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량(岡兩)의 경(景)

by 지나온 시간들

햇빛이 있는 날 밖으로 나가면 내 그림자가 생기게 된다. 그림자를 자세히 보면 그림자의 안쪽은 짙지만, 바깥으로 갈수록 희미하게 보인다. 진한 그림자 부분을 한문으로 경(景)이라 하고 바깥의 흐릿한 그림자를 망량(岡兩)이라 부른다. 망량 즉 흐릿한 그림자를 다른 말로 그림자의 그림자라고 하기도 한다.


장자에 보면 이 두 개의 그림자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岡兩問景曰 曩子行 今子止 曩子坐 今子起 何其無特操與?

景曰 吾有待而然者邪? 吾所待, 又有待而然者邪? 吾待蛇蚹蜩翼邪? 惡識所以然 惡識所以不然?


망량(罔兩 : 그림자의 그림자)이 경(景: 짙은 그림자)에게 물었다.

“아까는 자네가 가더니 지금은 자네가 서 있고, 아까는 자네가 앉아 있더니 지금은 자네가 일어나 있으니, 어째서 그렇게 지조가 없나?”

경(景)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 그리고 내가 의지하는 것도 또 의지하는 것이 있어 그렇겠지?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뱀의 발이나 매미의 날개와 같다고 할까? 어찌 그런 까닭은 알고 어찌 그렇지 않은 까닭을 알겠는가?”

망량은 경이 하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니 경을 따라가야만 하는 망량이 불만이 생긴 것이다. 따라다니기 힘들어 죽겠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경 또한 자신이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자신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경도 망량처럼 자신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누군가를 의지하고 있었다.


경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망량과 경의 주인인 사람이다. 즉 사람이 앉으면 그림자도 앉고 사람이 서서 가면 그림자도 따라서 가기에 자신은 주인인 사람의 뜻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가는 바에 따라 경이 가고 경이 가는 바에 따라 망량이 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의지만 하기에 그것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자의 주인인 사람은 어떨까? 사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단독으로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다른 어떤 이나 다른 사물에게 무언가는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다. 혹시 혼자 농사를 지으면서 전원생활을 하면 의지하는 것 없이 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농사를 지으며 그것을 먹고 살지라도 그는 자신의 농사를 짓기 위해 햇빛도 필요하고 비도 필요하다. 즉 혼자 살더라도 햇빛과 비를 의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모든 사물이나 사람은 무언가를 어느 정도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재 나는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믿을 만한 것인가?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에 의해 나의 인생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의지하고 있는 그것이 나의 평생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


경은 말하고 있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뱀의 발이나 매미의 날개와 같다고 할까?”

자신이 사람한테 의지한 채 사람만 따라다니고 있는데 그 사람 또한 다른 무엇인가를 의지하고 있고, 그 다른 무엇도 또 다른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뱀의 발인지, 매미의 날개 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며, 그 의지하는 것이 정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뱀이나 매미 인지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근본적으로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것을 의지해서 오로지 그것만 따라다니고 있다는 뜻이다.


나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일까. 나일까.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면 지금 살고 있는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나를 의지하면 되는 것일까. 나는 나 자신을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 완벽한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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