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인계가 없다
내게 찾아온 두 번째 시련.
팀내에서도 여러가지 종류의 업무가 있기 때문에,
유난히 한 업무만 오래 했던 나도 새로운 일을 해야될 때가 왔다.
문제는 원래 그 일을 하던 동료가 순순히 그 일을 공유하고 싶지 않아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무난하던 회사생활에 고통이 찾아왔다.
사실 그와 나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매일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는 긴 시간동안
근거리에 앉아 가끔 사담을 나누기도 했고,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고,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나눠 먹기도 했고, 누군가를 함께 욕하기도 했다.
모든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야 든 생각은,
그와 내가 이전에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같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구나 싶었다.
본인의 업무에 대해선 개뿔도 모르면서 자기보다 연차가 높다는 이유로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그 역시도 납득하기 힘들었을거다.(라고 처음엔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는 툴툴 대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턴 사적인 이야기를 전혀 공유하지 않았으며 말에는 가시가 돋혀있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통해 그가 절대 인수인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가 왜 인수인계 해줘야 하죠? 맨땅에 헤딩하듯 알아서 하라고 해요.
저도 그렇게 업무했으니까."
어쩐지...
뭘 물어봐도 시큰둥 하더라니. 하하하.
차라리 내가 신입사원이었다면 혼나면서라도 배울텐데
나는 그보다 연차가 높은 선배였고, 딱히 지랄맞은 인간도 되지 못했다.
대놓고 일 좀 알려달라고 말하기엔 자존심이 너무나 상했고,
그 역시 일을 가르쳐주겠다는 의지는 1도 없었다.
그가 가시를 한껏 장착하고 찔러댈 때 쉴새없이 옆구리가 터지곤 했다.
적당한 물렁감도 아닌 완벽한 홍시였구나 나는.
그는 내게 존댓말을 썼다.
그러나 말에 예의와 배려는 없었다, 그저 높임만 존재할 뿐.
나는 업무를 모르니 큰소리를 낼 수 없었고,
오로지 그의 눈치를 보며 업무를 습득하는 거 말곤 방법이 없었다.
매일이 너무 괴로웠다.
출근 전 메일함을 열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미리 대비할 수 있으면 대비라도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관련 업무메일이 없다면 마음이 편안했고,
메일이 와있다면 숨이 턱턱 막히고 출근길이 막막했다.
그렇게 혼자 업무를 익히지 않으면 안되게 되자, 제일 먼저 교보문고 사이트를 뒤졌다.
해당 업무 관련 서적을 찾았고, 선배들의 노하우를 찾을 수는 없을지 블로그를 뒤지며 헤맸다.
▼당시에 업무를 습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흔적들
신입사원이 업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방법|업무 레벨업 하기
약 2년여간 그 업무를 하고, 현재는 업무가 또 변경되어 그와는 완전히 다른 업무를 하고 있다.
내가 그의 업무를 뺏고 그를 퇴사시키려는 목적이 아니었음을 그 역시 알텐데,
먼저 해본 사람으로 일 좀 가르쳐주는게 뭐 그리도 어려운 일이라고, 그는 그렇게까지 모질었을까.
조금만 알려주면 되려 그가 휴가때 나는 더 많은 일을 대직해줄 수 있고,
그도 맘 편하게 휴가를 다녀오고 할 수도 있었을텐데.
내가 그 업무에서 손을 떼기 무섭게 다시금 나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는 그.
사회적인 페르소나를 9년간 잘 정비해왔기에 나 역시 웃는 얼굴일 수는 있지만,
나는 더이상 그에게 요만큼의 마음도 남아있질 않다.
그 웃는 얼굴을 마주보고 견디긴 힘들어졌다.
얼마 전 읽은 송길영 작가의 책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기치않게 다가오는 선물과 같은 행운을 삶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취해야 할 자세는 '친절하라'이다. BE KIND!
그녀의 질투? 속좁은 대장놀음? 아무짝에 쓸모없는 일 틀어쥐기?
어쨌든 그러한 지난 시간 나는 잘 버텨왔다.
나는 끝끝내 친절할 것이고, 치졸하지 않겠다 다짐한다.
내게 찾아올 선물과 같은 행운을 기꺼이 받기 위해서다.
어딘가 나와 같이 터지는 중인 홍시들에게, 오늘의 글을 전한다.
물렁이들 화이팅입니다, 우리의 친절함의 끝은 꽤 근사할 것이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