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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14. 2024

이방인

내가 이방인의 삶을 살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내가 이방인의 삶을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향에서는 엄마가 행방불명됐다는 이유로 매일 정부의 감시 속에 살아야 했고, 중국에서는 국적이 없어 죄지은 사람처럼 숨어 살아야 했다. 고향에서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모든 것을 감시당하고 중국에선 국적이 없어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밖에도 맘대로 못 나가고 특히 엄마가 북한으로 북송된 후 나의 삶은 항로를 잃은 배가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 같이 막막하기만 했다. 툭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새아빠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갖은 협박을 받으면서도 그곳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는 현실에 얼마나 많은 좌절을 했는지 모른다.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고향에서는 매일 감시 속에 살았지만, 그런 고향이 얼마나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고향에는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무엇보다 가족이 있고 국적이 있었으니까. 국적 없이 숨어 사는 타국에서의 이방인의 삶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내 나라가 있고 국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나라를 위해 독립운동하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잠깐 동네에 산책이라도 나가면 동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은 기본 어디 도망가는 거 아니냐며 감시까지 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가는 곳마다 감시를 당하고 수군거림을 들어야 하는지 때로는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도대체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불행하기만 한지 한탄스럽기도 했다. 미성년자라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다행히 어려서 잘할 수 있는 게 딱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습득력이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 중퇴 이후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중국에서 약 5개월 정도 머무는 동안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뮤비를 많이 보면서 중국어 자막을 통해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이해하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가장 최악의 순간에 나는 나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중국어를 알아듣고 쓸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새아빠와 동네 사람들은 대놓고 내 앞에서 험담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이것을 역이용하면 이곳을 탈출할 수도 있겠다고.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탈출할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마침내 지옥 같은 현실에서 탈출하게 됐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이방인의 삶. 나에겐 그 짧은 순간이 비극이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죄를 지은 것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 누군가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 이유 없는 감시를 당하며 매일 숨죽이며 살아가는 것. 말 그대로 철창 없는 감옥이었다. 잠시였지만, 이방인의 삶을 경험하며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나는 나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이 비유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나의 상황은 꼭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는 표현과도 같았다. 어쨌든 나는 새롭게 발견한 나의 재능으로 습득한 중국어를 이용해 그곳에서 홀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이방인의 삶은 나에게 아픈 기억이지만 그 아픔을 지니고 미래를 살아갈 마음은 없다. 내 인생의 앨범 속 한 페이지에 당시 아픈 추억 그대로 간직하려 한다. 그 순간마저도 내 인생의 일부이고, 인생은 한 편의 앨범과도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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