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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눈의 부사수

맑은 눈의 부사수

by 오와나

부사수 친구는 정말 눈이 맑았다.

한 예능에서 MZ 세대들의 행태를 비꼬는 듯

과장하여 보여주는 그 모습이 언뜻 스쳤다.


0000179043_001_20230131150201475.jpeg 저 말씀이신가요? (출처: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408/0000179043)


사실 그는 처음 들어오자마자 나와 일을 하진 않았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자의 마음으로,

음... 저 친구는 일을 참 MZ 스럽게 하는군...

했던 것 같다.

그의 사수가 퇴사를 하고 어쩌다 보니 나와 2인 3각 경기를 하듯,

한 몸처럼 일을 하는 위치가 되어 있었다.



그는 나와 하게 된 일이 버거워 보였다.

그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지만,

내가 손 놓고 그가 혼자 해내기만을 기다렸다간

일을 결국 제시간에 끝낼 수 없겠구나 하는 불안과 걱정이 앞섰다.

나도 사실은 죽어라 야근하면서 버티고 있던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매일 울상으로 앉아서 일을 하다가

나와 살짝 눈이 마주치면,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짓는데,

나는 그 표정을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서류 줘봐요. 내가 좀 할게."


그의 일을 쭉 받아다가 도우며 야근하던 어느 날,

8시쯤 지났을까?

내 뒤통수에 꽂히는 소리.


"대리님,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뭐라고?

나는 지금 너의 일을 하고 있는데,

너는 집에 간다고?


물론 속으로 생각했다.

겉으로 말하지 못하고 어버버 하게 그를 집에 보내고 나니 현타가 왔다.

잡았어야 했나?

나도 야근하는데 너는 왜 가냐고 따져 물었어야 했나?



다행스럽게도(?)

내게 일 떠넘기고 팔랑팔랑 나비처럼 날아가던 일은

여러 날 지속되진 않았다.

사실 그날도 이르게 퇴근한 게 아니고,

분명 자기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대개 나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많은 상황 속에서 한다.

모든 상황을 내가 훤히 들여다볼 수 없고,

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

물론 안정적인 상태에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도

나 역시 힘들었기 때문에 자꾸만 곱씹게 되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후배직원이 늘면서

고민이 많을 때쯤 읽었던 책이 한 권 있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일을 잘 맡기는 기술>이라는 책인데,

그 책을 읽고 썼던 후기를 다시금 들여다봤다.

"개개인은 모두 다르다."라고 썼었구나...


그래.

하나의 상황에만 매몰되서 프레임을 씌우지 말자.

개개인은 모두 다르고,

나의 맑은 부사수 역시 자기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자.


(다짐은 일단 해보는데, 앞으로도 쉽진 않겠지?... 하하)


▼일 맡기고 싶은데, 난처하다면 이 책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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