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7급 공무원'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다양한 직렬의 7급 공무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국가정보원에서 일하는 7급 공무원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다.
한창 취업준비를 할 시기에 그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나는 그게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이라 확신했다.
국정원 준비하는 수험생용 학원이 따로 있다는 거 아시는가.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창 국정원 대비반에 들어가고 싶어 상담도 받으러 다니고 그랬었다.
꽤 많은 양의 공부가 필요했던 터라 취업을 더 미루고 공부에 매진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국정원 요원이 되면 미래의 남편한테 직업을 숨겨야 하나 솔직히 말해야 하나 나름의 고민도 했다.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할 것을...)
그 이후의 일어났던 일들은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시험의 문턱 앞에서 지레 겁먹고 어영부영 후진하다 일반 취업시장을 두드리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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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학에 입학해서 얼레벌레할 때,
소위 '잘 나가는 회사'에 다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현대, 삼성, SK 등등 현직에서 일하는 선배들이 고민상담도 해주고,
일명 '이렇게 해야 여기에 입사한다 애송이들아'의 시간을 가졌더랬다.
회사에 들어가야지 마음먹고 취업준비를 시작할 때는 나도 그런 선배가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고,
취준이 길어지자 이름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회사에 이력서를 넣으면서
제발 밥벌이만이라도 하게 해 주세요
날 좀 뽑아줍쇼 라고 빌고 있었다.
그렇게 내 밥벌이만큼은 제대로 해온 지난 10년.
섹시한 직업 그 자체였던 국정원 요원은
세월의 풍파에, 정치적 알력 행사에, 어느새 댓글부대로 폄하되기도 하고,
꿈 많고 욕심 많던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저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이 제1의 임무인 것처럼 살아가는 한 명의 작은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그럴 거다.
내 꿈은 회사원이야, 그래서 성공한 회사원이 되었어!라는 걸 꿈꿔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우리 아들 삼성 다녀' '내 딸이 현대 다니잖아~'가 되면 좀 낫고,
구구절절 무슨 회사인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
나 같은 회사원은 좀... 처량하다.
10년을 이직없이 한 회사에서 주어진 일들을 참으로 열심히도 했다.
주어진 건 다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말근무도 야근도 불사하고 일을 했다.
딱히 누구에게 잘 보이려거나, 이 회사에서 임원이 되어야겠다는 욕심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내게 주어졌기 때문에 나는 해낸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나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인원들의 권고사직을 지켜볼 때
죽을 둥 살 둥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버텨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꿈 찾아가지 못하고 그저 그런 회사원으로 사는 삶을 선택한 자의 최후인가 서글퍼진다.
그치만 돌아보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원으로써 살고 있다.
지금 모습이 어떨지언정 다들 시작엔 꿈도 있고 로망도 있었을 거다.
10년 차에 맞이한 다양한 위기 앞에서 내 꿈을 따라갔다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나는 더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불가능한 if를 생각하며 조금은 괴롭기도 하고, 조금은 합리화를 해보기도 한다.
생각 많은 나는 또 한바탕 생각만 하다가 내일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테지.
내게 주어진 일은 또 해내고야 마는 나니까.
어디선가 그런 말을 본 적이 있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떠 지옥철을 견디며 출근하고
5일을 꼬박 일하다가 주말에 이틀 반짝 쉬고 다시 열심을 다하는 삶이 결코 쉽지 않다고.
어쩌면 우리 회사원들은 매일매일 어려운 일들을 해내며,
스스로 밥벌이를 할 줄 아는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