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의 부사수
부사수 친구는 정말 눈이 맑았다.
한 예능에서 MZ 세대들의 행태를 비꼬는 듯
과장하여 보여주는 그 모습이 언뜻 스쳤다.
사실 그는 처음 들어오자마자 나와 일을 하진 않았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자의 마음으로,
음... 저 친구는 일을 참 MZ 스럽게 하는군...
했던 것 같다.
그의 사수가 퇴사를 하고 어쩌다 보니 나와 2인 3각 경기를 하듯,
한 몸처럼 일을 하는 위치가 되어 있었다.
그는 나와 하게 된 일이 버거워 보였다.
그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지만,
내가 손 놓고 그가 혼자 해내기만을 기다렸다간
일을 결국 제시간에 끝낼 수 없겠구나 하는 불안과 걱정이 앞섰다.
나도 사실은 죽어라 야근하면서 버티고 있던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매일 울상으로 앉아서 일을 하다가
나와 살짝 눈이 마주치면,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짓는데,
나는 그 표정을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서류 줘봐요. 내가 좀 할게."
그의 일을 쭉 받아다가 도우며 야근하던 어느 날,
8시쯤 지났을까?
내 뒤통수에 꽂히는 소리.
"대리님,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뭐라고?
나는 지금 너의 일을 하고 있는데,
너는 집에 간다고?
물론 속으로 생각했다.
겉으로 말하지 못하고 어버버 하게 그를 집에 보내고 나니 현타가 왔다.
잡았어야 했나?
나도 야근하는데 너는 왜 가냐고 따져 물었어야 했나?
다행스럽게도(?)
내게 일 떠넘기고 팔랑팔랑 나비처럼 날아가던 일은
여러 날 지속되진 않았다.
사실 그날도 이르게 퇴근한 게 아니고,
분명 자기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대개 나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많은 상황 속에서 한다.
모든 상황을 내가 훤히 들여다볼 수 없고,
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
물론 안정적인 상태에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도
나 역시 힘들었기 때문에 자꾸만 곱씹게 되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후배직원이 늘면서
고민이 많을 때쯤 읽었던 책이 한 권 있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일을 잘 맡기는 기술>이라는 책인데,
그 책을 읽고 썼던 후기를 다시금 들여다봤다.
"개개인은 모두 다르다."라고 썼었구나...
그래.
하나의 상황에만 매몰되서 프레임을 씌우지 말자.
개개인은 모두 다르고,
나의 맑은 부사수 역시 자기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자.
(다짐은 일단 해보는데, 앞으로도 쉽진 않겠지?... 하하)
▼일 맡기고 싶은데, 난처하다면 이 책 꼭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