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고향은 북쪽에서도 아주 끝 쪽에 위치한 함경북도 청진이다. 겨울이면 하얀 눈 세상으로 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내가 할머니 집에서 살 때 눈이 1미터 이상 와서 문이 안 열렸던 적이 있었다. 분명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눈이 바닥에 조금 깔릴 정도였는데 밤새 얼마나 많이 왔는지 아침에 출입문을 열 수가 없었다. 결국,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생긴 작은 틈으로 눈을 조금씩 걷어내고서야 겨우 문을 열 수 있었다.
어린 나는 눈이 오면 마냥 신나서 동네 친구들과 눈싸움도 하고 눈밭에 뒹굴기도 하며 놀았었는데, 할머니에게는 얼른 치워야 하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도 모르고 나는 눈을 밟을 때마다 마치 포근한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푹신해서 눈 위에 발자국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 내 고향의 겨울은 눈 오는 것이 일상인 곳이다 보니 아이들의 교통수단이자 유일한 놀 거리는 바로 눈썰매였다. 나에게도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눈썰매가 있었는데 나에게도 유일한 교통수단이자 놀 거리였다. 겨울에 눈썰매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됐다. 학교도 갈 수 있고, 장작이나 짐도 나를 수 있는 아주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다. 겨울방학이었던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강냉이를 튀겨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당시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져 비싼 과자 같은 것을 먹을 형편이 안 돼서 강냉이가 유일한 겨울 간식이었다. 나는 신나서 눈썰매에 2킬로짜리 강냉이 자루를 싣고 집을 나섰다. 강냉이 자루가 실린 눈썰매를 끌고 강냉이 튀겨주는 집 언덕에 도착할 때쯤 눈썰매가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강냉이 자루가 없었다. 나는 놀랄 새도 없이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가 보았지만, 강냉이 자루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도 그때 그 강냉이 자루의 행방을 모른다. 내가 떨어뜨렸던 누군가 가져갔던 둘 중 하나일 텐데. 뭐가 됐든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길 바랄 뿐이다.
나는 강냉이 자루를 잃어버리고 부모님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도저히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안 났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 집으로 도망갔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서 할머니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언제 가든지 항상 반겨주시는 분들이었다. 그날도 이 밤에 무슨 일로 왔는지 묻는 대신 어떻게 혼자 왔느냐며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더니 안 먹었다고 하니 바로 따뜻한 밥부터 챙겨주셨다. 나는 할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낮에 있었던 일을 다 말씀드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귀엽다는 듯이 나를 보며 웃으셨다. 나는 혼자 한껏 예민해져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웃지 말라며 내일 엄마에게 뭐라고 말하냐며 짜증 냈다. 할머니는 괜찮다며 그런 일로 엄마가 혼내지 않을 거라고 달래줬다. 그래도 나의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떨쳐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이미 엄마가 와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할머니와 이야기 나누는 엄마 목소리를 듣고 다시 이불을 덮고 자는 척했다. 하지만 이내 할머니가 들어와 밥 먹자며 나를 깨웠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나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엄마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밥 먹으라며 숟가락을 쥐어 주었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잘해주는 엄마의 행동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평소 같으면 덜렁거린다며 혼냈을 엄마인데 어딘가 달라진 엄마의 행동이 너무 낯설었다.
밥을 다 먹은 후에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이야기했다. “소원아,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엄마 아빠가 밤새 잠을 못 잤어.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마. 알겠지?”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부모님의 걱정 어린 마음과 사랑을 너무 몰랐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무작정 혼낼 것 같아서 할머니 집으로 도망쳐 왔는데 나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부모님이 밤새 잠도 못 자고 나를 걱정했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말없이 꼭 안아주었다. 나는 강냉이 한 자루를 통해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을 알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만 한다며 짜증을 냈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그때의 부모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해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때의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도 모르고 어린 나는 투정 부리고 이기적으로 굴었다. 다른 집 부모들과 비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부모님은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나에겐 감사한 존재라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부모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니까. 자식들이 아무리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한다고 해도 자식을 향한 무한한 부모님의 사랑은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위로부터의 사랑은 있어도 아래로부터의 사랑이 없다는 말이 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강냉이 눈썰매 사건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어쩌면 나는 강냉이 자루 대신 부모님의 사랑을 실은 눈썰매를 끌고 할머니 집으로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서로의 교감을 통해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 감정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사랑을 느낀다면 그건 분명 사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