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일해도 회식은 익숙해지지가 않네...
나는 음식알레르기가 딱히 없다.
그러나 하나 지독한 알레르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회식 알레르기.
기본적으로 시끌벅적 와글와글 분위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회식하면 떠오르는 그 술냄새나는 시끄러운 분위기가가 싫다. 음주를 좋아하지 않으며 특히나 회사 동료는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는 편한 상대는 못되다 보니, 더더욱 그들과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회식 is 극혐'이 된 데에는 입사 초반 만났던 부장놈 영향이 크다^^
그는 회사 면접을 볼 때부터 '술 좀 마실줄 아세요?'를 물어보는 인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사함과 동시에, '신입이라면 모름지기 장기자랑정도는 준비해야지'를 나를 만날 때마다 이야기했다. 화장실 앞에서 스치듯이 만나도, 자리에서 일하고 있으면 굳이 찾아와서까지,
신입! 장기자랑 D-2 야!!
아,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도 너무 화가 난다, 불한당 같은 놈.
알아주는 몸치였건만, 어린 마음에 또 잘 보이고는 싶은 나머지 혼자 방에서 문 잠그고 열심히 걸그룹 춤연습을 했고, 그 망할 D-DAY에 어쨌든 부장놈이 흡족할 만한 무대를 꾸며드리긴 했다. 원래 회식이란 이렇게 스트레스인 거냐 하며 절망했던 신입이 시절...
요즘은 회식도 mz스타일로 점심에 분위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가거나 그냥 안 하거나, 술도 먹고 싶은 사람만 하이볼 두어 잔 먹거나 그냥 안 먹거나. 이렇게나 자유롭다고들 하던데, 우리 회사의 주류세력은 여전히 not mz 다 보니, 회식은 여전히 피곤하고 달갑지 않은 이벤트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평소엔 무진장 과묵하다가 꼭 술만 마시면 그렇게 외로움을 토로하곤 한다. 가장의 무게, 삶의 팍팍함 속에서 술 한잔 들어가면 그렇게 자식들에게 내 맘을 막 털어놓고 싶어지는가 보다. 그리고 그 일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평소 무섭고 괴팍하기 짝이 없던 부장, 차장들도 회식자리에서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사실 나도 외로웠져, 뿌잉뿌잉'을 선보이곤 한다. 늘 이성적으로 직원들을 대해야 하니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에도 티를 내지 못하고 이런저런 부조리와 싸우다 보면 외로운 순간도 분명 있을 거다.
그렇지만 평소에 그렇게 쥐 잡듯이 사람을 잡다가 갑작스레 슬픈 눈망울로 '사실 나는 외로웠다' 하면 그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영... 쉽지가 않다. (평소에 그 마음을 담아 좀 따뜻하실 순 없나요?)
입사 초반에는 즐겁게 회식에 임하려고 애썼다. 나름 팀장님 부장님들 비위에 맞춰가며 노래방 가면 신나게 탬버린을 흔들어제꼈고 술도 넙죽넙죽 마셨더랬지만, 10년 차가 되고 보니 이젠 그럴 의욕이 안 생긴다. 몸도 힘들고 마음은 더 그러고 싶지가 않아 진다.
그니까 이런 이유들로 '나는 회식이 싫다'는 것이다.
회식의 기본적인 취지가 사무실 내 업무에서 벗어나 서로가 가벼운 마음으로 친목을 도모한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그 취지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게 꼭 술을 부어라 마셔라, 내 밑으로 다 마셔라, 노래방을 가면 상사 앞에서 노래정도는 멋들어지게 불러줘야지 로 발현되길 원하지 않는다.
꼭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 파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서로 모두 모두 다 친해야 할 필요도 당연히 없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함께 얼굴 맞대고 앉아서 일하는 직원들과 적당히 따뜻하고 예의 바른 관계로 지내야 하는 것은 필수다. 이것은 꼭 회식을 해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회식에서 어린 직원들 술 붙잡고 먹일 생각 마시고, 평소에 좀 잘해주세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