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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Oct 02. 2023

소설, 이효석의 산을 만나다

오래전부터 한국 단편 소설을 읽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분명 한글로 쓰여있지만 내겐 외국어로 다가왔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구어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연기력이 약한 나는 등장인물이 많은 소설낭독은 늘 마음뿐이었다.


지난 6월이었다. 엘리샘이 운영하시는 카페, 오디오북 낭독 제작소에 오디오북 제작반 1기를 모집하는 공고가 떴다.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은 단편소설로 오디오북 제작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막상 함께 한 선생님들은 첫 시간부터 부풀어있던 나의 가슴을 쫄아들게 만들었다.


8주 동안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도전해 보고자 선택한 단편 소설은 이효석의 <산>이었다.  '산'은 훑어보니 다른 소설들에 비해 일단 대사가 없었고 내 목소리 톤에도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큰 벽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분명 한글로 쓰여있지만 한국말 같지가 않았다. 뜻을 모르는 구어체는 사전을 뒤적거려야 했다. 어디에서 끊어 읽어야 말하기가 더 잘될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떻게 전체적으로 각 장을 연결시켜 끌고 가야 할지 고민만 하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몇 주동 안은 도대체 감이 오질 않았다.


이효석의 <산>은 4부로 이야기가 나누어져 있다. 6분 정도의 1부는 거의 산에 대한 묘사이고, 2부는 머슴살이 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산으로 들어간 이야기, 3부는 산에 들어가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4부는 완전 자연인으로서의 삶 속에서 생겨난 한 가지 욕심, 즉 이웃집 ‘용녀’라는 색시와의 꿈을 그렸다.


읽고 읽고 또 읽어 가까스로 줄거리가 파악되면서 나의 혀도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 '중실'의 모습은 나의 소리와 연결되지 않았다. 녹음 후 들어보면 중실과는 거리가 한참 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소리만 들려왔다. 게다가 엘리샘으로부터 나의 낭독은 일정한 규칙이 많고 어미 끝에서 톤이 올라가기 때문에 뚝뚝 끊어지게 들린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말하기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낭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기'인데 이 두터운 낭벽을 어떻게 뚫고 나올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몇 주가 지났다. 마음속에서는 부정적인 말만 줄줄이 사탕처럼 흘러나왔다.


“안 만들어지면 어떡하지? 기한 내에 완성을 할 수는 있을까? 소설낭독이 참 나에겐 버거운 거였구나. 나의 능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구나. 혼을 다해 가르쳐주시는 엘리샘께 페만 끼치네. 어찌 이렇게 둔할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소리로 들리지 않아..."


고작 20분짜리 소설인데 뭐 하고 있나 싶었다. 에세이 20분 낭독에 비하면 10배는 더 힘들었다. 국어 공부를 멀리했던 학창 시절도 떠올랐다. 문해력 부족이라고 낙인도 찍었다.  연습량에 비하여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허공에 주먹질하는 것 같았다. 갈수록 마음에 부담만 가득 쌓여갔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나는 나를 토닥여주면서 응원하였다.


“나에겐 아직 시간이 남았다. 8주는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야. 그리고 그 8주가 다 지나간 것도 아니잖아. 조금만 더 연습하면 분명히 지금보다는 나아져 있을 거야. 지금 포기하면 다시는 소설을 못 만날 거야. 계속하기를 계속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야.”




엘리샘의 피드백을 듣고 또 들으며 따라 하고 또 따라 했다. 글을 복사하여 어디에 강세를 주어야 할지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림도 그려보았다. 그러고선 그 그림에 따라 읽어보기를 반복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무작정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6분 정도의 1부를 끊지 않고 연이어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원하는 만큼의 그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첫 번째 녹음파일과 비교하면 날아갈 듯 기뻤다. 해낼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대충 이야기를 이해해선 안 되었다. 글 속에 숨어있는 깊은 이야기도 생각하며 머리에 그리며 상상하면서 읽었어야 했다. 부족한 발음도 계속 챙겨야 했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필요했다. 내가 급해지면 낭독도 급해진다. 내가 글에 끌려가 글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내가 글을 가지고 놀 수 있을 때 좋은 낭독이 되는 것이다. 내 안에 글이 깊이 들어와 있어야 소리로 연결되는 것이다.  



언제나 나의 낭독은 비상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고대한다.

그러나 낭독여정의 종착역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끝없는 낭독여정을 그저 즐기려고 노력하면서 뚜벅뚜벅 계속 가볼 수 밖에...


이제 나는 두 번째 소설, 김유정의 <두꺼비>를 만나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한다. 






https://cafe.naver.com/voicecontents


To 엘리샘,

소설을 어떻게 낭독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엘리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능력 부족이라 가르침을 다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그래도 하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미약하나마 가르침 덕분에 오디오클립에도 출시할 수 있게 되어 무한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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