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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Sep 27. 2021

6장. 30시간 동안 안 자고 걷기

정확히 29시간 40분이었다. 5 분 씩 짧게 눈 붙인 시간을 모두 합쳐도 수면 시간은 30분이 채 안되었고, 100 킬로미터의 숲 속을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는데 정확히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내 평생 가장 길고 외로운 밤이었지만, 동시에 온 세상을 다 갖은 듯 더없이 풍족한 마음을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그 경험은 바로 옥스팜 Oxfam 100 km Walk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자선 행사로 우리는 5월 1일에 프랑스 부르관데(Burgundy) 지방의 모르반(Morvan) 국립공원에서 그 첫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프라기야, 프레드, 아몰, 나, 이렇게 아쓔세파히 엠비에이 네 명이 한 팀을 이뤘고, 썬댄스 키즈라는 이름으로 100킬로를 걸었다.


우선 행사 참여를 위해서는 1500 유로의 기부금을 모집해야 한다. 만약 기일 안에 금액을 채우지 못하면 우리는 도전의 기회 조차 갖지 못하는 것이다. 단순히 육체적 도전이 아니었다. 우리의 도전의 의미를 알리고, 많은 사람들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것이 도전의 시작이었다. 우선 펀드레이징을 위해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일일 찻집, 소위 가장 많이 남는다는 물장사를 하기로 하고, 아침 8시 첫 수업을 향하는 비몽사몽 엠비에이 친구들에게 커피를 팔기로 했다. 가격은 1유로 이상. 즉, 기부의 걔념으로 더 내고 싶은 사람은 더 내시라고. 아침 7시가 채 되기 전부터 부지런을 떨면서 전 날 구매한 싸구려 크라상 상자와 오렌지 망을 끌고, 아직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은 프렌치 커피 기계까지 준비해서 상을 차리기는 했는데, 부산 떠는 거에 비해 그 소득은 하루에 고작 20-30 유로면 성공이었다. 그리고 바쁜 엠비에이 수업 때문에 매일 지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한 탕 크게 벌이기로 하고, 캠퍼스 내 호수 옆에서 가든 바비큐 파티를 열고 티켓을 팔았다. 그렇게 총 250유로를 모을 수 있었지만 1500유로까지 아직 갈 길은 멀었고 티킷 티킷 시곗바늘도 급히 돌아가기 시작해서, 결국 우리 팀원 각자 지인들에게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우리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게 힘을 모아줄 것을 부탁하기로 했다.


유학 떠나 오고 소식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지 열 달쯤, 염치 불고하고 소식도 전할 겸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가까웠던 옛 동료 분들에게 메일을 썼다. 바빴던 엠비에이 생활을 핑계로 뜸했던 연락을 사과하고, 여기서 만난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100 킬로의 도전, 그리고 그 도전 기금이 세상 곳곳의 아직도 만연한 가난 퇴치를 위해 값지게 쓰일 것이라는 것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정성이라도 보여주시면 더 힘을 내서 불가능할 것 같은 30시간의 여정을 꼭 해냈다는 약속의 메시지였다.


메일을 보내고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도네이션 페이지에 방문해보니 이미 낯익은 여러 친구들과 지인분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프랑스 오고 심지어 부모님과의 통화도 손꼽을 만큼 드물었으니, 친구들과 옛 동료와는 전화 한 통, 메일 한 통 제대로 못하고 지냈던 무심한 나였다. 그런 배은망덕 한 나에게 20유로, 50유로, 심지어 100유로씩 선뜻 주머니에서 내어주시는 이 분들께 진심으로 너무나 감사했다. 사실 인터넷 도네이션 절차가 많이 복잡하진 않지만, 불어로만 도배된 사이트에서 절차에 맞게 도네이션을 한다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래도 30년 인생 헛살진 않았구나.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책임감도 커졌다. 100 킬로를 완주하겠다는 그 약속, 꼭 지키자. 그렇게 주먹을 꼭 쥐고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많은 분들의 응원 덕분이었던 것 같다. 드디어 30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무사히 1500 유로 기금 마련에 성공하면서 우리 팀은 옥스팜 100km 걷기 도전의 기회를 얻었고, 우리의 1차 미션 완수에 기쁨으로 환호했다.


