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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내의 정치질

정치는 아무나 하나

by 오와나
정치질 : 정치(政治)에 접미사 질이 붙어서 생긴 파생어이자 비속어로, ~질은 주로 특정 행동을 비하하는 뜻이다. 정치질이라고 하면 권력 및 지위 및 이권 획득을 위해 선동과 날조, 분탕 등을 하는 행위 즉, 공정하지 않은 이권 투쟁의 뜻으로 주요 사용된다.
출처 - 나무위키


회사에 믿고 의지하던 상사가 있었다.

그는 완벽주의자였고, 모든 일을 원칙에 맞게 처리했다.

놀라웠던 것은 원칙적인 업무스타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정확히 파악하고 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에 오랫동안 고여있었지만 썩지 않았고, 늘 새로운 물이 샘솟는 샘물 같았다.

모르는 것을 들고 가면 명쾌했고 간결했다.

그의 완벽주의에 상응하는 아웃풋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때론 힘들었지만

틀리지 않는 것들이라 달리 할 말이 없었고, 군소리 없이 요구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checklist-9210780_1280.png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했던 나의 상사 ⓒpixabay


여기까지 묘사된 그의 이미지만 떠올려도,

그는 부들부들 휘어지는 갈대보단 곧게 하늘로 솟구치는 대쪽 같다는 걸 쉽게 예측할 수 있다.




10년 차가 되니 비로소 깨달은 것은,

회사생활에는 대쪽보다는 갈대가 좀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회사의 윗사람들이 보기엔, 일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하는 것은 그냥 디폴트 값인 것 같다.

그 수준 이상으로 일을 더 잘하거나 완벽하게 하는 모습은

어쩌면 정치질에 길들여진 윗사람일수록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원래 예부터 썩은 임금이 있던 썩은 나라에선 직언을 하는 충신들은 모두 참수당하고, 간신배들만 남아 나라의 패망을 함께 하지 않는가.


캡처.JPG 그러하다.


나의 대쪽 상사는 부당한 일에는 위아래 할 것 없이 싸웠고, 맞다고 생각되는 일은 밀어붙였다.

그 사이에 그가 일을 너무나 잘한다는 명성은 쌓였고, 이 팀 저 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답이 다 나옵니다 하는 대상이 되었지만, 그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에겐 눈엣가시, 제거 대상 1호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끝내 굽힐 줄 몰랐던 그는 시원하게 회사를 박차고 나갔다.

누구보다 일할 때 진심이고 신나 보였던 그였으면서 가끔 내게 수줍게 자기의 꿈은 사실 파이어족이라고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나가면서 '회사는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때론 정치질도 필요해.'라는 말을 쓸쓸히 남겼다.



'정치질'은 공정하지 않은 이권투쟁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회사는 공정해야 하며 본인의 일을 하는 곳이지 이권투쟁을 하는 곳이 아닌데,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다녔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던 모양이다.

끝내 공정하게 열심이었던 사람들은 사라졌고, 이권을 갖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만 남아있으니,

글쎄, 회사라는 큰 배에 탑승한 나는 목적지까지 순항을 할 수 있을까.

중간에 자신 몫의 구명조끼를 노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밀려서 바다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지.

아, 바다여. 아직 나는 수영을 못하는걸요...


'정치도 업무야, 그걸 잘하는 것도 능력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 자체가 끝없는 정치질로 뒤범벅되어 있다.

주어진 자원은 한정적이라 내가 가지면 남은 못 가지는 법이어서 이권투쟁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입사한 수많은 직원들 중 임원이 되는 건 극소수라, 그 자리까지 가려면 결국 일+정치의 콜라보만이 자리를 보전하며 올라갈 수 있으니 '정치=능력'인 것도 영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 능력은 제대로 키워지지 못한 듯하다.

10년을 대쪽 상사 밑에 있어서 그런지,

내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만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 배웠으니까.

그리고 천성도 한몫할 테고. ㅎㅎ




내게도 천둥벌거숭이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덧 회사 내의 정치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다니.

나도 제법 머리가 큰 회사원이 된 듯하다. (정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다.)

갈대와 대쪽, 그 중간 어디쯤을 헤매며 오늘도 일단은 배에 발을 걸쳐 탑승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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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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