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추기경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가 서거했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열렸고 각국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들었다.
서거한 교황은 가톨릭의 전통수호를 중요시했다. 동성애와 낙태, 피임에 반대했고 여성과 기혼 남성의 사제 서품을 금지했다.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교황은 세상의 다양한 변화에도 지켜야 할 가치와 교회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위해 헌신했다.
전임자의 기조에 가장 맞는 계승자로 요제프 리칭거 추기경이 거론되었다. 독일 출신의 신학자인 그는 유럽의 상대주의와 세속주의로부터 교회 본연의 기능을 지켜야 한다는 보수주의자였다.
교회가 이런 화려함에 너무 익숙해있어요...... 아름답지만 비어있죠.
마치 재로 덮인 불꽃같아요. 이런 재를 날려 보낼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티니 추기경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세상의 변화에 화답하지 않는 경직된 교회의 권위와 질서에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소수들이었다.
요제프 리칭거는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를 이어 제265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된다. 그리고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이례적 사임 이후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다.
# 차이
호르헤 추기경은 은퇴를 준비한다. 더 이상 추기경이 아닌 평범한 교구 신부가 되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추기경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지위와 형식보다 그는 좀 더 자유로운 상태로, 낮은 눈높이로 신도들을 만나고 사목을 하고자 한다.
추기경 사임은 교황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여러 번 편지를 보냈지만 교황청으로부터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직접 비행기 티켓을 끊고 바티칸으로 베네딕트 16세 교황을 만나러 간다.
그를 마중 나온 수행인은 그를 교황청이 아닌 교황의 여름 별장으로 안내했다. 그가 답장을 받지 못한 이유는 베네딕트 16세 교황이 여름 동안은 교황청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베네딕트 16세 교황은 여러 가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교회 기밀문서의 언론유출, 바티칸 은행의 위법행위, 파벌주의로 인한 분열과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문으로 바티칸 교회에 대한 불신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추기경님이 날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 중 한 명이잖소.
(by 베네딕트 16세 교황)
별장에서 호르헤 추기경을 만난 베네딕트 교황은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확인해 간다. 탱고와 축구를 좋아하고 추기경에게 제공하는 공식숙소에 살기를 거부하는 추기경의 행보에 대해 낯설어하면서도 그의 자의적인 선택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청렴하고 소박하게 살면 나머지 성직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잖소.
교황이 보기에 추기경의 독특한 행보는 사제로서의 품위와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교황 앞에서 호르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교회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시대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말이죠. 교황님, 전 더 이상 영업사원이 되고 싶지 않아요.
(by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세상의 변화에 맞게 교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믿는 호르헤 추기경에게 교황은 변화는 ‘타협’ 일뿐이며 ‘주님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교황 앞에서, 추기경은 확고한 태도로 이렇게 말한다.
주님도 변합니다.
# 교감
서로의 입장과 차이를 확인하면서도 교황은 어쩐지 추기경의 사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추기경이 은퇴와 관련한 서류를 내밀려고 하면 애써 화제를 전환하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넓은 여름 별장에 교황과 추기경은 각자의 공간에서 머물게 된다. 언제나 혼자서 식사하는 교황 덕분에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걸 즐기는 추기경도 혼자 식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늦은 밤, 축구를 시청하고 있는 추기경의 방으로 교황이 찾아온다.
가장 힘든 일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오.... 특히 교황이라서 그런 것 같소. (by 베네딕트 16세 교황)
깊은 밤, 가장 사적인 시간. 교황은 생각도, 취향도 다른 호르헤 추기경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제임에도, 오히려 그런 위치여서 겪는 갈등과 자신의 한계에 대해 교황은 그 순간, 한 사람의 나약한 인간으로서, 부족한 신앙인으로서의 고민을 아르헨티나에서 건너와 추기경 은퇴허가를 받으려는 호르헤에게 털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꺼내려는 ‘은퇴’ 얘기에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만은 안 됩니다. 우린 아주 다르고 이견도 많지만 오늘 밤엔 그냥 형제처럼 있고 싶어요, 그래도 되겠죠?
