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변두리와 버스종점

by 디비딥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날라리는 아니었다. 어쩌면 표면적으로는 모범생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모범생이라 자부하진 못하겠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며 할 수 있는 일탈의 대리경험을 엄청나게 했기 때문이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썼던 시나리오는 2년 가까이 표류하다가 보기 좋게 엎어졌다. 우리가 쓴 작품이 엎어짐과 동시에 일하던 영화사도 휘청거리더니 자연스럽게 폐업의 수순을 밟았다. 한때 한석규, 심은하, 고소영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제작했던 영화사는 영화 두 편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고 똘똘하지 못한 다음 작품의 대본(그게 바로 우리 팀이 쓴 시나리오다)도 표류하다 보니 순식간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장르를 쓴다는 기쁨과 입봉한 시나리오 작가가 된다는 기대는 보기 좋게 날아갔다. 그리고 나는 허허벌판에 홀로 남은 듯한 30대 고독한 백수가 되었다.


회사가 없어졌어도 노트북과 손가락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다른 작품을 써보겠노라 결심은 했던 것 같다. 이제 팀으로 기계적인 장르공식에 맞춰 써야 하는 기획영화 시나리오가 아닌, 진정한 내 작품을 써보겠노라는 거창한 포부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내 계획은 회사가 사라지고 소속감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내 처량한 신세와 불안으로 인한 방어적인 객기에 불과했다.


‘넌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니?’

온 세상의 시선이 나를 그렇게 쏘아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시선과 기분을 느낄 때마다 나는 꽤나 사나워졌던 것 같다.

가족들은 ‘쟤가 돈도 없고 결혼도 못하니 노처녀 히스테리가 온 것’이라 진단하고 있었다. 영화로 치면 지극히 상투적이고 재미없으며 뻔한 캐릭터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그러니 나는 더욱 수긍할 수 없었고 더욱더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웃지 않으면 화난 사람처럼 보이는 내 얼굴은 누군가 뱉은 침까지 맞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이런 일이 기억난다.

그날도 나는 꽤나 막막하고 암울했을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아쉽고 아까울 게 하나도 없을 만한 하루였을 것이다. 서울의 길바닥 어느 곳을 하루 종일 헤매다 지하철을 탔다. 좌석의 가장자리 은빛 기둥과 나의 등을 감싼 붉은 벨벳의 등받이가 하루 중 유일하게 아늑하다고 느낀 순간, 나는 깜박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한산했던 지하철은 만원이었고 내 앞에는 어린 남자아이와 엄마가 서 있었다. 아이는 장난을 치고 싶은데 가용공간이 넉넉하지 못해 엄마의 다리와 앉아있던 나의 다리까지 수시로 건드리고 있었다.

자리를 양보할까 고민하다가 귀찮기도 해서 그저 아이를 바라봤던 것 같다.

'나 애들 진짜 안 좋아하는데 꽤나 귀엽네, 그래 자리를 양보해 주자.'

결심을 굳힐 때였다.

"엄마, 무서워."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황급히 엄마의 다리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귀엽다고 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 다 듣도록 큰 소리로 공포를 호소하며 아이는 내 앞에서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때리지 않았다.

내 다리를 그렇게 건드려도 아무 말 안 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그런 나를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의 내 표정이 얼마나 음산하고 썩은 표정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시선은 솔직한 법이다. 되는 일도 없고 신세도 처량한 것은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내 능력, 내 표정, 내 존재는 역시 세상과 친하지 못하는 건가, 자학했다. 세상으로부터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나날이 내 앞에 하염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낮에는 온갖 청승을 떨며 배회하다가 밤이면 버릇처럼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그때 보았던 영화들은 주로 잘난 세상 밖의 이방인들, 아웃사이더들이 나오는 영화들이었다.

그런 영화들 중 하나가 일본영화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이었다. 기억하는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남자가 있다.

막막한 미래, 막연한 불안. 그렇게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남자.

우연히 휠체어에 탄 또래의 여자를 알게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좋아해서 붙인 이름 조제.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는 할머니와 사는 그녀는 좁은 방안 자신만의 세계에서조차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한 단단함이 있다.

