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22년인 1589년 정여립 역모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이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 승려 출신이 많았고, 역모의 본거지가 계룡산과 구월산이어서 당시 불교계는 커다란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때 포도청에서 문초를 받던 무업이라는 자가 서산대사 즉, 휴정과 그의 제자인 유정을 무고한다. 감옥에 갇힌 서산대사의 의연한 태도에 선조는 그를 즉각 석방시켰다. 휴정의 비범함을 알아본 선조는 그의 시집을 직접 읽고는 감명을 받아 손수 휴정에서 시를 하사하고 그의 억울함을 위로한 뒤 산으로 돌려보낸다.
3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왜군은 순식간에 동래를 무너뜨리고 무서운 기세로 북상을 한다. 당시 조선의 군대 수준은 부역을 하다 전쟁이 나면 옷만 갈아입고 전투에 임하는 것이라서 수십 년간 내전을 겪으며 매일 전쟁을 벌였던 일본의 소위 “사무라이” 병사들과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조선군대는 왜군에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계속 패하기만 했고,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할 수밖에 없었다.
의주에서 선조는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를 위주로 불러들였고, 그에게 불교계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을 당부한다. 이에 서산대사는 온 나라에 있는 사찰을 통해 모든 것을 제쳐두고 나라를 위해 거병하자는 격문을 띄운다. 당시 서산대사의 나이 75세였다. 불교계의 모든 지지를 받고 있었던 서산대사의 격문은 온 나라 승려들의 마음을 울려 즉각 5,000명에 해당하는 승군이 조직된다. 당시 불교계는 위계 체계와 인적 조직이 조선군대보다 뛰어났다. 영규대사가 이끄는 승군은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나서 처음으로 조선의 승전보를 올렸다. 서산대사는 직접 1,500명의 승군을 이끌고 명나라 원병과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당시 명나라 제독 이여송마저 서산대사를 비롯한 승군의 활약에 감탄을 한다. 이렇게 2년의 활동 후 서산대사는 나이로 인해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할 수가 없어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 등에게 자신의 일을 맡기고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간다.
평생을 불교에 몸을 담아 수행을 하고 75세의 나이에 국가를 위해 자신의 할 일을 한 후 그는 다시 산속에서 그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가 쓴 “인생”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해탈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가 달관한 인생이 이 시에 녹아 있다.
<인생>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구인가?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구인가?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구이며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나?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말며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세상
있고 없음으로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거세도
지나가면 고요하고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세상 다 바람이라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오
줄 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오
내 것도 아닌 것을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 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잡아 둔다고 그냥 있겠소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일 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 펴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 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하늘도 있는 법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 게 있겠소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다만은
잠시 대역 연기하는 것일 뿐
슬픈 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 게 있겠소
기쁜 표정 짓는다 하여
다 기쁜 것만은 아니오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인생이 다 그런 거라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서산대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에서 삼국시대 원효대사와 고려 시대 지눌 대사를 잇는 가장 역사적인 불교계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묘향산에 돌아간 후 다시 수행을 하며 지내다 선조 37년 열반에 든다. 불교에 입문한지 67년 만이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시를 한 수 짓는다.
八十年前渠是我(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후아시거)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다.
위의 인생시와 아래 서산대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를 보면 인생은 실체가 없고 영원한 실체는 나일뿐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의 깊은 인생관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