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봄은 오지 않았다

by 디비딥

30대 중반. 나는 새로운 영화사에서 각색을 맡았다. 누군가가 쓴 초고를 조금 손보기만 하면 될 거란 만만한 생각으로 임했으나 한 편의 상업영화를 탄생시키는 일은 역시나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일단 영화사 대표님의 취향을 만족시켜야 했다. 대표님은 건달, 코미디, 시한부, 사랑, 가족애, 감동 등을 원했다. 생각해 보면 충분한 역량도 없었던 내가 이 모든 것을 시나리오에 담겠다고 덤벼든 것 자체가 내 인생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런저런 작품들의 모티브와 장면들의 짜깁기로 어쩌다 대표님의 취향을 만족시킨 원고가 나오더라도 이번엔 실질적으로 돈을 쥔 투자사 대표님을 만족시켜야 했다.

투자의 권한을 쥔 대표님 앞에서 영화사 대표님은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작품의 더딘 진행에 대해 공손한 말투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작가팀)에겐 찰진 욕과 고성에 능하시고 작품의 향방에 대해서도 확신하고 있었던 그도 제작비를 쥔 누군가에게는 별 수 없는 ‘을’이었다.


영화사 대표님은 투자사에게 ‘작가가 젊은 여자애다 보니...’라는 말로 변명을 시작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애’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함축한 말이었다.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이었다. 하필이면 맛있게 점심을 먹고 ‘그래 짜증 나고 답답하지만 다시 열심히 써보자’라는 참으로 건설적인 다짐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오던 그때 말이다.


문이 활짝 열린 대표님의 사무실에서 들려오던 그 말을 애써 못 들은 척하고 책상에 앉았다. 그럴 때일수록 쿨 하게 굴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대표님이 시작했던 말의 뒷말을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쓰라는 시나리오는 상상력이 꽉 막혔으면서 대표님이 하려던 말을 완성하는 데에는 내 모든 잔머리가 민첩하게 굴러갔다.


1번. 작가가 젊은 여자애다 보니...... 세상물정을 모른다.

2번. 작가가 젊은 여자애다 보니...... 사나이들의 스토리를 힘 있게 치고 나가지 못한다.

3번. 작가가 젊은 여자애다 보니...... 그 흔한 조폭 코미디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4번. 작가가 젊은 여자애다 보니...... 아무래도 남자 작가를 뽑았어야 했다.

5번. 작가가 젊은 여자애다 보니...... 능력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만 세다.


떠올린 문항 중에 정답이 분명히 있으리라 확신했다. 어쩌면 중복답안이거나 모든 문항이 답일 수도 있었다.

그 순간의 나는 형님의 눈 밖에 나서 조직으로부터 팽 당하기 직전의 똘마니 신세나 다름없었다. 내가 보았던 수많은 갱스터영화에서처럼.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한없이 삐딱해졌다. 원래 갱스터영화에서도 팽 당한 똘마니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작정하고 미친놈이 되기 딱 좋은 법이다.

처음 대표님을 만났을 때, 그분은 눈빛과 표정과 말투 모두가 갱스터 자체였다. 한마디로 거침없고 임팩트가 있는 분이셨다. 그래서 늘 긴장하고 움츠러들었었다. 어쨌든 눈 밖에 나지 않아야 하고 시나리오 작가로 간절히 데뷔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실현의 시간은 막연해지고 마음도 내성이 생긴 탓인지, 아니면 어차피 팽 당한 인생 될 대로 되란 식인지 나는 마음대로 무례해졌다. 티가 날 정도로 대표님에게 건방을 떨었다. 어쩌다 다른 영화 관계자들과 합석한 자리에서도 나는 대표님이 말할 때에는 무표정으로 침묵하거나 대놓고 재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물론 대표님에 대한 나의 무반응이 효과를 얻으려면 다른 분들이 말하는 별로 웃기지 않은 말들에는 호들갑스러운 리액션을 해야 했다.


좀처럼 삐친 마음이 풀리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원고를 고치라는 수정사항이 내려졌고 대표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태연하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 구상이 되지 않는다는 나만의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었고, 당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진 않겠다는 저항의 표시였다.


수정원고를 확인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온 대표님은 나의 이러한 작태에 제대로 꼭지가 돌았다. 그분도 많이 참고 있었던가 보았다. 참으로 햇살이 좋았던, 봄기운이 성큼 다가온, 아름다운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살면서 들어야 할 욕의 대부분을 그날 찰진 육성으로 들어야 했다. 이판사판이 된 나도 따박따박 말대답을 했고 그것이 의도치 않게 그분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던 것도 같다.


며칠 후 쓰던 원고를 거지같이 마무리하고 나는 영화사를 나왔다. 더 이상 근무할 수 없는 합당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 ‘저는 시나리오를 쓰기에는 부족한 인간이고 그래서 이 바닥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렸다. 신중한 판단임을 어필하기 위해 겸손하고 비장한 태도를 갖추었다.


버스 정류장 3개 정도의 거리를 하염없이 혼자 걸었다. 그날 이후 봄이 온 줄 알았던 날씨는 작은 실개천을 지나는 다리에서조차 칼바람이 불어 눈물 콧물 젖은 피부를 더욱 아리게 했다.

인생이 제대로 꼬였고 꼬인 매듭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이 막막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지금은 연락처조차 모르는 대표님이 건강하시길 빈다.

그리고 지난날 치기 어린 나의 무례함에도 용서를 빈다.

대표님이 했던 날카로운 쌍욕의 세리머니 속에 담긴 메시지는 사실 틀린 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야 알았다. 하지만 그때 그 현장에서의 살벌함은 성숙하지 못한 나이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신뢰를 잃은 조직의 똘마니는 더 이상 보스의 심연을 이해할 여력이 없는 법이다.

그렇게 나는 또 실패했다.

이번의 충격은 좀 더 컸다. 세상 제일의 모지리가 된 기분이었다.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내 모습을 보이기가 참담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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