100 킬로 완주를 위해서는 기금 마련과 더불어 기본 체력도 단련해야 했다. 수업이 늦은 날 아침, 수업이 일찍 끝난 저녁에는 짬을 내어 118헥타르에 달하는 큰 캠퍼스를 몇 차례 같이 뛰기도 하고, 도전을 일주일 앞둔 금요일에는 파리 외곽에 위치한 학교에서부터 파리 에펠타워까지의 약 30 킬로의 거리를 직접 걸어보면서 우리 선댄스 키즈 팀은 100킬로 완주를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드디어 디데이.


행사는 파리에서 4시간 떨어진 브루간디 지방에 위치한 오르반 국립공원에서 치러졌다. 실로 칠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번 프랑스 옥스팜 100 킬로에 참여했고, 우리 학교에서도 우리 선댄스 키드팀을 비롯해 또 다른 두 팀이 참여해서 총 12명의 아쓔쎄 엠비에이 친구들이 함께했다.


작년에 1시간 30분이라는 기록으로 1등을 했다는 학교 선배는 올해는 1 시간 이내 기록 단축이라는 비이성적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목표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100킬로를 1 시간 안에 완주하는 인간 초월의 신비한 능력을 증명했다.) 그리고, 엠비에이 친구인 리사와 유정이가 써포터즈로 참여해주었는데. 아, 정말 이 둘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끝까지 버텨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우리 팀은 시작이 좋지 못했다. 서포터들의 이동 수단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차를 운전해야 했는데, 수동 운전을 해본 적이 없는 리사에게 프레드의 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아침부터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늦어졌고, 우리 팀은 이미 다른 참가자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맨 마지막으로 출발점을 떠나게 됐다. 이미 우리는 군중에서 벗어나 있었고, 부단히 도 군중을 따라잡으려고 애썼지만, 이미 우리는 마지막 군중으로부터 30분가량 뒤쳐져 있었기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을 걷다 보니 뒤떨어지는 팀들도 생기고, 우리도 어느새 맨 마지막 군중의 끝자락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체크 포인트에 도착하는 시간은 주로 텐트를 철수하기 10분 정도를 앞둔 경우가 태반이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걷기에 재 착수하게 되니 피로가 곱절로 쌓였던 것 같다. 40킬로미터를 지나고 수풀 우거진 오르막의 연속 끝에 다다른 체크 포인트에서 우리는 이미 많은 낙오자들이 속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팀의 아몰 역시 종아리 뒷 관절이 심하게 수축되면서 더 이상 걷는 것은 건강에 위험을 가하는 상황으로 20분이 넘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도 호전되지 않아서, 썬댄스 키즈팀은 프라기야, 프레드, 나 – 이렇게 선댄스 트리오로 재탄생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가 걸어가는 길과 나란히 이어진 끝을 모르게 드높은 하늘, 그 푸른 벌판 위에 마치 어디로 향할지 갈피 잡지 못하고, 길을 잃은 듯 움직이는 구름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하늘과 구름은 우거진 밀림 뒤로 숨어버리고, 우리는 그 밀림에 갇혀 수풀로 뒤덮여 확신이 서지 않는 숲 길을 발로 더듬고, 수풀 사이로 엉성 엉성 꽇힌 이정표를 눈으로 더듬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인적이 없는 숲 속에서 뜻 밖에 모습을 드러낸 가옥 몇 채도 지나고, 가옥 정원을 가꾸다 말고, 우리에게 봉 샹스를 외쳐주는 시골 주민과 인사도 나누며 걸었다. 때로는 우리의 지친 심신을 노리고 방향 감각을 어지럽히려는 건지, 아님 기운 내라고 옳은 방향을 앞장 서려는 건지 의도를 가름할 수 없는 몇 마리의 고양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기도 했다. 볕을 받으며 게으름 피우느나 바빠 우리의 소리 지름에도 고개 한 번을 돌리지 않아, 혹시 마네킨이 아닐까 싶은 젖소 떼도 지나쳤다. 하늘, 산, 구름을 제 몸에 한껏 품고 죽은 듯 꼼짝도 않는 호수 옆을 지날 때는, 위아래로 같은 무늬와 색의 초대형의 데칼코마니를 보는 것 같았다. 때로는 작은 물방개의 뜀박질에, 때로는 바람에 날린 작은 잎파리에 제 몸에 품었던 그 큰 세상을 순식간에 잔 물결 속으로 잘게 부수어 흩어버리고는 ‘내 본연의 호수로 살겠소.’ –라고 침묵에 가까운 잔 물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심심찮은 자연의 품 속에서 그렇게 홀린 듯 걷다 보니 어느새 무념무상의 상태로 빠져들어버렸다. 그 틈에 해는 뉘엿뉘엿 이 세상 밖으로 물러서고 우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어둠 속에 빠져버린 걸 알았다. 빛이 사라진 자연은 칠흑 같은 어둠 그 자체였고, 전방 1미터도 채 밝히지 못하는 손전등 하나를 손에 쥐고 걷는 우리 앞에 가파른 오르막, 내리막이 평소보다 더 많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우리 눈앞에 펼쳐졌던 그 많은 자연의 조각들이 어둠 속에 몸을 감춘 탓에 촉각이 예민해졌던 게 아닐까 – 지금에서야 생각해본다.


