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공부하는 삶
누군가에게 질타를 들을 고백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학창 시절에 사실 공부하는 것을 꽤 좋아했다.
오히려 체육시간이 너무 싫었는데, 몸을 쓰는 것에 영 젬병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공부보다는 그저 앉아서 소설책 보는 것을 좋아한 문학소녀 스타일.
어쨌든 나한테 공부는 그렇게 싫은 일이 아니었다.
멋쟁이 커리어우먼이 되면 업무와 관련된 지식을 배우기 위해 늘 공부하고 자기 계발에 힘쓰는 삶을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업무하며 지친 하루를 보내면 퇴근 후 공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야근까지 하는 날이면? 집에 가자마자 그대로 침대 다이빙.
사실 한 5~6년 차까진 딱히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하면 더 좋았겠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사수한테 물어보면 되고, 모르는 게 크게 흠이 되는 시기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 밑으로 후배가 늘수록 모르는 건 치명타가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했을 때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참기 어려웠고 너무나 부끄러워 자기 전 이불킥을 해대곤 했다.
대충 에둘러 대답하고 상황을 모면할 수는 있었지만, 후배들도 그걸 느꼈을 거다.
아, 이 사람 잘 모르는구나. 별 것도 없는 사람이었네.
내가 그렇게도 싫고 우습게 생각하던, 쥐뿔도 모르면서 윗사람이라고 으스대기만 하는, 전형적인 상사가 되고 있는 기분이 들어 비참했다.
사실 업무 관련 공부를 시작한 것은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래 슬픈 사연입니다..
그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했어야 했다.
▼그 공부를 치열하게 하던 이야기입니다..
신입사원이 업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방법|업무 레벨업 하기
그러나 이젠 인수인계 여부와 상관없이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의 부담이 막중할수록, 내 책임감이 커질수록, 내가 공부를 해야 되는 필요성과 공부 범위가 크고 넓어졌다. 그냥 얼렁뚱땅 상황만 모면하기에는 이제 내 밑으로 엮인 일들과 내 밑으로 딸린 식구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나에게 빡세게 업무를 트레이닝시켜주던 부장님은 이제 퇴사했다. 물어보면 답이 뚝딱뚝딱 나오는 지식인은 이제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네이버 지식인을 꾸려나가야 한다.
다행히 10년 간 축적해 온 메일은 꽤 괜찮은 답안이 되어준다.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 메일에 이런저런 키워드로 검색을 해본다.
그다지 살가운 직원은 아니었던 나는, 슬며시 옆 팀, 앞 팀 관련 사람들에게 업무 문의를 하고, 속없는 웃음을 건넨다.
가끔은 chat gpt를 이용하기도 한다. (동료들에겐 화를 안내지만 gpt 한텐 가끔 뭐라고 한다. 그거 진짜 맞니? 너 이런 것도 모르고, 틀리게 가르쳐주면 어떡해!)
업무 관련 서적들을 오늘도 뒤적인다. 관련 기사도 훑어본다.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청소년은, 이제 돈을 벌려고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앉는다.
돈을 써가며 공부하던 청소년 때는 그저 책 보고 앉아 있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단 1시간을 앉아서 집중하는 것도 아주 고역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서류뭉치 들고 내 앞에서 눈 땡그랗게 뜨며 답을 내놓으라는 후배들이 이제 줄줄인걸.
그래서 나는 공부한다.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