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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Mar 31. 2023

축하드립니다. 편입시험에 최종합격하셨습니다.

이상하게 자꾸 점수가 올라가네

설레는 마음으로 편입학원에 등록했다. 직장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불합격할 가능성도 있는 데다가, 만에 하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 공부하느라 일은 뒷전이냐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남몰래 직장인과 수험생의 이중생활을 이어나갔다.

    

공부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영어단어를 외웠다. 혹시라도 같은 버스에 탄 직원이 있진 않은지 틈틈이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시에 퇴근하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 일에 집중해야 했다. 저녁 6시가 되면 서둘러 편입학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컵밥을 후루룩 먹어치우고 양치를 하고 나면 6시 30분 수업을 6시 28분쯤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시간에 남은 자리는 대부분 맨 앞자리 밖에 없었다.


밤 10시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 배운 내용을 복습해야 했다. 머리를 말릴 때에도 손을 놀릴 수가 없어서 책을 펼쳐 들고 머리를 말리다 보니 종이에 자주 물얼룩이 졌다. 래도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까  피곤했지만 고생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 즐거웠다.


어쩌다보니 올해 1월부터 교회 청년부 회장과 찬양팀을 맡고 있었데 갑자기 청년부 목사님이 사정이 생겨서 중간에 그만두시게 됐다. 다른 분이 금방 오실거라 생각했지만 모집공고를 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 올해 예산을 어떻게 쓸지, 수련회를 언제 어디로 갈지, 매주 결정해야 할 일들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목사님이 안계시다보니 모든 결정을 내가 책임져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같이 봉사하는 임원들이 편입 공부를 내년으로 미루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대충 챙겨 먹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산책로를 달리자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어폰 볼륨을 거의 최대치로 높였더니 소리 내어 울어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다. 처음엔 화가 났다. 내 인생에는 왜 이리 걸림돌이 많은 건가. 나쁜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겠다는 건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답답했다가, 원망스러웠다가, 서러웠다가, 낙담이 됐다. 그렇다고 맡은 일을 선뜻 내팽개칠 용기도 나질 않았다. 결국엔 나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공부를 평생 못하는 것도 아니고 올해만 못하는 거야. 내년에 다시 하면 되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한참을 달리다가 툭 멈춰 섰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눈물자국을 쓱쓱 닦았다. 그리고 편입학원을 그만뒀다(다닌지 2달도 채 안됐을 때였다).


집에서 혼자 공부하려니 공부할 맛이 안 났다. 전엔 학원 진도 따라가기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문법을 더 해야 하나, 단어가 먼저인가, 아니야. 독해도 잘 안되는데.' 하면서 우왕좌왕하느라 집중도 잘 안됐다.   


그러다 7월쯤에 학원에서 치르는 전국 모의고사를 봤다. 오랜만에 받아 든 점수는 아주 처참했다. 50점대가 나온 것이다. 틈틈이 공부를 했는데도 세 달 만에 30점이 뚝 떨어졌다. 친구들 중에 내가 꼴찌였다. 들은 신나게 놀려고 나는 우쒸, 하고 넘어갔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찍은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서 속이 쓰렸다. '올해는 진짜 안되나 보다. 내년에 다시 시작해야겠다.' 생각하고 스스로 체념하게 됐다.   


10월이 되자, 드디어 새로운 청년부 회장이 선출됐다. 그 김에 찬양인도 자리도 내려놓았다. 그때가 편입시험이 2~3개월 남았을 때였다. 12월까지 회장으로서 마무리해야할 일들이 남아있긴 했지만,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긴 건지 계획을 고 싶어졌다. 내년 말고 올해 시험에 붙는 걸로.


