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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스 Jul 11. 2021

[책]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연인'

지독한 현실 속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단상에 대해

 최근에 읽은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라는 정미경 작가의 단편소설집이 진한 여운을 주었다. 소설에서는 냉소와 허세로 가득 차 있는 현실세계에서 살고 있는 이기적이면서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는 인물들의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그들과 거리를 두게 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정말 내가 그들과는 다른 선택지를 가지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비겁하게 안도하게 된다.   

   

 그 책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정미경 작가의 다른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짚어 들었다. 이 책은 작가의 초기작 6편을 모아서 출간한 소설집이다. 여섯 편 소설 중 제목으로 선정된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작가였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예기치 못하게 사망한 후, 딸과 함께 생계 걱정을 하며 살아가야 되는 여자 ‘유선’의 이야기이다. 남편이 죽은 지 두 달 후 남편의 미공개 글로 책을 내고 싶다는 출판사 직원의 연락을 받고, 남편의 컴퓨터를 열어보면서 유선이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남편이 쓴 일기와 비슷한 글에서 유선 말고 사랑하는 여자의 존재를 적고 있어 남편이 불륜을 저지를 거라는 짐작조차 해본 적 없는 유선은 갑자기 죽은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껴야 되고, 그동안 자신이 남편에 대해 아는 것이 다 허상처럼 느껴지게 된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그 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까. 만약 그 글은 그냥 소설을 위해 남편이 수집한 글이거나 허구로 만든 글인데 유선이 오해한 것이라면, 남편이 유선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고, 웃으면서 자기를 못 믿냐며 유선을 가볍게 타박하며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혹은 그 글이 진짜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 쓴 글이었다고 할지라도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유선은 남편에게 격렬한 분노라도 표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에게 분노를 표출할 길이 없고, 변명이나 사과조차도 받을 수 없다. 그는 죽었고, 유선 혼자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파일을 열어본 뒤부터 유선은 몸 안 어딘가가 간지러워서 긁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남편의 글을 바탕으로 유선은 본 적 없는 여자의 형체를 만들고, 그 여자가 남편을 언제 처음 만났는지,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 끊임없이 상상할 수밖에 없다.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유선의 몸속에서 커다랗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벌레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유선이 아무리 겉 피부를 피가 나게 긁는다고 해도 몸 속을 돌아다니는 형체 없는 벌레를 죽일 수는 없다.     


 유진이 처음 남편 컴퓨터를 켜게 된 이유는 출판사 직원이 내민 계약금 5백만 원 때문이었다. 돈에 욕심이 나지 않았었다면 남편이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평생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그냥 살 수 있었을까.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임에도 유진은 그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히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편의 글에 언급되던 그 여자를 제외하고는 그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고 유진이 컴퓨터 속 글을 삭제하는 순간부터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표면상으로라도 남편은 유진만을 사랑한 남자로 남게 된다. 이미 남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피투성이 상처만 남았을지라도 유진은 그렇게라도 남편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자존심 때문일 수도, 체면 때문일 수도 있고, 하나뿐인 딸을 위해서일수도, 지금까지의 남편에 대한 믿음, 추억, 사랑 등등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유진은 남편과 본인 사이의 깊고 큰 간극을 발견했지만 그 간극을 매울 수 없기에 간극이 아예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유진의 삶은 어떻게 될까. 도서관 사서 계약직으로만 딸과 둘이 연명할 수 있을까. 그보다도 껍데기만 남은 남편을 끌어안고 살 수 있다는 착각으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낼까. 전등사를 보지 못한 그날을 ‘전등사 갔던 날’로 이름을 지은 것처럼 남편이 본인을 사랑했는지에 대한 확신은 이미 없지만 사랑했다고 본인을 속이며 살아가려 할 것이다. 출판사 직원을 비롯한 남들을 평생 속이는 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남편을 본인의 소유로, 피투성이 연인으로 옆에 둘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까. 유진이 ‘피투성이 연인’을 단념하지 못한다면 유진 안의 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는 계속 꿈틀댈 것이며 미치도록 가려운 증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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