불안한 청년인 츠네오는 그녀와 대화하며 표준의 삶에 입성해야 하는 압박감에서 잠시 해방의 기분을 느낀다. 그들의 관계는 점차 사랑으로 변하고 사랑을 나누지만 그들에겐 누구에게도 일방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이별한다.


당시 이 영화는 대놓고 흥행하지는 않았어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나 입소문으로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세계에서도 이방인이 된 듯한 그때의 나는 이 영화가 많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조제가 만드는 자신의 공간과 그녀만의 자존심이 위로가 되었다.

평범하고 표준적인 삶의 틀에 입성할 용기도, 그렇다고 혼자 힘으로 멋진 시나리오를 완성할 용기도 나는 없었다. 어떤 것도 제대로 포기되지 않았고 붙잡을 만한 용기도 없었다.

생활보조금을 받으면서 장애인으로 사는 조제는 스스로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런 자신감과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 그녀가 갖는 자존감은 불안한 청년 츠네오의 그것보다 훨씬 강했고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사랑에 대한 대단한 판타지나 숙명적인 감정은 없어도 두 청춘남녀가 서로의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다 헤어지는 이야기는 참으로 담백했다.


나는 왜 이렇게 현실적이고 담백한 상황에서도 섬세한 이야기를 그리는 재주가 없을까, 아니 작은 이야기를 알차게 그려볼 생각도 못해봤을까 반성도 했던 것 같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때 내가 썼던 습작 중에는 자존심 강한 휠체어 소녀와 지하철 역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 사이의 이야기가 있었다. <조제...>의 이야기를 표절한 것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도 이 작은 이야기가 내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은 영화 자체의 감동보다 표절의 대상이었던 점이 더 클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작품을 보며 신선한 충격과 배운 점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뻔하고 동정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캐릭터를 창조하는 힘,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만나지만 누군가의 큰 반대의 벽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들로 각자의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 그런 것들이 더 큰 감정의 울림을 준다는 점이 새로웠다. 사랑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허세를 부리면서 나는 사실 사랑이야기에 대한 상투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간절하게 작가가 되고 싶었고 내가 쓴 작품이 재미있는 영화로 제작될 날은 그토록 꿈꿨지만,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은 한참 멀어 보였다. 어느덧 삼십 대 중반으로 가고 있는 마당에...

이 영화 외에도 그때의 나는 일본영화와 드라마들을 많이 보았다. 세상에 고립되고 외로운 기분이었던 그때,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선 나보다 더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씩씩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장애인을 다룬 또 다른 일본 드라마 <<뷰티플 라이프>>나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친구의 삶, <<키즈리턴>>과 같은 작품들은 마치 내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평범한 삶이 아니어도,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살면서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거나 크게 의식하며 살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세상의 안과 밖을 최초로,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변두리의 작은 동네에서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내 식대로 산다고 자부했었는데, 그런 자신감과 믿음이 산산이 무너지는 듯했다.

내가 경험했던 영화판은 그저 좋아하는 열정만으로 부딪치기엔 너무나 많은 재능과 인내와 우연들이 뒤섞여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거대한 우주였다. 작은 세계에서 꿈꾸고 즐기고 살았던 내가 겁 없이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세상을 몰랐다. 모른 채 배짱을 키웠고 근거 없이 낙관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살던 동네는 버스종점이 늘 가까웠다. 시골에서 단돈 만원 들고 올라와 자리 잡은 우리 아버지가 깡촌인 고향에 가면 서울서 성공한 박서방이 되고 우리 남매는 세련된 서울내기가 되었다. 하지만 서울은 큰 도시다. 그리고 버스종점이 가까운 나의 동네는 서울 중에서도 변두리지역이었다.

내가 본능적으로 아웃사이더나 세상과 불화하는 인물들을 좋아하는 것이 내가 살았던 나의 공간과도 관련이 있는 것일까, 가끔 생각한다.

청년실업이 만성화되고 경제 불황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의 청년들이 들으면 참으로 엄살이 지나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어느 곳에서 부유하는 불안이 만성화되고 편의점 간편식이 주식이 되어버린 청년들을 생각하면 이제 오십이 다 된 아줌마의 지난 시절의 불평이 창피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로 솔직하게 돌아가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거대한 불안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내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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