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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Sep 16. 2023

세월을 이겨냈기에 생에 대한 미련은 없다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우리는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는 것일까?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지금 내 옆에는 누가 남아있는 것일까?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하지 못했던 무언가에 대해, 후회스러운 일들에 대해 아직도 미련은 남아있는 것일까?


  정지아의 <풍경>은 그 많던 주위 사람들이 다 떠나고 죽음을 앞둔 노모를 모시고 사는 나이 든 아들이 지나온 세월에 대해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일곱 살 때부터 그의 옆에 있었던 것은 어머니뿐이었다. 다섯 살 차이 나는 막내형이 있었지만, 형은 홀연히 집을 떠났다가 돌아와 잠시 머물렀고, 그럴 때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마을에 내려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머니가 밭일을 하면 어린 그는 밭 가장자리에서 꼬물거리는 벌레와 놀았고, 어머니가 밥을 하면 치맛자락을 붙들고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았으며, 몸이 여물기 시작하면서는 어머니와 함께 일을 했다. 그리고 늙은 뒤로는 그가 일을 하는 동안 노망든 어머니가 밭 가장자리에 멍하니 앉아 그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늘 곁에 있었고, 외롭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젊은 날 그는 무엇을 찾아 밤길을 내달리곤 했던 것일까.”


  아홉 명의 식구들 중 어머니 곁에는 막내아들만 남고 모두가 떠나버렸다. 자신들의 삶을 찾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렇게 모두 떠나버렸다. 늙은 어머니 곁에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인생에 대해 아무런 욕심도 없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원대한 포부도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우직한 막내아들뿐이었다. 그는 때가 되면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어머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는 삶에 대해 만족했다. 


  “하우댁이 마루에 걸린 시계를 보았지만, 시계는 아홉 시에서 멈춰 있었다. 언제 멈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해 뜨면 일어나 아침 먹고 해 지면 자리에 눕는 생활이라 굳이 시계를 볼 이유도 없었다. 달력조차 보지 않은 지 오래였다. 날이 풀리고 개구리가 뛰어다니면 곡식을 심었고, 그것이 쑥쑥 자라 땡볕에 열매가 익으면 따 먹었으며, 날이 추우면 군불을 지피고 방에 들앉았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궁벽한 산촌, 그중에서도 마을과 동떨어진 외딴집에서 하늘과 바람과 태양과 비와 안개와 더불어. 어머니와 함께 세상을 향해 열린 한 줄기 신작로를 바라보며.”


  노모와 나이 든 아들에게는 세월의 흐름을 알리는 시계마저 멈추어 있었다. 존재함으로 만족했기에 시간마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어지는 대로 살아왔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건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았다. 서로에게 어떤 것을 바라지도 않고, 다른 무엇도 기대하지 않은 채 그저 함께 존재함으로 더 이상 바라지 않았다. 


  “그리움도 원망도 모두 잊고 어머니의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얗게 비었다.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 먹을 것에 대한 탐도, 배설의 본능도 어머니는 잊었다. 그런 어머니의 목숨 줄을 질기게 붙들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는 때로 궁금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습관이리라. 먹고 싸는 본능마저 사라진 후에조차 버릴 수 없는, 기다림이라는, 평생의 서러운 습관. 노망든 어머니의 삼십 년은 기억을 쌓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잃어가는 시간이었다. 먹고 자고 싸는 몸의 습관을 모두 잊은 어머니는 기다림이라는, 마음의 습관마저 모두 버린 어느 날, 비로소 이승의 문턱을 넘어 한생 빌려 입은 고단한 육신을 편히 누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는 기억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수많은 일을 겪었기에, 그 많은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죽고 사는 것 빼고는 삶은 그저 그만그만한 것일 뿐이었다. 어제 지낸 것처럼 오늘을 지내고 오늘 지낸 것처럼 내일을 지내는 것이 삶의 전부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을 견디고 버티며 삶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내 새끼, 그래 한 시상 재미났는가?

그의 귀에 와 닿은 것은 분명 어머니의 음성이었는데, 순간 놀랄 시간도 없이 묵은 기억 하나가 기억의 어두운 심해에서 전기뱀장어처럼 하얀 불빛을 반짝이며 의식의 표면으로 꿈틀꿈틀 솟아났다. 

  어매, 나가 왜 세상에 나왔는 중 안가?

바삭바삭, 경쾌한 소리가 좋아 멍석에 깔린 콩대 위를 팔짝팔짝 뛰어 다니던 그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멍석 한켠에서 콩대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낭자한 머리에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쓴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왜 나왔는니?

  어매 뱃속에 있는디 되게 심심허잖애. 시상에 나가먼 먼 재밌는 일이 있능가 글고 얼릉 나와부렀제.

  아직 젊었던 어머니는 땡볕에 까맣게 그을긴 했으나 지금과 달리 윤기 흐르는 얼굴 가득 웃음을 피워 올리며 물었다.

  내 새끼, 그래 시상에 나와봉께 재미난가?”


  살아온 세상은 재미났던 것일까? 사랑했던 사람도 떠나고, 무언가를 크게 이루지도 못했고, 하고 싶었던 것도 다 하지 못했고, 바라는 것을 얻지도 못했건만, 그래도 살아왔던 이 세상은 재미있었던 것일까? 만나고 싶은 사람을 그리움만 지닌 채 더 이상 만나지도 못하고,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오지도 않음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재미있었던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누군가와 한 순간이나마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재미있었다고 착각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담요 한 장을 어머니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얇은 담요조차 이겨낼까 싶게 어머니의 어깨는 앙상했다. 그림자는 시시각각 짙어지는데 그는 밥할 생각도 잊고 어머니 곁에 다시 앉았다. 노망든 어머니가 하루빨리 가기를 바란 적도 없고, 오래 살기를 바란 적도 없었다. 해가 뜨면 새로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듯 곁에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을 뿐이다. 어머니는 어머니였고 세상이었으며 유일한 동무였다. 영원처럼 느리게 그러나 쏜살같이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아랫마을부터 기어 올라온 어둠이 어머니와 그를 집어삼키고 산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낡아 부스러질 듯한 두 개의 기둥처럼 어머니와 그는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아직 달은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면 손톱 끝만한 그믐달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 것이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그밖에 없었다. 살가죽밖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는 어머니에게 오직 그만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편하게 가시기를 소망하며 그는 어머니에게 담요를 덮어 드렸다. 그 험한 시간들을 함께 했기에 눈물이 나련마는 이제 눈물도 다 말라버려 흘릴 눈물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세월을 이겨냈기에 생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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