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컵의 무게는 얼마일까요?"심리학자가 한 손에 물이 들어있는 물컵을 들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물의 실제 무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물컵을 얼마나 오랫동안 들고 있느냐입니다."
"만약 물컵을 1분 동안 들고 있는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러나 물컵을 1시간 동안 들고 있는다면, 팔이 저려오고 아파올 겁니다. 그리고 만약 물컵을 하루 종일 들고 있었다면, 팔의 감각이 없고 제 팔은 마비될 것입니다."
라디오 오프닝에 나온 이야기였다.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나에겐 상처에 대한 이야기로 들렸다.
할머니와의 관계가 그랬다. 깃털같이 가벼웠던 사소한 미움들이 점점 내 마음을 마비시켜 갔고, 나중엔 온 몸을 병들게 할 만큼 힘이 세졌다. 진심 어린 사과가 없었기에, 미움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우리 할머니는 불 같은 성격에다 꽤나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다. 동네에서 문구점, 철물점 등 안 해본 장사가 없었다고 한다. 외상이라도 할라 치면 당장 집까지 쫓아가서 기어코 돈을 받아내고야 마는, 억척스럽기로 소문난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는 늘 가족들과 부딪쳤다. 본인 보기에 좋은 것은, 상대방이 싫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상대방이 화를 내면 미안해 하기는 커녕, '이렇게 괄시받고 살 바에야 내가 빨리 죽어야지'라고 하셨다.
김장철에 대야에 가득 담긴 배추를 보고 아빠가 말했다. "엄마, 제발 이번엔 굴 넣지 마. 비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어." 그때 할머니는 분명 "그러마. 내가 다시 굴을 넣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다음날 아빠 몰래 굴을 아주 잘게 썰고 계신다. '이 정도면 굴인지 눈치 못 채겠지?' 하면서.
아빠의 눈은 속일 수 있었지만 후각은 속일 수 없었고, 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다는 아빠에게 결국 또 한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그 후로도 매해 김장 때마다 이 사건은 반복됐다.
졸업사진을 찍으려고 사둔 옷을 할머니가 실수로 망가뜨렸다. 지금까지 그랬듯, 이번에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다.
"내가 이때 껏 너를 키워줬으면 됐지, 사과까지 해야 하냐? 너한테 미안하다고 무릎 꿇고 손이라도 빌어야 돼?"
그리곤 고개를 숙이고 손을 싹싹 비비는 시늉을 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천벌을 받을 짓을 했습니다~ 됐냐, 됐어?"
내가 받은 건 사과가 아닌, 비아냥이었다.
할머니와 나 사이에 큰 소리가 난다 싶으면 아빠가 방문을 열고 나와 술 심부름을 시켰다. 별일도 아니었지만, 아빠에겐 술 마시기 딱 좋은 핑곗거리였다.
"거봐라! 너 때문에 네 아빠가 또 술 마시잖아! 하여튼 쟤가 문제야."
할머니에겐 아빠의 알코올 중독도 다 내 탓이었다.
마음 붙일 데가 없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심리학 책, 상담 책들을 공부하듯 읽어 내려가며,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관계가 나아질 수 있을까? 하지만 발버둥 치는 나의 노력에도 할머니는 변함 없었다.
"아이고, 예예. 동네 사람들~ 여기 손녀딸이 할머니 잡아먹네~"
식구들의 계속되는 애원과 분노에도 할머니는 바뀌지 않았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이제와 바뀔 리가 만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집에서 빨리 독립하길 손꼽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내가 원했던 건 할머니의 진심 어린 사과였지만, 할머니는 그런 내 얼굴에 대고 손가락으로 십자가 모양을 그렸다. "이 사단 마귀야! 물러가라!!" 자기 말에 토를 다는 건 다 귀신이 시켜서 그런 거라며, 귀신 들린 사람 취급을 하며 나를 모욕했다. 평생 사과 한 번을 안 해주는 할머니가 야속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아빠가 더 좋았다. 평소엔 너무 무서워서 말도 못 붙였지만 술을 마시면 나에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해줬으니까.
