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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Mar 28. 2023

다시, 대학교에 가야겠어요

전문대에 다니던 때였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던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어놨는데,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소년원 봉사활동을 다녀온 얘기였다.   


"소년원 애들이랑 헤어질 때 뭐라고 하는지 알아? '다음에 또 보자'가 아니야. '우리 다음에는 만나지 말자'라고 해."


응? 동서양을 막론하고 작별인사는(빈말이라도) see you again 아닌가? '또 보자 말자'라니. 


"다시는 소년원에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거든. 이 아이들의 근황은 무소식이 희소식인거지. 지난번에 출소했다가 다시 들어온 아이를 만났는데, 아는 얼굴이라 순간 반가워했다가 아, 이게 아니지 싶어서 씁쓸하더라고."


얼마 전에는 남대문 시장에 가서 수면양말 100켤레를 샀다고 했다. 왜 그렇게나 많이 샀냐고 물었더니 소년원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라고 했다. 혼자 100켤레의 수면양말을 짊어지고, 남대문시장에서부터 대전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까짓 양말 무거워봤자 얼마나 무겁겠어라고 우습게 봤다가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선물이고 뭐고 중간에 아무 데나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그땐 요즘만큼 인터넷 배송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였다).  


친구의 얘길 들으면서 '사회복지'라는 게 대체 뭘까 싶었다. 도대체 무슨 수업을 어떻게 배우길래, 내 친구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건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고등학생 때와 다르게 완전 딴 사람이 돼버렸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에 소년원 아이들을 떠올리는 친구가 존경스러웠다. 그것도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2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만나러 간단 얘길 듣고, 도 사회복지를 꼭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공무원이 됐다. 한 번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출장을 가게 됐는데, 온 김에 학교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서 오래돼 보이는 벽돌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의실 안에서는 오후 수업이 한창이었다. 복도 밖으로 새어 나오는 교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봤지만 잠깐의 귀동냥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강의실 안은 어떤 풍경일까 궁금했다. 맨 끝자리라도 좋으니 나도 저 안에 있어봤으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가자 머리 위로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하루종일 건물 안에만 있다 보니(점심도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화창한 햇빛만 봐도 슴이 설렜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서, 야외 계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모두가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게 당연한 일상이라는 듯이. 체내에 비타민 D가 많아서 그런가. 나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기운 넘치고, 눈빛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내 다크서클도 햇볕을 많이 쫴면 좀 나아지려나).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것 같은데 나만 늙은이(?)가 된 기분이었다. 저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데, 나만 회색인간인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느라, 제대로 된 대학생활 한번 못해보고, 캠퍼스의 낭만을 못 누려본 게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내가 다녔던 전문대는 재수학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도 대학생이 되면 저렇게 신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 아, 부럽다! 나도 직장 말고, 대학교에 다니고 싶다!


대학교를 둘러보고 나니 편입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일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나서 업무에 적응된 상태였고, 그동안 모은 돈도 제법 되니 편입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늦기 전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모두 나를 말리기 바빴다. 편입 얘기를 하면 모두들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학업 사유의 휴직은 급여가 한 푼도 안 나오는데, 모은 돈을 다 쓰면서까지 대학에 갈 필요가 있냐고. 공무원은 학벌이 아닌 연공서열 중심이라 휴직한 만큼 동기들보다 승진도 늦어질 거라고. 적당히 사회복지 책 몇 권 사읽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편입은 투입 대비 성과가 떨어지는 아주 비효율적인 일이라면서.   


하지만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에 너무나 좋아했던 '카이스트' 드라마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학교 잔디밭에도 앉아보고, 축제도 즐기고, 시험기간이 되면 도서관에서 밤새 공부도 해보고 싶었다. 캠퍼스의 낭만을 그린 드라마를 볼 때마다 몽글몽글한 핑크빛 설렘이 올라와서 도저히 가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제는 시험합격을 위한 공부 말고, 배움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지혜가 쌓이고 사유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더라도 괜찮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월급이나 승진보다 중요한 게 대학교에 있을 것만 같아서, 책 속의 활자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거기 있을 것만 같아서, 그곳에 가길 간절하게 소망했다.


물론 이 모든 계획에는 '편입시험 합격'이라는 전제조건이 깔려있었다. 일을 하면서 편입 공부를 병행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몇백 단위의 학비와 생활비를 2년씩이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일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불안감만으로 멈춰서 있기엔 아직 발휘되지 못한 능력이 내 안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돌탑을 쌓아 올리는 심정으로,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하나씩 쌓아보기로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운을 띄웠다. 대학교를 다니고 싶은데 합격을 하게 되면 지금 드리는 생활비는 못 드릴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학비와 생활비는 스스로 다 해결할 테니 부디 이런 결정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알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24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갈망하는 자유를 향해 기꺼이 자유 없는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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