저녁 식사가 기다리는 4번째 체크 포인트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몸이 지쳐가는 속도는 어둠이 내리고 몇 배는 더 빨라졌다. 어둠과 함께 내린 추위는 낮에 흘린 땀을 금세 얼려버리면서 부산스럽게 걸어대도 몸이 쉬이 데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 나는 그 잊지 못할 한 발자국을 내디뎠던 것 같다. 내 인생에 수 천만 번의 발걸음을 내디뎠을 텐데, 그 한 발자국은 온몸을 고통으로 몰아세울 만큼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원인은 물집을 예방하는 반창고로 양 발을 꽁꽁 싸매고 있어서 미처 물집이 자라는 것을 못 느끼다가, 그 한 발자국에서 부풀대로 부풀었던 왼발 엄지의 물집이 한순간에 터져버린 것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자 응급 처치를 하는데, 이게 또 말 못 할 고통의 순간이었다. 땀에 절어버린 반창고는 물집이 터지면서 그 물과 뒤섞여서 살과 잘 떼어지지 않았고, 결국은 가위로 살점과 함께 잘라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상태로 얼마를 더 걸었던 걸까. 한 걸음 떼기가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 몸에서 가장 사소한 한 부분일 왼발 엄지발가락의 물집이 터지면서, 춥고 배고팠던 공황 상태는 그 고통에 밀려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양 손에 쥔 막대기가 내 두 다리를 대신했고 내 다리는 달랑달랑 막대기에 매달린 채, 그렇게 벌떡 벌떡 거리며 한 발 한 발, 아니 한 막대기 한 막대기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마침내 저 길 모퉁이에서 반짝이는 체크 포인트 싸인을 본 순간, 정말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착각에 빠졌다.



가장 마지막 조에 가까웠던 우리들이 (실제로 우리가 체크 포인트에 머무는 동안, 우리 뒤로 단 한 팀이 더 도착했다.) 늦도록 도착하지 않아 걱정했던 우리의 서포터들, 리사와 유정, 그리고 아몰은 밖에 나와 우리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걱정ㅍ어린 서성거림은 그 실루엣 만으로도 멀리서 읽을 수 있었고,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에 닿은 그 순간에는 참았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을 부둥켜안고 그렇게 고맙다, 쌩유를 연발하며 정신을 잃은 사람 마당 울어댔다. 사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당신들이 기다리는 걸 알았기에 멈출 수 없었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20분가량을 멈추지 않는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흐르도록 곡을 하며 울어대는 나 자신의 이러한 통제 불능의 상태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웃음이 터져버렸다. 엉엉 서럽게 울다기 갑자기 허허허 허 실없이 웃어대는 나를 내려다보는 프라기 야와 프레드의 눈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 담겨 있던 기억이 난다. 얘가 드디어 미친 걸까… 뭐 이런 걱정.


그때였다. 작은 대피소 한 구석에 앉아 있던 참가자 한 명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것은. 응급 처 지단이 달려오고, 아직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도 없이 축 늘어져있는 그녀는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들 역시 정신없이 상황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묵묵히 파스타를 입에 구겨 넣기 시작했다. 지금 떠올려 보니, 살아야 한다는 원초적인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지금 먹어야 한다.