교황은 호르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TV 시리즈를 알려주기도 한다. 이에 호르헤는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가장 사소하고 사적인 대화들로 무르익는다.
같이 있으니 좋군요. 난 늘 혼자였소.
추기경과 교황은 모든 면에서 다르다.
한 분은 탱고와 축구와 대중 팝을 좋아하고 다른 한분은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즐긴다.
한 분은 함께 식사하는 것을 즐기지만 다른 한분은 조용히 혼자서 식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 분은 세상의 변화에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진보적인 추기경이고 다른 한 분은 전통과 규범을 통해 교회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고 믿는 보수적인 교황이다.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묻고 들으며 사제로서의 삶과 소명에 대한 같은 고민을 가진 사이라는 사실을 공유한다.
그렇게 그들의 차이는 교감으로 변한다.
# 고해
추기경님의 스타일과 방법은 나와는 완전히 달라요. 말하는 거나 생각, 행동 대부분 동의하지 않소.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왜 베르고글리오가 필요한지 이해할 것 같소. (by 베네딕트 16세 교황)
사실 교황은 호르헤 추기경의 사임을 승인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교황으로서 가장 위기에 봉착했으며 스스로도 한계를 느끼는 시점에 베네딕트 16세 교황은 오히려 자신과는 가장 다른 사제(호르헤 추기경)와 대화하고 그에게 왕좌의 무게를 건네주려 한다.
교황의 지위는 원칙적으로 종신직이다. 만일 그가 중간 사임을 한다면 이는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 만의 일이 되는 것이다. 지켜야 할 자리가 막중한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방어논리를 강화하고 그것이 확증편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베네딕트 16세는 그러지 않았다. 오늘도 세속의 논리에 허우적대는 이들에게 종교와 사제들의 말씀이 여전히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이런 순간들 때문인가 보다.
교황은 호르헤 추기경에게 가장 먼저 사임의 의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에게 교황의 직위를 권유한다. 그러자 호르헤 추기경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그는 교황에게 과거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시절, 자신이 속한 예수회를 지키기 위해 군부와 했던 중간적 타협과 그로 인한 비극과 오해, 그리고 속죄를 위한 시간들에 대해 괴롭게 고백한다.
우리 모두가 정신적 자만심에 시달린다오. 모두 그래요. 기억해 두시오. 당신은 신이 아니에요. 신과 함께 우리는 움직이고 살고 존재합니다. 신과 함께 살지만 신은 아니에요.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by 베네딕트 16세 교황)
교황은 호르헤의 고해성사에 이렇게 답해주며 이번에는 자신이 추기경에게 고해성사를 시작한다.
사제들의 성추행 비리에 눈감았던 순간과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나서지 못했던 것, 그리하여 더 이상 성좌에 앉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대해 말이다.
영화는 베테딕트 16세 교황의 이례적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기까지의 과정 속에 숨어있었던 이야기를 일부는 들추고 일부는 상상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두 사제의 격렬한 논쟁과 대화를 통해 교감하고 고해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시대의 ‘어른’이 갖는 품위와 품격을 느끼게 한다.
보수적 지향을 가졌던 베네딕트 16세의 용기 있는 내려놓음도, 격식을 내려놓고 세상의 변화에 함께 하고자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보적 행보도 그것이 ‘보수’이고 ‘진보’ 여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와 역할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단하고 화합했던 분들 이어서 아름답고 존경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권력이양이 아닐 수 없다.
프린치스코 교황에 대한 기억은 우리에게도 각별한 것 같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하여 퍼레이드 카로 광화문 광장을 통과하던 중 세월호 유가족의 호소에 차에서 직접 내려와 그들을 감싸 안았다. 그 밖에도 위안부 피해자들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 당시 국가의 충분한 위로에 목말랐던 이들은 국경과 종교를 초월하여 사제가 내미는 따뜻한 손길에 큰 위로를 받기도 했다.
교황의 행보를 두고 혹자는 정치적 편향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이들 앞에 이렇게 말했다.
아픔 앞에 중립은 없다.
느슨한 천주교 신자이지만 자부심을 갖게 해 주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