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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16. 2024

살아야 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 힘든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살아야 했고, 그 상황을 이겨내야만 했다고. 애석하게도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는 기적 같은 방법은 없다. 단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는 것 말고는 말이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몇 평 되지도 않는 철창 속 단칸방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 방과 화장실의 구분이라고는 겨우 중요 부위만 가릴 정도의 낮은 벽이 전부인 곳. 철창 속에 갇힌 동물처럼 때 되면 주는 밥을 먹고 마치 주인이 찾으러 와야만 나갈 수 있는 동물처럼 나갈 수 있는 날만 기다리며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이어가는 삶. 낯선 이들과 함께했던 태국교도소에서의 생활은 당시 나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그곳에서 자칫 행동 하나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낡고 얇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울기도 하고 담요에서 나는 냄새를 피하려고 코만 내놓은 채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나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은 작은 수첩과 볼펜뿐이었다. 좋아하는 노랫말을 적기도 하고 시인처럼 내 나름의 시를 적으며 매일매일 버텼다. 가끔 어른들의 괴성이 오가는 소리가 들려도 나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저 담요를 뒤집어쓴 채 쥐 죽은 듯이 있었다. 처음엔 싸움이 나면 어찌할 바를 몰라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때 어떤 분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조용히 한마디 건넸다.

 “내버려 둬. 괜히 말리려고 했다가 네가 다쳐.”

그분의 말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자유가 없는 감방에 갇힌 그곳에서 나갈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에게서 나오는 예민함과 폭력적인 면들은 억압된 자유와 기본적인 인권이 사라진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 태어난 고향을 떠나왔는데 타국에서 죄명도 모른 채 다른 죄수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으니까.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들이 죄수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었다.

다행히 나는 다른 분들보다는 조금 일찍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보호자도 없이 낯선 이들과 함께 지내며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살아야 했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가끔 화가 난 어른들이 하소연하듯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라는 말을 스치듯 듣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나는 내 목숨이 너무 소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었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한 질문에 대답해 드린다면, 내 인생에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 목숨이 소중했고 삶이 소중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태국교도소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람이 최악의 상황에 몰리게 되면 평소에는 복잡하고 흐릿하게만 보이던 길도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이렇게 선명하게 나뉘는 선택의 기로에서 말 그대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유명한 대사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지 그대로 삶을 끝낼지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나는 무조건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희망 하나로 과거의 힘든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고, 지금의 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인생에 지친 분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감히 그 힘듦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어쩌면 내가 만들어놓은 삶의 틀에서 홀로 고독하게 힘들어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보라고. 즉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어른들은 항상 설명이 필요하다.”라는 어린 왕자의 책 속 대사처럼 우리는 가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산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는데 꼭 그 속에 또 다른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의문점을 제기하거나 추측하는 것. 어렵고 복잡한 상황일수록 오히려 간단하게 본질만 보면 되는데 말이다. 어렵고 복잡한 상황일수록 할지 말지만 결정하면 문제는 매우 간단해진다. 알고 보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삶을 이어갈지 끝낼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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