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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Sep 27. 2021

7장. 텍 프로그램

텍 프로그램은 The Executive Committee의 약자 (TEC)로 에쓔세 MBA에서 제공되는 수업 외 리더십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비즈니스에서 활동 중인 사업가, 전문 기업 경영인 등을 모시고, 6 개월에 걸쳐 매월 마지막 금요일 하루 종일에 걸쳐 심도 있게 워크숍을 갖는 형식이다. 재미있는 것은 열 명의 엠비에이 학생들로 구성된 그룹은 워크숍에서 공유된 개인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절대 그룹 밖으로 공유할 수 없는 컨피덴셜 리티를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프로그램을 통해 논의되고 배운 리더십, 조직 경영 등의 내용 들은 그룹 밖으로 최대한 많이 공유하도록 독려하는 프로그램이다.


더불어 워크숍 하루 전 날에는 일 대 일로 프로그램 진행자인 베르나드 비쓰무쓰와 한 시간씩 대화 시간이 주어지는 데, 대화는 나 자신을 좀 더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개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주제로 채워진다. 간단히 베르나드를 소개하자면, 그는 튀니지에서 태어나고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이민을 와서 컴퓨터 관련 업계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경험을 가진 60세가 넘은 구루로 현재는 멘토링에 중점적으로 시간을 쏟고 있다. 학교가 시작된 한 달 후부터 6 차례에 걸친 나와 베르나드 비스무쓰의 대화를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숙해지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거 같다. 삼십 년 동안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낯선 땅 프랑스에 오고 나서는 내가 어떤 부모님 밑에서 자라고 어떤 학교를 나오고, 그리고 어떤 회사의 어떤 타이틀로 가 아닌, 그저 그런 작은 나라에서 몇 년 일하다 온 동양 아이로 그렇게 산부인과 신생아실의 암호처럼 달고 나온 것 하나 없이 그렇게 백지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텍 프로그램은 엠비에이 자체 수업과는 별개로 나의 정체성을 찾고, 잊고 지냈던 혹은 미처 몰랐던 나를 찾아가는 혹은 이해해 가는 과정에 좋은 지침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비쓰무쓰와의 첫 만남에서는 나와 가족의 관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나와의 관계. 질문은 계속 이어졌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구와 더 친하게 느끼는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현재도 자주 연락하는지 등등의 질문들이 이어졌고, 생전 처음 만난 이 할아버지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어 불쾌함도 있었다. 그 첫 만남 끝에 나에게 한 가지 숙제를 내주었는데, 그것은 다음 날까지 내 인생의 그래프를 그려오라는 것이었다. 첫 텍 그룹 미팅에서 가장 슬프고 괴로웠던 순간,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연도별로 그려온 그래프로 열 명의 다른 텍 친구들에게 내 인생을 공유하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식의 대화는 옆 집 수저 개수도 셀만큼 가까운 이웃관계를 가진 ( 물론 현대에 접어들어 그 교류는 급격히 감소한 듯 하지만) 동양적 정서에는 어느 정도 부합하는 부분이 있어서 인지 나는 큰 거부감 없이 간단히 내 삼십 년 인생에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 가장 굴욕감을 느꼈던 순간들을 되짚어 보고 그 내용에 대해 텍 그룹과 공유했다.


10명의 친구들이 한 명 씩 손바닥 만한 종이장에 꾸깃꾸깃 들고 나온 자신의 인생 그래프를 가지고 교실 앞에 나와 섰을 때의 그 모습은 너무나 생생하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고 잘생긴 알렉스가 본인 차례가 되자 시작도 전에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 인생 그래프의 최저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도 잠기고 어깨도 움츠려 드는 것을 보았다. 본인의 아주 사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만큼 그 첫 번째 과제를 수행하고 나니, 열 명의 멤버는 뭔가 보이지 않는 끈이 묶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가 쉽게 내 속을 끄집어낼 수 없을 때 선뜻 손 벌릴 수 있고, 또 내민 돈 덥석 잡아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이어지는 워크숍은 비즈니스 리더십에 중점을 두고 예정대로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었다. 매번 다른 연자를 모시고 진행됐던 토의는 곧잘 개인의 사업적 혹은 사회적 성공과 개인의 행복에서의 어떤 밸런스가 주요했던 가에 대한 자기 성찰의 내용으로 귀결되곤 했다. 결국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형태가 됐든 성공하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 하는 매우 근원적인 질문이 대두가 되었다. 후회 내지는 안도하거나, 오히려 사회적 성공이 개인적 안위까지 가져다준 경우까지 각자의 자기 성찰에 따른 솔직한 질의응답은  내가 텍 프로그램 연자들에게 가장 감사한 부분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판에 박힌 자신감에 가득 찬 조언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들 스스로 주어진 환경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갈등에 대해 솔직하게 공유해줬던 그 솔직함에 때로는  놀라기도 했다. 어쩌면 초청된 연자들이 베르나드 비쓰무쓰과 개인적인 연이 있었던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매우 개인적인 부분까지도 아낌없이 솔직하게 공유해주었던 몇몇의 연자분들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참 인간적이고, 오히려  더 자신감 있었던 것 같다. 개인의 자신 성찰에 기반을 두고 내 과거의 선택과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해 성공이든 실패이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산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 역시 어느 날 그런 초청을 받을 만큼 사회적으로 큰 사람이 되었을 때 (혹은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했을 때) 나 자신에 대한 충분한 성찰을 가지고 솔직하게 더 보태지도 덜하지도 않고 담백하게 응할 수 있었으면 하고 꿈꿨던 것 같다.


텍 프로그램은 베르나르 씨와의 일대일 세션과 더불어 하루 종일의 토론 일정으로 상당히 많은 에너지와 생각을 소모시키는 훈련이었다. 특히, 여타 경영 수업처럼 케이스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비즈니스 케이스처럼 들여다 보고 분석하고 내 의견을 내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엠비에이 졸업한 후 모두 뿔뿔이 다른 나라로 흩어진 지금도 그 텍 프로그램 토의처럼 솔직하고 때론 부끄럽고 자랑스럽고 혹은 원망스러운 순간순간들을 글로 정돈하여 이메일로 나누고 있다. 매달은 아니고 그저 연말 정도에 모두가 한 해를 뒤돌아 보고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칠 때, 그렇게 우리의 실망, 좌절, 그래도 지키고 싶은 신념, 열망, 성취감, 뭐 이러한 감정들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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