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면 유럽의 모든 MBA들이 이곳 쥬이엉죠자스 (Jouy en Josas)로 모인다. 엠벳(MBAT)은 매 년 아쓔쎄파히 주최로 열리는 유럽 엠비에이 올림픽과 같은 체육 대회인데 그 종목은 축구, 수영, 베이비 풋, 조정, 골프, 럭비, 핸드볼, 배드민턴, 탁구 등 총 20에 달하며 학생들은 잘하고 못하고 와 상관없이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혹은 새로운 도전의식을 가지고 한 개 이상의 스포츠에 참여하게 된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잠깐 수영 선수를 했던 기억을 되살려 20년이 지난 32살의 나이로 수영부에 합류했다. 2012년 1월부터 4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수영 훈련을 했다. 사실 이 시기는 MBA의 두 번째 코어 학기 (Core phase)로, 익숙해졌다 뿐이지, 여전히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시간 두 시간을 제외하고 ( 심지어 이 시간에도 자판기 샌드위치를 뽑아 먹으며, 조 모임을 하거나 다음 수업 시간에 앞서 케이스 리뷰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끊임없이 수업이 이어졌고, 밤늦게까지 그룹별 혹은 개인별 과제를 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그런 와중이었지만 일주일에 이 틀씩 수영 연습은 만일 제치고 참석했다. 엠벳을 네 달 앞둔 시점이었기에 반드시 시합에 참여할 선수들만 참가하는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훈련에 강제력은 없었지만, 매 번 빠지지 않고 훈련에 참석하는 친구들은 학교 이름을 달고 출전할 경기에 대한 각오로 연습을 거르는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같은 운동을 즐기는 동료들과 공동의 목표( 그것은 물론 수영 종목에서 1등 하는 것)를 달성하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었기에 빠듯한 수업일정과 여름 인턴십 지원, 학생회 활동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화요일, 목요일에는 빠지지 않고 두 시간씩 수영 연습을 했다.
브라질 국가 대표 선수를 지낸 루이스가 수영부 코치를 담당했고, 대학 시절 수영 선수를 했던 알렉스, 호혜 등의 몇몇 친구를 제외하면 나처럼 어렸을 때 동네 수영 대회 정도를 나가봤거나 아니면 그저 취미생활로 수영을 해온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루이스의 진두지휘 하에 뒤떨어진 체력을 보강해가는 훈련과 더불어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속도를 향상할 수 있는 테크닉도 함께 연습했다. 훈련이 있는 날은 두 시간의 연습이 끝나고 캠퍼스로 돌아오면 다음 날 수업 준비와 미뤄뒀던 조 과제 등을 하기 위해 책상에 앉지만, 수영으로 나른하게 풀려버린 것은 몸 만이 아니었다. 몸만큼이나 물에 오래 담겨 말랑말랑해진 머리는 서너 줄의 문장을 읽는 것도 버겁게 느꼈고, 바로 고개를 떨구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잠이 들면 그야말로 달달한 단잠에 빠져들어서, 다음 날 아침 맑은 정신으로 10분 초집중 케이스 리딩도 여러 차례 해냈다.
마지막 이 주 간은 시합에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입수와 플립턴을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실제 훈련을 비디오로 찍어 수업 후 강의실에 모여 벽면 전체를 덮는 거대한 스크린으로 난생처음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프로젝터로 쏴서 거의 실물 크기의 내가 그리고 다른 선수들이 입수하고 수영하고 턴 하는 모습을 모니터링했다. 본인은 미처 깨닫기 못했던 좋지 못한 습관을 비롯해 본인의 수영 자세를 직접 확인함과 동시에 각자 유리한 영법이 무엇이며 어떻게 강점을 키울 것인지에 대한 토의가 이어졌다. 이어서 시합날까지 기록 향상을 위해 각자 가장 집중해서 훈련해야 할 테크닉도 짚었다. 최종적으로 내가 배치된 종목은 평형 100 미터, 혼영 400미터, 자유형 50미터, 그리고 자유형 혼성 릴레이 이렇게 4가지였다. 수영 당일에 거대한 장신구의 LBS의 영국 여자 선수들을 보고 고작 그들의 어깨에 닿을까 말까 한 조그만 동양인임에 솔직히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 팀의 태국, 대만, 스페인, 한국 출신의 선수들은 각자 나라의 국가 대표인 냥, 거인 영국 선수들과 당당히 겨뤘다.
최종 결과는 남성팀의 압도적 1위, 여성팀의 차이나는 2위로 결국 종합 2 등에 머물렀다. 하지만 사 개월간 함께 물속을 누비던 우리들에게 그 결과는 축제였다. 특히, 대부분의 선수들이 시합 전에 측정했던 개인 최고 기록을 대 실제 시합에서 단축시켰는데, 이 것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였고,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성취감은 1등 타이틀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