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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Sep 27. 2021

9장. 파리 옥탑방 상경기

빛바랜 감색 지붕에 역시 빛바랜 흑토 색의 작은 굴뚝 들이 나란히 줄지어 솟아 있는 지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리의 모습이다.


1853년에 시작된 파리 도시 개발의 일환으로 오스만 (Haussmann) 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 양식이라는데,  지붕은 옷이 여러 벌인 지 볕에 따라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 마술을 부린다. 빛의 마술. 어떤 날은 보통의 파란색이 아니라 오히려 푸른빛을 띠는 회색에 가까운 지붕이다. 보통 이런 회색빛 옷은 며칠간   방울 없이 바짝 마른날에 주로 입는다. 한편, 구름   없이  부신 태양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런 오후에는 반짝반짝 하늘보다  윤이 나는 푸른색으로 태양과 함께 발광한다. 하루에도  번씩 보슬비가 오고 가는 날에는 ( 가장 파리다운 날이라고 정의할  있겠다만, ) 단정한 감색으로 몸을 두르고 표정을 읽을  없는 그런 차분한 얼굴을 내민다.


파리의 감색 지붕을 무대로 펼쳐지는  빛의 향연을 이토록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매일매일   창문 너머로 마주했던 파노라마였기 때문이다. , 여름, 가을, 겨울, 꼬박  계절을 매일매일 하루에도  번씩 관람했던 터라 앞으로도 오래 쉬이 잊히지 않을  같다. 물론  파노라마는 매달 꼬박꼬박 관람료를 내면서 합당하게 즐긴  만의 것이었다. 원화로 하면 대략 150만 원이   돈을 월세로 내고 살았던  파리 옥탑방은 28 제곱미터 (8평쯤)의 작은 스튜디오였는데, 엠비에이 기간  여름 방학 동안 파리에서 인턴을 하게  것을 핑계로 캠퍼스 생활을 접고 파리지엔으로  년을 살았던 곳이다. 부동산 비용이 비싸서  돈을 아끼기 위해 집주인과 직거래하는 PAP.fr라는 사이트를 통해 집을 알아봤었는데,  과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거의  통의 메일을 보냈고, 대략  군데에서 답메일이 왔고,  다섯 군데 정도를 둘러봤는데,  집은 이미 계약할 곳을 점찍어  상황에서  기대 없이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집주인과 함께 방에  들어섰을 ,  이게  집이라는  바로 느꼈던  같다.


 벽면을 통째로 차지한 창문이 바깥 눈부신 태양을 통째로  안으로 들이고 있었고,  너머로는   하늘을 이고, 볕을 받아 반짝이는 파리의 감색 지붕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광경은 마치 헨리에 크로스나 마티즈와 같은 네오 인상파 화가들이 작은 점을 수천만 번 찍어대며 그렸던  살아있는  폭의 그림을   벽면에 걸어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그렇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첫눈에 반해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상대방의 후광에 눈이 부셔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날 처음으로  기분을 이해했다. 그래  집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창문 너머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파리의 모습을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다른 어떤 단점도 극복할  있는 장점이었기에,  자리에서 서둘러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나는 개선문에서 5 거리에 있는 파리 17구의 작고 오래된 옥탑방에서 파리지엔으로 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미처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후광에 가려 미쳐 자세히 살피지 않았던, 혹은 그냥 모른  덮어두고 싶었던  모든 것들은 해가 넘어가고  불을  순간 한꺼번에  실체를 드러냈다. 오래되어 낡은 천장에는 오랫동안 스민 습기를  견디고 군데군데 찢어진 벽지가 형이상학적 모빌처럼 데롱 데롱 매달려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떨어질  위태로워 보였다. 그뿐 아니라, 할아버지  등에 검버섯 피듯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진 (본래는) 하얀 테투리의 창문은 한쪽 문을 잡아당기자  백 년이 됐을 창틀의 나무 결이 쩍 하니  갈래로 갈라져버렸다. 빛이 바랠 대로 바랜 초록색 카펫은 우리 증조 할머님 적에도 썼을까 싶었는데, 고인 우물 바닥을 가득 채운 이끼마냥 어둡고 거무죽죽한 것이 어떤 미생물들이 기생하고 있을까 싶었다.


혼자 겨우   있는 부엌에는 그냥 줘도 중고상도 거절할 법한 녹이 슬대로 슬고 과연 이 작동이 될지 의심스러운 냉장고와, 마찬가지로  년은 사용하지 않았을 법한 역시나 작동이 의심스러운 오븐이 턱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욕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썼을 법한 우아한 디자인이지만, 크기는  백분의  정도  작고 오래된 욕조에는 거뭇거뭇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검버섯 투성이었고, 변기는 앉는 부분이  고정돼 있지 않아 앉을 때마다 아귀를  맞춰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으로 변기를  쥐고 있어야 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침대에 누워 매일 아침에 맞이하는 것은 창문 밖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스만식 지붕의 파노라마가 아니었고, 그곳에 미처 시선이 닿기도 전에 천장에 아슬아슬 매달린 벽지 모빌에서 멈춰버리고, 나는 이미 심통이 있는 대로 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요리를 자주 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엌 개수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막혀서 설거지를 한번 하고 나면  물이  빠져나가는   나절은 족히 걸리는  같았다.


