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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Jan 03. 2024

보이스피싱

이 글을 쓰다 보니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난 몇 년 전에 이 말을 역행하는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돈을 벌겠다는 조급함에 보이스피싱이라는 덫에 걸렸던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대학교 입시를 앞두고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때였다. 이미 하고있는 피자집 아르바이트로는 부족하여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아봐야 했다. 몸을 쓰는 일보다는 사무직을 해보고 싶었던 나는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관심 분야를 사무직으로 체크 해놓고 찾아보았다. 그렇게 여러 군데 찾아보던 중에 시급도 꽤 높고 업무도 괜찮아 보이는 곳을 발견해서 이력서를 넣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력서 넣었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비대면으로 문서작업만 하는 일이라서 면접을 따로 안 봐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급여 받으려면 자기들이 일괄적으로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은행 계좌가 필요하다며 해당 은행 계좌를 만들어서 사본을 보내 달라고 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보니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뭐에 홀렸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그 전화를 받고 바로 은행으로 가서 계좌를 새로 하나 만들었다. 일을 시작하려고 급여 통장을 만들려고 왔다고 하니 금방 만들어주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통장 만드는 일이 까다롭지 않았다. 나는 통장을 만든 후 바로 사본과 함께 그쪽에서 요청한 자료들을 퀵으로 보내줬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옷을 사러 백화점으로 갔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결제를 하는데 갑자기 점원이 카드가 정지됐다며 혹시 다른 카드가 없냐고 물었다. 그럴리가 없는데 나는 직원에게 다시 한번 긁어봐달라고 말했다. 역시나 결제되지 않았다. 나는 얼른 다른 카드를 꺼내서 줬지만, 그 카드 역시 결제거부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현금으로 결제하고 나와서 카드사에 전화를 걸었다. 해당 은행 카드사에 전화해서 자초지종 설명을 하니 누군가 내 계좌를 범죄 계좌라고 신고를 해놨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신고로 내 명의로 된 모든 카드가 중지되고 은행 업무도 창구를 방문해야만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아르바이트한다고 새로 만들었던 계좌에 나도 모르는 돈이 몇 백만원이 입금되어 있었고, 그 돈을 입금한 사람이 뒤늦게 보이스피싱에 당한 것을 알고 내 계좌를 신고한 것이었다. 결국, 내 계좌에 돈을 입금한 사람과 나 모두 피해자였던 것이다. 나는 범죄에 사용할 계좌를 만들어 준 것이고 그 사람은 돈을 잃은 것이었다.     


다행히 난 금전적인 피해를 보진 않았지만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난 후가 문제였다. 일단은 내가 가지고 있는 카드나 계좌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경찰서로 찾아가서 범죄피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나는 그날 바로 근처 경찰서로 향했다. 민원실에 가서 자초지종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되는지 물었다. 하지만 간절한 나의 마음과는 달리 귀찮다는 듯한 말투와 그러니까 왜 계좌를 남에게 알려주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경찰관의 태도에 더 힘이 빠졌다. 

     

"지금 피해자이시지만, 어쨌든 계좌를 타인에게 양도했기 때문에 선생님도 공범이세요. 그러게 왜 계좌를 남한데 알려주고 그래요“      

    

경찰관의 말은 힘도 없고 귀찮은 듯한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사람의 감정을 살필 만큼 여유가 없었기에 그럼 난 어떻게 해야되냐고 다시 물었다. 귀찮다는 듯이 응대하는 경찰관의 태도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법이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나처럼 당한 피해자들은 도대체 어디가서 하소연해야 하는 건지 참 난감했다. 경찰과의 대책 없는 실랑이를 계속하다 불현듯 누군가 떠올랐다. 나는 얼른 전화기를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바로 내 담당 형사님이었다. 새터민들은 하나원에서 출소하여 주거지로 가면 해당 파출소에서 담당 형사님들을 배정해준다. 입국한 시기부터 초기 5년 동안 형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행히 그때 형사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결과는 완전 성공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귀찮다는 듯이 나를 대하던 경찰이 형사님이 직접 와서 이 친구 이렇게 처리해주라며 서류를 내밀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듯 경찰관은 좀전에 귀찮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바로 처리해주었다. 그때 생각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권력 권력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어쨌든 형사님의 도움으로 나는 반성문 같은 것을 그 자리에서 A4 2장 정도 쓰고나서야 경찰서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공범이 아니라 피해자라는 사실만 입증이 됐을 뿐 어쨌든 내 계좌가 범죄에 사용된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그때 그 일이 있은 후 1년간은 불편하지만, 항상 은행 창구에 가서 업무를 봐야만 했다. 1년간 은행 업무를 창구를 통해서만 보면서 역시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몸소 체험하며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한순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눈이 멀어 몇 푼 안되는 돈을 벌고자 잘못된 길을 갈뻔했던 지난 날의 창피한 기억이 이 글을 쓰며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창피해하지도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조금은 어리석고 아팠던 그때의 그런 순간들이 모여 이젠 내 안의 단단한 기둥이 마련되었고, 덕분에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견고한 마음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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