"혜원아, 아빠가 미안하다. 엄마가 보고 싶지는 않니? 친구들은 용돈 많이 받을 텐데, 많이 못 줘서 미안해."
아빠의 작아진 어깨가 슬퍼서,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다며 씩씩한 척 아빠를 위로했다. 아빠는 밉지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미안하다고 사과해주니까. 뭐든 다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를 키우느라 몸이 부서지도록 고생한 할머니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할머니랑 얘기하다 보면 가슴이 꽉 막히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참아왔던 화가 폭발하듯 터졌다. 말로만 듣던 화병이었다. 위장 장애도 심했다. 한번 체하면 2-3주는 기본이고, 한 달을 넘어갈 때도 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 약과 죽뿐이었기에, 살이 쭉쭉 빠지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렇게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상대는 별 거 아닌 일이라며, 그 상처를 무시했다.
매일 밤마다 기도했다. 할머니와 잘 지낼 수 있게 해 달라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지 않도록. 미웠던 기억만 남지 않게, 제발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 할머니, 할아버지께 상의 드릴 일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그때가 27살 때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라, 엄마도 아빠도 없는 나는 누구에게 결혼 허락을 받아야 할지 애매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고모들에게 얘기해보마 하셨다.
그러나 고모들은 좀 더 생각해보는 게 어떻냐고 했다. 나이도 아직 어리고(남자친구도 동갑이었다),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냐며 완곡한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남자친구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가 않았다. 고모들은 경제적으로 더 여유있는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동안 내가 고생하며 살았으니, 결혼해서만큼은 그러지 않길 바랐다.
걱정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인 걸 알기에 더이상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았다. 인연이라는 게 그렇게 쉬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이 사람보다 더 잘맞는 사람이 나타날 것 같진 않은데. 속상하고 답답했다.
고모들의 생각과는 달리, 정작 나를 괴롭혀온 건 '경제적 가난'이 아니라 '정서적 가난'이었다. 남자친구는 가진 게 많진 않았지만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이었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지만, 정서적인 안정감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거란 걸 27년간의 삶이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꼭 이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다.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나도록 고모들은 아무 소식이 없었다. 속상한 나머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잠든 사이 식탁 앞에 앉아 혼자 울고 있었다. 할머니가 화장실을 가려다가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고모들이 반대하는 게 너무 속상해. '찬찬히 더 생각해봐라' 하고나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감감무소식이면 도대체 나는 언제 결혼할 수 있는 거야? 고모랑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닌데 나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고모들은 지금도 내 결혼에 대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을 거 아냐. 자기 자식처럼 나를 매일 보는 게 아니니까."
"그래. 고모들이 네 엄마도 아니니까, 고모들 말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는 너하고 싶은 대로 해. 이제껏 공부도 잘하고, 자기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해서 한 번도 너에 대해선 걱정한 적이 없다. 우리 혜원이가 선택한 사람이면 좋은 사람으로 잘 골랐을 거야. 신랑이랑 얘기해서 너희가 알아서 결혼 준비해."
난생 처음으로, 할머니가 내 편이 돼줬다.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해준 건 처음이었다. 대들고 소리치던 못된 손녀딸이었는데도, 여전히 나를 믿어주셨다. 그동안 흘렸던 분노와 서러움의 눈물이 아닌,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동안 속 썩여서 죄송해요. 못되게 굴어서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할머니. 사랑해요."
"아니야. 괜찮아. 나는 다 이해해. 네가 엄마 없이 자라느라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겠어. 불쌍한 것. 넌 한 번도 내 속 썩인 적 없어. 고모들도 클 때 다들 그러면서 컸어."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눈물 콧물을 펑펑 쏟아냈다. 처음으로 할머니와 진심 어린 화해를 할 수 있었다. 단 한번의 눈물로 27년 묵은 미움의 응어리들이 다 씻겨 내려갔다. 할머니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끝내 듣지 못했지만, 그 진심만은 '미안해'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제서야 미움이 담긴 물컵을 내려놓았다. 그날 밤,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