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에필로그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다.
브런치에 아빠로서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항상 해왔던 고민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오픈해야 하는가였다. 특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라면 이것을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동의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들이었다. 그렇게 글쓰기에 신중해져 버리고, 쓰고 난 후에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고, 결국 서랍 속에 쌓여간 글들이 꽤나 많게 되었다. '이게 뭐 자랑이라고 이렇게 글까지 써서 남들에게 알리는가'에 대한 생각까지 겹쳐서 2년을 넘게 브런치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럼, 지금은 왜 다시 들어와서 글을 쓰고 있는가.
그렇게 힘들었던 첫째의 양육. 23년을 보내며 더욱더 힘들었다. 물론 그만큼 아이도 힘들었으리라. 학교에는 더더욱 흥미를 잃어갔고, 자퇴를 이야기하게 되었지만, 담임선생님의 노력으로 어찌어찌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대학에 전혀 생각이 없던 아이는 당연히 대학진학은 옵션에 넣지 않았다. 졸업식을 마친 후 이틀이 지난 어느 날, 자취할 방을 구했다며 우리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뭐랄까, 머리를 한 대 맞았다기보다는 그냥 어느 순간 멍하게 되었다. 그렇게 뭔가에 홀리듯 아이의 짐을 싸기 위해 가방들을 주었고, 짐을 옮기고, 사는데 필요한 집기들을 사주었다. 짐이 다 옮겨지고 냉기 가득한 첫째의 방을 보니 그제사 허무함과 서운함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이는 틈틈이 알바를 해서 보증금을 모았다. 그걸 가지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홀로 오피스텔 원룸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구한 집 부근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목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보증금을 더 모으는 것이 1차적인 목표인 듯했다. 나머지 가족들과 아이의 자취방에 갔는데, 나름대로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몇 년간을 부모와 마찰을 내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편하게 보였다. 내가 문제였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집에 와서 밥을 먹었고, 잠시 있다가 가는 것이었지만 우리와 떨어져 있는 만큼 아이와 우리와의 관계가 점차 회복되고 있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집에 있을 때 나는 강박적으로 부모행세를 하려 하지 않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바르기를 원했고, 다른 아이들과 같기를 원했고, 순종적이길 원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었을 아이에게 한 마디 더 덜했어야 했고, 한번 더 눈감아줬어야 했고, 있는 듯 없는 듯 서포트해줬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를 가진 주변 부모들에게 되도록 아이와 멀어지라고 말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 첫째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장인으로서 첫 출근을 했다.
예전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였고, 어느 날 스타일리스트 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외삼촌이 스타일링회사를 운영 중이라 그곳에 나가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단톡방에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이이지만, 어제는 먼저 출근하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거나, 사람들이 다 좋다거나, 연예인 누구와 하이파이브를 했다는 등의 첫 출근에 대한 소회를 남겼다.
여전히 아빠로서 아이의 사회생활이 불안하지만, 적어도 같은 나이대의 내 과거를 생각해 봤을 때 아빠보다는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에는 마음이 놓였다. 여전히 아이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아서 꾸준히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현재의 근황을 구구절절 적어봤다. 하지만 사실 이제 고1이 되는 둘째가 있고, 초4가 되는 셋째가 아직 남아있다. 지난 몇 년간 겪은 부모로서의 순간들을 더 긴 시간 겪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아이들의 성격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른 시간들을 선사할 거란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조금은 편한 길이었으면 항상 소망하고 있다.
아빠로서의 삶은 나에게 있어서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어렸을 적 아빠의 모습들을 계속해서 생각해내려 하고 있다. 또한 그때의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죄송스러운 마음도 꽤나 자주 든다.
다음 글이 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작가 지인의 '잘하면 출판할 수도 있거든요'라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말도 안 되는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던 브런치가, 어쩌면 아빠로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할 수 있는 일기장이 된 것 같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