 간단히 몸을 풀고 출발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식전 행사가 있고 난 뒤 오후 4시가 되었다. 출발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워낙 스피도도 없고 체력에도 자신이 없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뛰다 보면 완주를 할 수 없기에 내 페이스대로 뛰기 위해 대열의 후반에 위치해서 뛰기 시작했다.


일단 초반 15km~20km에 있는 염티재를 잘 넘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4km 정도 계속되는 오르막길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체력도 심하게 소비되기에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전체 레이스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염티재는 결코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이 고개 하나를 넘는 데 한 시간 정도가 더 걸린 것 같았다. 염티재를 넘느라 체력이 너무 소진되어 20km 이후부터는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넘었지만,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30km를 넘어서자 예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다쳤던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났던 다리가 아플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일찍 통증이 느껴졌다. 사고가 났을 당시 달리기와 등산은 하기 힘들 것이란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아프다는 생각을 하면 더 힘들 것 같아 아예 다리에 대한 생각을 끊었다.


출발한 지 4시간이 넘어서자 주위는 이미 한밤중처럼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국도라 해도 속리산을 가로지르는 도로이기에 차들도 드물고 기온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후레쉬를 켜고 달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대열은 분산될 대로 분산되어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힘겹게 몇 시간을 더 달리다 보니 50km 중간지점이 가까워졌다.


50km에 도착하니 이미 체력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 지점에서 식사가 제공되어 잠시 테이블에 앉아 본부에서 주는 밥을 먹었다.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갔는지 밥맛도 없었지만, 나중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거리를 도저히 달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식사를 최대한 빨리 마쳤다. 발이 너무 아파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먹었다.


이제부터는 정신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이 지점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몸도 지칠 대로 지치게 된다. 아주 특별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한계에 도달한다. 정신력의 여하에 의해 나머지 구간이 완성될 뿐이다.


무리를 하면 안 될 것 같아 페이스를 늦췄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를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오밤중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런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가서 잠을 자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계속 들면 결코 완주를 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생각하는 그 자체를 멈춰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생각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말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었다. 그렇게 힘겹게 조금씩 조금씩 달리기에만 집중했다.


대회의 최대 고비인 후반 85km~90km 사이에 있는 피반령은 말 그대로 마의 구간이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었지만,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아예 생각 자체를 접었다. 그냥 한 발 한 발 뛰는 것만 생각했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불가능할 것 같았던 피반령 정상에 도달하자 갑자기 없던 힘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이제 10km 정도만 더 달리면 결승선에 도달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에너지와 힘을 다 쏟아부은 결과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한숨도 잠을 자지 않은 채 달리다 보니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둡던 밤이 지나고 서서히 동이 터오고 있었다. 이제는 끝나는구나 하는 마음에 더욱 기운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00km를 달려 결국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록은 15시간 52분. 어찌 보면 나에게 있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뿌듯한 16시간이 그렇게 끝이 났다.


결승선에 도달하는 순간 완주를 했다는 그 성취감으로 나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비록 힘들고 어려웠지만, 끝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희열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전에는 몰랐지만, 마라톤을 직접 경험하면서 얻게 되는 것은 몇 가지 있다. 우선 사소한 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어차피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옳고 옳지 않음도 없는 것 같고, 내가 맞다고 주장 같은 것도 하고 싶지도 않고, 다른 이들의 주장에 대해 반응 같은 것도 별로 하게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차피 다 비슷하고 차이도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것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 마음이 편해진다. 별 차이도 없는 것을 따진다거나, 비교한다거나 하는 마음도 사라지는 듯하다. 경험이 커다란 스승임을 사뭇 느끼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아마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지식이 많거나 생각을 하더라도 그리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지만,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그 기분으로 내일을 살고 또 다른 도전을 하려고 한다. 삶은 도전이고 경험이며 뜨거운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날 울트라 마라톤을 위해 걸은 걸음은 정확히 143,317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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