한 십 분쯤 지났을까, 다행히 그녀는 눈을 떴고, 해가 지고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생긴 저체온과 그만큼은 족히 떨어졌을 저혈당이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일어나서도 한참을 혼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다가, 우리가 그랬듯이 살아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하게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체크 포인트를 떠날 때쯤에는 그녀도 다시 출발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100 킬로 완주를 해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 해프닝을 보고 나니 나의 엄지발가락은 그저 실없는 농담처럼 웃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인 기분이 들었고, 붕대로 지혈하고 반창고로 재포장을 하고 나니 한결 나았다. 무엇보다 흐드러지게 울어대면서 긴장이 많이 풀린 건지, 아침 출발선에 섰을 때보다 더 침착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낮에 예상 밖의 고온이었던 탓에 야간등반을 위해 준비해왔던 우리의 재킷을 서포터들이 숙소에 두고 와버린 것이었다. 산의 낮과 밤은 정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몰랐던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우리는 최대한 가진 모든 것을 몸에 두르고, 야간 산행용 야광 조끼를 걸치고, 본격적으로 야간 등반에 돌입했다.



밤은 산을 통째로 삼 켜 버린 채, 칠흑 같은 어둠 만이 있었다. 이빨이 덜덜덜 부딪히는 그 추위 속에서 우리는 걷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동이 틀 때까지 5시간을 단 한 번의 멈춤 없이 무작정 걸었던 것 같다. 멈추면 정말 얼어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내 들리는 것이라고는 여섯 지팡이의 불규칙한 장단뿐이었지만, 그 소리가 우리 셋이 아직도 건강히 걷고 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알리고 서로를 위로해주는 유일한 소통이었다. ‘아유 오케이?’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도 목젖을 쥐어짜야 나올 만큼 그렇게 지쳐있었지만, 각자의 두 지팡이 장단을 보탬으로써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확인하고 지지하며 한 발 한 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 산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비몽사몽 걷다 보니 칠흑 같은 어둠이 어느새 짙은 푸른색으로 번져가는 현상이 꿈결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아, 드디어 아침이 찾아왔구나. 상쾌한 공기와 아침 이슬 품은 풀잎들의 응원을 받으며 걸으니, 춥고 어둡고 길었던 그 밤은 금세 희미한 기억이 되어 버렸다. 마치 다른 은하계 행성에 잠시 다녀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치 앞을 몰라 두려웠던 밤과는 달리,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눈앞에 펼쳐 보이자, 25시간 쌓여온 피로가 몰아닥치면서, 걸어도 걸어도 줄어들지 않는 쭉 뻗은 길이 얄밉기만 했다. 이건 야밤의 산행과는 또 다른 나 자신 과의 싸움이었는데, 뒤를 봐도 앞을 봐도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이 앞뒤로 끝없이 쭉 뻗은 그 길의 한가운데에 서서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았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니 그저 묵묵히 걷는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힘들면서 동시에 지겨워 죽을 것 같았다. 지칠 대로 지친 탓인지 이까짓 게 뭐냐 싶어 그냥 나 몰라라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울컥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그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길의 끝에 다 달았다.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이 길의 끝을 도는 그 순간, 우리 눈앞에 황톳빛의 부르관데 지방 특유의 지붕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아, 돌아왔구나. 모든 것이 시작됐던 그곳으로 돌아왔구나. 그때부터는 우리가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심지어, 마지막 10미터는 단 거리 달리기를 하듯 스파트를 주며 내달렸는데, 그것이 어찌 가능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우리 팀이 끝에서 두 번째 팀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행사장은 이미 파장 분위기였을 것을 추측할 수 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아 준 몇몇 서포터들과 이미 한참 전에 완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참가자들의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에 나는 어쩌면 미쳐버렸는지도 모른다. 몸이 샛 털처럼 가볍게 공중을 날아 피니쉬 라인을 넘어서고 있었다.


난 이런 아이 구나 –라는 깨달음의 순간은 매우 드물지 미나, 너무 소중하다. 30시간의 안 자고 걷는 극한의 경험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미션의 소중함. 그리고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소중함. 나는 참 인간적인 사람이구나.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나의 고된 노력이 어떤 형태로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무모함도 신체적 극한 도전도 견뎌내는구나. 하지만, 이 경험을 마치고 나서 알게 된 또 한 가지는 나는 이제 이게 이 만큼 힘든 걸 알았으니 그만해야 했구나. 였다. 다시 한번 깨달은 건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구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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