원래 다니던 편입학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오랜만에 온 학원은 이미 파장 분위기였고, 3월에 비해 자리가 반 이상 비어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인지 강의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고, 단어를 외워도 자꾸만 휘발되는 느낌이었다. 지금 와서 이런다고 몇 점이나 오를 수 있을까 불안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인지할 때마다 집중력이 흐트려지고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매달 점수가 올랐다. 새로 외운 단어가 시험에 나온 것도 아니고, 모르던 문법을 새로 알게된 것도 아닌데 10월에는 60점대였던 점수가, 11월엔 70점, 12월엔 80점대로 올라갔다. 성적표를 받아 들고도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 점수가 이게 맞나?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드디어 원서접수 시기가 됐다. 사회복지학과가 있는 학교를 찾아보니 성균관대학교와 중앙대학교가 있었다(나머지 학교들은 필기시험으로는 편입생을 뽑지 않거나, 학부가 아닌 대학원에만 사회복지학과가 있었다). 원서비가 워낙 비싸서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딱 3군데만 지원했다. 최근에 본 모의고사에서 '중앙대 합격가능, 성균관대 지원가능'이라는 결과를 받았는데, 처참했던 여름 모의고사 점수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결과였다. 이상다. 왜 자꾸 점수가 잘 나오는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시험을 치른 건 고려대학교였다. 사회복지학과가 없어서 지원하지 말까 했다가, 시험 경험을 쌓는다는 의미로 사회학과로 지원한 곳이었다. 그런데 웬걸. 필기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와, 찍은 게 백발백중이었나 보다. 그동안 모은 운을 이렇게 다 쓰는 건가! 논술시험과 면접만 통과하면 최종합격이었다. 지금이라도 논술 준비를 할지 고민이 잠깐 됐지만, 내가 배우고 싶은 건 사회복지니까 대학 간판에 흔들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래도 면접 분위기는 느껴보자 싶어 고려대학교로 향했다.  


질문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1. 왜 고려대학교에 오고 싶냐?

(실은 성균관대학교에 가고 싶어요.)

2. 왜 사회학과에 오고 싶냐?

(사실 사회복지학과가 더 좋아요.)

3.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각오는?

(거기까진 아직 생각을 못 해봤어요.)


차라리 어떤 경험을 했냐, 이런 상식에 대해 알고 있냐 같은 질문을 해줬더라면 잘 대답했을 것 같은데 괄호 안의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음... 음...' 진동소리만 내다가 헛소리만 줄줄 늘어놓고 왔다.


다음으로 치른 곳은 중앙대학교였다. 이때부터 진짜 긴장이 됐다. 그런데 하필 시험 날짜에 생리가 겹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시험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생리가 시작됐다. 그래도 다행히 준비해둔 진통제를 바로 먹었더니 시험에 방해가 될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마지막 시험은 성균관대학교였다. 내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순조롭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나머지는 다 알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해석이 안 되는 문제가 딱 하나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번개를 맞은 듯한 깨달음이 왔다!(이런 게 로또를 살 때 와야 하는데)


'이 지문, 얼마 전에 타임지에서 읽었던 내용이잖아!'


그러자 모든 문장이 술술 해석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정답을 찾았고, 그 순간 나는 합격을 확신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자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시험까지 무사히 끝낸 것도 기분 좋았고, 여기가 진짜 내 학교가 되겠구나 싶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신이 났다. "아싸! 신난다! 끝났어! 너무 좋아! 눈도 내려! 너무 예뻐!" 계단에 눈이 얕게 쌓여 미끄러웠지만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눈 맞는 시골개마냥 폴짝폴짝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그러고나서 얼마 후, 경기도 연천으로 출장 다녀오는 길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같이 간 출장지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축하드립니다.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뛸 듯이 기쁘다는 게 바로 이런 마음이란 걸 알게 됐다. 사람들 몰래 구석진 자리로 가서, 문자를 읽고 또 읽어도 벅찬 감격이 줄어들질 않았다. 그렇게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중앙대 사회복지학과에 최종합격했다.


합격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한순간도 쉬운 적은 없었다. 필기시험과 면접이 12월, 1월에 몰려있어서 두 달 동안 5번의 휴가를 내야 했고, 적당한 휴가 사유를 쥐어짜 내느라 골치가 아팠다. 갑자기 급한 업무가 생기거나, 출장이 잡히거나, 휴가결재가 반려되면 필기시험에 붙어도 면접불참으로 불합격하게 될 판이었다. 공부야 노력으로 한다 쳐도, 업무상황까지는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어서 마지막 면접을 끝마치는 순간까지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도박 같은 도전. 


그러나 그 덕에 꿈에도 그리던 대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그것도 가장 가고 싶었던 학교로, 가장 배우고 싶었던 전공으로. 지난번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교정을 둘러봤던 바로 그 학교였다.


인사담당자에게 합격증명서와 휴직신청서를 제출할 때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모른다. 앞으로 2주 안에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업무를 마무리해야 해서 몹시 바쁘겠지만, 대학 등록금도 내야 하고 입학 관련해서 알아볼 것도 산더미 같지만, 아무렴 어떠냐. 2주 뒤면 대학생인데! 헤헤헤. 행복하다. 이런 게 바로 사는 보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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