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홍콩영화들을 추억하며 신바람이 난 김에 내 맘대로 꼽은 홍콩누아르 영화의 걸작들에 대해 마음대로 떠들고 싶어 진다.
20세기, 사춘기, 홍콩영화, 주윤발 등의 추억의 단어를 떠올리다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영화 <<첩혈쌍웅>>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역시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이미 영웅본색 시리즈에 맛이 갈 대로 가 있었던 나는 주윤발의 새로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피를 나눈 두 영웅(첩혈쌍웅)'이라는 비장한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나는 영등포의 극장으로 신속하게 달려갔다. 당시 영등포에는 연흥극장과 경원극장, 그리고 영보극장이 대표적인 개봉관이었다. 종로에 있는 영화관들(서울극장, 피카딜리 등)에 비해 B급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헐리우드 영화보다 홍콩영화를 우선적으로 개봉하는 곳이어서 그 시절 나의 주된 놀이터가 되었던 곳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첩혈쌍웅>>의 내용은 이랬다.
주인공인 주윤발은 전문킬러다. '올빽'의 '슈트빨' 죽이는 이 형님은 조직에 속하지 않고 독고다이로 의뢰받는 일을 처리하는 프로다.
형님은 비 오는 날 성당에서 또 한 명의 죽일 놈을 의뢰받는다. 문제의 그날, 형님은 어김없이 프로페셔널한 솜씨로 놈들을 처리하던 중 카페의 여가수를 다치게 하는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그녀는 시력을 잃는다.
차가운 킬러에게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민간인에게는 아무런 불만 없고 자애롭기까지 한 형님이었는데 말이다.
형님은 몹시 괴롭다. 그래서 결단한다.
그녀에게 시력을 되찾아 주기 위해 또 한 번의 위험한 살인의뢰를 수행하기로.
차갑고도 완벽한 킬러에게 뜻하지 않는 사건과 양심의 가책.
몸담고 있는 세계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면서 외롭게 인간쓰레기들을 청소하는 삶.
'슈트빨' 좋은 멋진 남자도 세상에 동화되지 못하고 외롭다는 것, 그리고 냉정하게 사람을 죽이는 그에게도 순정이 있다는 것.
멋진 남자가 보여주는 인간적이고도 모순적인 갈등에, 그리고 현란한 총격 씬에 나는 또다시 깊이 빠져들었다.
홍콩 누아르는 이제 막 세상이 뭔지 궁금해지며 자의식이 성장하던 나에게 세상은 거칠고 냉혹한 곳이며 무엇을 하든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비정한 교훈을 던져주는 인생교본이었다. 사춘기 여자애가 점점 여성성에서 멀어지고 말도 행동도 터프한 캐릭터가 되었던 이유도 홍콩 누아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라 마음대로 진단하는 바다.
주윤발과 오우삼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홍콩 누아르에 깊이 취한 나는 이후 홍콩영화라면 모조리 보았고 그 이후 갱스터 혹은 누아르라는 말이 붙은 뒷골목 컴컴한 영화라면 무엇이든 보기 시작했다.
<<대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좋은 친구들>>, <<언터처블>>도 그때 보았던 작품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춘기 소녀가 만만치 않은 거친 세상을 깡다구와 물불 가리지 않는 객기로 덤벼드는 사나이들을 보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가 보다. 또한 그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뻔한 잣대로 줄 세우는 학교의 답답함을 망각하는 짜릿한 수단이었던 것도 같다.
그 시절 홍콩영화의 추억담을 늘어놓으니 반백의 중년이란 현실을 망각하고 여전히 피가 끓는다.
영화사에서 처음으로 상업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던 시절, 나는 가까운 사람의 행복을 위해 위험한 도박을 감행하는 형님의 고독한 결단과 비애를 작품에 투영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금 <<첩혈쌍웅>>을 반복해서 봤고 그 시절의 깊은 감상을 되새김했었다. 아이디어가 심각하게 딸리니 가장 열정적으로 영화를 보던 시절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추억의 영화에 취하고, 취하다 보니 과잉된 비장미와 현실성 없는 장면들조차 쓰고 있는 작품의 허술한 부분을 채우는 합리화의 구실로 이용했던 것도 같다. 서툰 작가의 어리석은 선택들이었다.
<<첩혈쌍웅>>이 다듬어지고 완벽하게 미화된 킬러의 모습을 그린 누아르였다면 <<열헐남아>>는 뒷골목 삼류들의 지질한 누아르였다.
영화의 주인공은 유덕화. 극 중 이름이 분명 있었지만 내겐 그저 유덕화로만 기억하고 있다. 아니 그러고만 싶다.
유덕화는 건달이다. 말이 좋아 건달이지 거느리는 동생이라곤 고작 두 명에 큰 조직 산하에서 뒷골목 유흥업소나 관리하는 양아치에 가깝다. 그러니 벌건 대낮에 자빠져 자고 밤이 되면 뒷골목을 나가는 삶을 살고 있으며 복장은 멋진 슈트가 아닌 '난닝구'와 '잠바떼기'다.
어느 날 그는 먼 친척뻘 되는 여자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녀는 무려 장만옥. 이쁘다. 당연히 젊은 남녀가 한집에서 지내다 보니 사랑이 싹트려 하는데, 문제는 그의 똘마니, 장학우다.
사실 유덕화는 왕년에 사람도 좀 죽여보고 조직에서 총애도 받으면서 잔혹한 조직원으로 살아봤지만 지금은 이 바닥 생활에 지친 상태다. 그런데 장학우는 주목을 받고 싶어 환장을 한 인간이다. 지금의 똘마니 상태로 무시받고 허세를 부리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업종의 특성상 거친 언사와 폭력, 피바람을 일으킨다. 그럴 때마다 유덕화 형님은 사건의 해결사로 나서야 하고 동생도 타일러 보지만 좀처럼 그는 말을 듣지 않는다. 30분, 아니 단 1분이라도 영웅이 되지 못해 안달이 난 놈이니 형님의 말귀를 알아들을 리가 없다.
