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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Sep 27. 2021

8장. 가난 퇴치하는 사업가


엠비에이 첫 학기의 전략 수업에서  다양한 업종에 걸친 비즈니스 케이스를 다뤘는데,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이 에실론(Essilon) 안경 회사의  인도 시장을 타켓으로 한 전략 케이스였다.  Bottom of Pyramid라는 개념의 개발도상국을 하나의 큰 마켓으로 재정립한 이론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계기였고 (사실 꽤 된 이론이었고, 내가 뒷북친 거다.) 더불어 일회성 기부가 아닌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통해 교육, 위생, 건강 등의 사회 문제에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선택 수업(Elective phase)에 돌입한 세 번째 학기에는 엠비에이 수업을 대신해서 소셜 비즈니스와 가난 퇴치 (Social Business and Poverty)- 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에쓔세파히의 장점이라면 엠비에이 외에도 석박사 과정들 비롯한 다양한 주제의 비즈니스 강좌 (Specialized Tracks)가 개설되고, 엠비에이 학생들도 본인의 관심분야에 맞게 강좌에 참여할 수 있다. 소셜 비즈니스 외에도 럭셔리 마케팅, 부동산 산업, 오일가스 산업, 우주비행 관련 산업 등의 여러 트랙이 개설되어 있고, 한 분야에 전문성 있는 배움을 갖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많은 인기가 있었다. 물론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지원 심사 과정을 통과해야만 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비즈니스를 통한 가난 퇴치. 이 수업은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눠서 진행됐는데, 마케팅, 마이크로 파이낸스,  소셜 파운데이션, 그리고 소셜 펀드 등의 새로운 파생상품에 대한 수업도 있었다.  아직 신흥 학문이어서였을까. 솔직히 수업 중의 케이스가 다양하지 못했고, 더군다나 성공적인 케이스도 드믈었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더불어서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경험할 수 있었던 건 정말 값진 교실 밖 공부가 됐다.


나는 파리의 남쪽에 위치한 중고품 업체인 엠마우스 데피 (Emmaus Defi)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주일의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는 기부받은 옷과 다양한 가계 소품들을 재분류, 재가공하여 되파는 형식의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중증 이상의 장애인으로 일반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웠지만, 재활용품을 다시 재분류하고 재가공하는 과정을 단순화시키고, 반복학습을 통해 그 업무를 습득하여 일하고 있었다. 이 중증 장애인들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정해진 최저 임금을 근무 시간수에 따라 국가로부터 받아 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이었다. 단순하고 흔하다면 흔한 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이득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우선, 개개인의 잉여품이 재활용된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부분이었다. 이 기업은 기부받은 제품을 되판 수익으로는 공장과 가게 운용비, 그리고 비장애인 직원의 수당을 충당하는 데에 썼다. 물론 장애인의 최저 임금은 국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점이 가장 주요하지만,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기업의 수익과 비용은 결국 제로로 귀결되는 사회적 기업 재무를 꽤 오랜 세월 잘 꾸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의 시간을 재분류 재가공이 이뤄지는 공장일을 돕고,  토요일 장이 서는 가게의 데코레이션을 도우며, 장애인 노동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보낸 일주일 동안 발견한 업무 흐름의 개선점과 효율성 제고 안을 제시해야 했고,  더불어 일반인으로부터 물품 기부를 늘리는 방안에 대해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리고, 엠마우스 데피의 총책임자에게 나의 제안서를 발표했다. 업무 측면으로 파헤쳐보니 결국 로지스틱스와 홍보업무로 귀결될 텐데, 제약회사의 제한된 마케팅 툴이 익숙했던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토픽이었고, 많은 리서치를 했음에도 수박 겉핡기 식의 제안서밖에 작성할 수 없어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이었다.


인류의 과제인 가난 퇴치를 위한 비즈니스를 해보고자 했던 나의 의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오히려 한풀 꺾이게 됐는데, 요는 내가 가난 퇴치를 위한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사업 모델이나 테크놀로지를 내놓기 위해서는 일단 내 분야에서 충분한 전문가로 성장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소셜펀드라는 새로운 금융 파생상품을 계발한 분이 게스트 스피커로 오셨는데, 그는 금전적 이익 창출 대신 사회적 기여 창출을 하는 파생상품을 계발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 금융업에 수십 년을 종사하며, 실제 투자자들에게 이익 창출을 위한 다양한 파생상품을 계발해왔고, 그의 인맥과 전문성을 통해 이러한 사회기여 창출 파생상품을 계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전문성이 결여된 상태로 착한 사업가가 되겠다고 덤벼든다 한 들, 인류의 영원한 과제인 가난 퇴치에 일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프로그램이 당장 엠비에이 졸업 후 대기업 인터뷰에 써먹을 그럴싸한 수료증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막연한 동경에서 과연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지, 잘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 현실적인 체크리스트를 마련할 수 있고, 그렇게 엠비에이 후 하고 싶은 긴 목록에서 몇몇은 쭈욱 쭈욱 줄을 그어 제외할 수 있게 됐다. 물론 파리로 이사한 후에는 종종 토요일 장을 찾아 오래된 찻잔이나 귀걸이들을 주워 담기도 했으니 꽤 유익했던 한 학기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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