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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ho Sep 21. 2018

도쿄에서 얼굴을 수집했다

어쩌다 여행

퇴사를 했고, 시간이 남았고, 동거인이 출장을 간다 했다. 숙소가 해결된다는 뜻이다. 도쿄로 간다.

도쿄는 작년에 한 번(brunch.co.kr/@imadorable/57) 1박 2일로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도 동거인의 출장에 붙어갔는데, 올해도 그러했고 아마 내년도 그럴 것이고 매년 그 기회가 생기기를 이 글을 쓰며 또 고대한다.

동거인은 마지막 이틀을 제외하고서 일하느라 얼굴 볼 시간이 없었다. 밤늦은 시간 호텔의 침대만을 공유하고, 아침에 나가는 얼굴을 잠시 보는 일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의 얼굴만 잔뜩 보고 찍고 모았다.

숙소는 신바시역. 긴자까지 걸어서 금방이라 출발하기 전부터 고대했는데, 銀座의 대단한 이름값에 짓눌릴 예상을 하고 찾아갔더니 생각보다 큰 거리와 큰 상점에 큰 빌딩이 가득해 재미가 덜했다. 오래된 가게들이 더 많을 줄 알았고, 오래된 거리의 차분함이 더 할 것이라 예상했던 내 착각에 당황했다. 글로 배울 때는 조심하자.

나카메구로에서 다이칸야마 거쳐 에비스까지. 세탁을 기다리며 자가비를 까먹는 아저씨도, 매끈한 가게에서 책을 읽는 아낙네도, 땀이 뻘뻘 흘러 편의점에 들어가 캔커피를 마시는 관광객도 있었다. 

힘 잔뜩 준 특별 전시도 좋지만, 미술관 소장 작품들로만 끙끙거리며 차려놓은 밥상을 더 좋아한다. 3층 전시장에서 즐기고 배우자는 취지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배움이 부족한 나에게 알맞은 전시였다.

대부분의 이동은 지하철을 이용했다. 크게 외곽을 나가지도 않았는데, 1호선과 3호선의 차이 마냥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차이가 분명했다. 선마다 역마다 시간마다 다른 얼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밥을 먹으며 핸드폰을 보는 사람과, 전철로 이동하며 책을 읽는 사람의 온도가 비슷했다.

가고 싶은 가게가 몇 개 있다는 의욕만으로 시부야를 찾았더니, 그 횡단보도가 어딘지를 몰랐다(아직도 이 곳이 그 곳인지 긴가민가). 명동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한참을 도망 다녔다. 위쪽으로 위쪽으로 가게를 찾아 올랐다.

시부야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모노클과 플루겐, 아히루와 같이 힙힙한 곳들 모여진 동네가 나온다. 아히루를 가려했더니 웨이팅이 있었고, 스몰 토크의 중압감을 이겨낼 생각 없는 여행자는 그곳을 빠져나와 에그타르트를 사서 커피와 마셨다. 이렇게 밤을 마감하는 날도 있었다.

오다이바에 사는 오랜 친구를 만난 날이었다. 아침부터 선 줄들이 끊일 새가 없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다양한 공간을 침투해 시간 보내는 일을 구경했다.

동거인이 면을 좋아하지 않아, 따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나올 때면, 꼭 동선 위의 맛있는 라멘집을 혼자 찾는다. 소바나 우동은 같이 먹을 때도 있지만, 라멘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인 경우가 많다. 이 날이 그랬다.

고대하던 국립 서양 미술관을 찾기도 했고,

고대고대하던 물감을 만나기도 한다.

마지막 날에는 동거인의 출장이 끝나, 함께 주말을 보냈다. 밀린 잠을 자고 일어나 브런치를 먹는다.

서울이라고 제주라고 이런 얼굴을 마주치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어쩐지 살 지 않는 곳에서야 더 재미있는 장면이 남는다. 쓰고 보니 그저 게으른 핑계를 대는 것뿐인가도 싶고.

주말에 가서 더 그랬겠지만, 줄 서서 입장하고 줄 서서 관람하니 영 재미가 없었다.

커피는 맛있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무지를 들렀다. 제일 사고 싶은 건 움막(muji.com/jp/mujihut)이었다.

점심 비행기라 간단히 먹고 간단히 사서 간단히 나섰다. 공항까지 한 시간, 집까지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김포를 좋아합니다. 후쿠오카 노선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아니면 제주-후쿠오카라도)

하루에도 수백 명의 얼굴을 보는 사람에게는 친절하자.

인스타그램: instagram.com/especiallyw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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