조용히 살면서 사랑이나 하고 싶은 형님의 소박한 마음일랑 아랑곳없이 조직에서 터지고 당하는 똘마니 동생 때문에 유덕화 형님의 삶은 고단하고 바쁘다. 의리를 선택하자니 장만옥이 울고, 사랑을 선택하자니 장학우가 피 칠갑이 되어 나타난다.
<<열혈남아>>는 지금은 화려한 비주얼리스트로 추앙받는 홍콩의 영화감독 왕가위의 데뷔작이었다. 그 당시 오우삼으로 대표되는 화려하고 장엄한 홍콩누아르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단조롭게, 혹은 비틀면서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과 방황을 그린 작품이었다.
나는 아직도 홍콩영화를 추억하면 정제되고 화려한 <<첩혈쌍웅>>과 그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한 것 같은 <<열혈남아>>가 양대 산맥으로 동시에 떠오른다.
세상을 잘 모르던 시절, 10대의 내가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장학우를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 놈 때문에 유덕화와 장만옥의 사랑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원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주윤발의 홍콩 누아르에 비해 한참 지질하고 투박한 이 영화가 오래도록 곱씹어진 것은 사실 20대가 훌쩍 지나고 나서였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그토록 미워했던 장학우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30분이라도 영웅이 되기를 소망하다가 단 1분이라도 영웅이 되고 싶다던 장학우는 그저 영화가 좋아서 무모하게 뛰어든 나의 청춘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실수와 실패를 연발하지만 그럴수록 강렬해지는 존재증명에 대한 욕구는 나의 청년기를 온통 지배했던 화두였다.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럴수록 미련한 집착에 휩싸여 있었다. 바보 같고 무모한 장학우처럼 말이다.
그때의 나는 왜 이토록 홍콩 누아르에 열광했을까?
비정한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인간. 그럼에도 인간의 온기를 버리지 못해 더 나락으로 빠지는 비극을 꽤나 낭만적으로 여기며 좋아했을 수도 있다. 혹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세상이 가진 이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나의 그런 욕구에 딱 부합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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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세상을 알아간답시고 누아르 영화를 보았으면서 정작 세상과 누아르 영화 사이의 간격은 모른 채 살고 있었다.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단적으로 느꼈던 일화가 있었다.
대학시절 나는 가능성 무한한 청춘의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보냈다. 그날도 어김없이 강냉이를 무제한 제공하는 싸구려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는, 인생에 막연한 걱정과 기대, 허세가 적당히 뒤범벅이 되었던 그때의 우리들은 실속 없는 말들을 떠들며 웃기도 하고 한숨을 짓기도 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나는 영등포 쪽으로 향하는 지하철 막차를 간신히 탔다.
늦은 평일의 지하철 1호선 막차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가장 끝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좌석 옆 난간을 베개 삼아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우당탕 소리가 들리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일어나 다른 칸으로 흩어지는 광경이 잠에 취한 나의 희뿌연 시야에 들어왔다. 크고 거친 욕설이 아득히 들려오고 있었다. 시야가 조금 더 선명해졌을 무렵, 내 앞에선 흥분한 두 남자가 격투기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차림은 내가 <<열혈남아>>에서 보았던 유덕화의 옷차림, 바로 난닝구 바람이었다. 그들은 어찌나 흥분을 했던지 입고 있던 셔츠를 이미 벗어던진 상태였고 상대의 난닝구를 찢어가며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영화로 무수히 보았던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당혹감에 잠이 완전히 달아나는 순간, 베개로 삼았던 좌석의 난간 은빛 봉에선 빨간 핏물마저 흘러내리고 있었다.
움직이면 그들의 공격을 받을까 봐 원래 하던 일, 즉 잠자는 척을 계속하며 싸움이 끝나길 바랐던 긴박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실의 <<열혈남아>>는 왕가위 감독이 스탭 프린팅으로 담았던 스타일 가득한 난투극과는 많이 달랐다. 난닝구 차림의 파이터들이 그 순간 나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시비를 걸지 않은 건 생각할수록 퍽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홍콩 누아르를 추억하고 <<열혈남아>>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자동적으로 난닝구 파이터 아저씨들을 떠올린다.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생생하게 몸소 가르쳐주신 분들이었다. 지하철 막차에서 만난 파이터 아저씨들이 더 이상 남은 생은 난닝구를 찢고 찢기며 열받을 만한 일이 없이 사시길 빈다.
반백의 나이가 가까워짐에도 홍콩누아르 영화를 사랑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즐겁고 흥분된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과 게으름,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가 뒤범벅이 된 나의 현실은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 휘발되어버리고 만다.
사람이 미친 듯 뭔가에 홀려보는 경험과 기억은 꽤 오랜 유효기간을 갖는 것 같다.
사실 나는 홍콩영화와 눈부신 남자들에 너무 빠져 있어서 그때의 학업스트레스나 냉혹한 입시 현실 따위의 나의 현실을 망각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홍콩영화에만 빠져 있다가 뭐가 될는지, 누군가(특히 우리 부모님)는 나를 보며 그런 깊은 고민을 했을 테지만 말이다.
중국어도 모르면서 그때 흥얼거렸던 영웅본색의 주제가, 분향미래일자의 가사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모와이 모농 깜띠 딕시.... 로 시작되는 불멸의 주제가 말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국영이 불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