 다른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사 오고   달도 되지 않았을 즈음에, 며칠간 친구들과 포르투갈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자정이 지나 집에 돌아와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탓에 아직 비몽사몽 했던 다음  아침, 누군가 현관 벨을 눌러댔다. 시간은 아침 7시도  되지 않았는데, 누굴까?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문을 열어보니,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젊은 프랑스 총각이 서있었다. 나의 안 되는 불어과 그의 안 되는 영어까지 뒤죽박죽  참을 얘기한 끝에 알아낸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우리 집의 변기 물통의 연결나사가 느슨해지면서 물이 줄줄 샜던 것이다.  욕실 밑에는 그의 부엌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엌은 홍수가   물이 흥건하다고 했다. 결국 변기 속으로 갔어야  물들이 아래  부엌 조리대로 흘러내려갔던 것이다. 여느 곳이었다면 소리를 질러도 모자랄 판이었을 텐데, 이러한 자초지종을 차분하게 설명해 내려가는 그의 말에 따르면 이미 3 째라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파악 못하고 있는  같아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왔다고 말하는 그의 침착한 태도가 오히려 놀라울 뿐이었다. 나는 데졸례를 연발하며, 깨끗한 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를 안심시켜 돌려보냈고, 집주인을 통해 플러머를 불렀으나, 예상대로 바쁜 파리지엔 플러머는 자신의 스케줄  이틀 후에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비상 구책으로 집을  뒤져 가장  세숫대야를 찾아내 변기 물통 밑에 받쳐두었는데, 2 시간 간격으로 물이 가득 차서 세숫 대야를 비워줘야 했다. 이런 비극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걸까. 플러머가 오기  이틀간 나는 수업이 없었고, 집에서 밀린 과제를 하면서  시간마다 물통을 비우느라  잠도 포기하고 아주 혼쭐이 났다.


하지만  고욕 같은 생활에도 불구하고  집을 떠나지 않고  년을 버텨낸 것은 내가 참을성이 무지 좋다는 반증일까? 지금 돌이켜 보니, 그건 참을성이 아니라 생활인으로 적응해 가는 과정이었던  같다. 사실 그런 불편함은 감수하면 그만이었다. 편하게   있는 곳은  세상 어디를 가도 찾을  있다. 이케아 가구가 깔끔하게 배열된 깔끔한 스튜디오,  벽면에는 세상 어느 가구 가게에서나 찾을  있는 에펠타워 사진 액자가 걸려있지만, 과연 그곳이 진짜 파리일 수는 없다. 이곳 파리가 아니라면 절대   없는 그런 곳에 살고 싶었다. 조금 불편하면 어떻고, 오래되면 어떤가.  삶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고, 파리로  것은 그것들을 실현하고 싶어서였지, 최소한 시도해 보고자 함이었지, 단순히 편히 살고 싶어서는 아니었지 않았나.


여름 인턴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 체류증 연장 ( 참고로, 프랑스의 행정기관을 방문하면 2 시간의 기다림은 기본이다. )을 위해 사무실에서 베르사유까지 점심시간을   오가는데 예보에 없던 소나기로 우산을  겨를도 없어 생쥐 마냥  젖어버리고, 예정된 시간에 기차가 오지 않아 귀사가 늦어져 미팅 준비를 미처 못한 , 프로젝트 팀원들과 3시간 동안 미팅을 진행했다.  준비가 미흡해서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던 탓이었는지 미팅은 처음 10분을 제외하고는 3 시간 내내 줄곧 불어로만 진행됐고, (  이후에도 거의 대부분의 미팅이 90% 이상 불어로 진행된 걸로 봐서, 미팅 준비 미흡보다는 인턴 나부랭이만 비프 랑스인 상황에서는 프랑스인들은 불어로 말하는  선호하는 것으로 판명돼긴 했다. ) 미팅 미뉴엣을 작성하고 부서별 다음 업무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해야 했던 나는 정말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렇다고  문장  문장 무슨 말이냐고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있다 끝이 나버렸다.


그날 퇴근길은 자기혐오로 가득 차 있었다. 연음이 많아 알아듣기 힘든 불어도 싫고, 프랑스의 예정된 시간대로 절대 오지 않는 열차도 싫고, 열차만큼 예고 없이 내렸다 그치는 비도 싫고, 엠비에이로 그렇게 돈을 쏟아붓고도 아직도 그다지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자신이 그중 제일 싫었던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니,  안이 온통 노을빛이었다. 누군가 노을을 우리 집에 가져다  것처럼  주홍빛 노을이 고스란히  안을 비추고 있었다. 손잡이와 창틀 사이가 이미 벌어질 대로 버러 져서, 주의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손잡이가 떨어져 버리는 창문 손잡이를 조심히 끌어당겨 열고, 세네 뼘쯤  나의 작은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그날 일어났던 모든 일을 깡그리 잊은  그저 하염없이  노을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하늘을 빈틈없이 덮고 있는 하얀 구름은 노을빛을 받아 오렌지  사탕처럼 윤기 있는 빛깔로 빛나고 있었고,  밑으로는 노을빛을 받아 한층  밝은 붉은빛의 작은 굴뚝들은  가마에서 구워 나온  수줍게 낮은 성곽을 이루며 삐죽삐죽 솟아 있었고, 감색 지붕은  성곽 밑에 굳게 닫힌 철문처럼  어느 때보다 우직한 모습으로 다부져 보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섰던 때에 나는 이미  이상 퇴근길 볼품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탐스러운 오렌지 나무들이 층층이 둘러싼 황톳빛 성곽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아무도 열고 들어   없는 믿음직 스런 감색 철문은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이런 마음의 안식과 평온은 아무나 가질  있을 것이 아니며, 어디서나 얻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육체의 불편함은 감수할  있지만, 영혼의 풍요로움은 절대 희생하지 않는 생활인으로서의 파리지엔이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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