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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Feb 23. 2023

시체를 싣고 달리는 앰뷸런스

오전 면회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다. 중환자실로 가는 문을 열자, 병실 안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혜원아! 아빠 좀 나가게 해 줘! 집에 가고 싶다!"


아빠는 불량환자였다. 어느 병원에서든 의료진 말을 듣지 않았다. 이번에도 팔뚝에 꽂은 링거 주삿바늘을 한 손으로 뽑아 버리고 막무가내로 퇴원하겠다며 소리쳤다. 병실 밖에 숨어있던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이름을 자꾸만 부를 때마다 입술을 질끈 깨물어야했다.


그날은 면회는 건너뛰었다. 대신 중환자실 앞에서 담당 의사와 면담을 진행했다. 의사는 아빠의 발이 까맣게 썩어 들어가는 중이라며, 발 끝에서 시작된 괴사가 복숭아뼈를 넘어 점점 더 올라오고 있어서, 이대로 놔두면  몸 전체가 썩어 들어가 돌아가시게 될 거라고 설명했다.   


한시라도 빨리 부패된 발을 절단해야 한다고 하는데, 혈압도 너무 높고 몸 상태가 좋질 않아서 잘못하면 수술 도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곧바로 수술을 할지, 좀 더 지켜볼지 빨리 결정해 달라고 하는데, 고작 22살짜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말씀드려 봤자 해결은 안 나고 걱정만 하실게 뻔했다. 첫째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몇십 년을 더 산 고모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세명의 모들이 모두 병원으로 오기로 했다. 일단 만나서 상의하자며, 금방 갈 테니 병원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고모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병원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 놀이터로 갔다. 그네에 앉아 발끝으로 흙을 비벼서 구멍을 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괜히 한번 볼을 꼬집어 봤다. 이게 진짜인가 싶었다. 그제야 조금씩 깨달아지는 것 같았다. 이번엔 정말 심각하구나.


고모들이 도착했다. 아빠가 발 때문에 진통제를 놔달라고 소리쳤던 걸 이야기하자, 잘 못되더라도 일단은 수술을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 담당 의사를 만나기 위해 중환자실 문 앞에서 대기했다. 


그때 급하게 우릴 찾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ㅇㅇㅇ 환자 보호자분! 빨리 들어오세요!" 


무슨 일일까 불안해졌다. 아직 면회시간이 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환자분 곧 임종하실 것 같습니다. 가족분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나누세요."


갑작스러운 전개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수술 잘해달라고 얘기하려고 왔는데, 갑자기 임종이라니……. 아빠에게 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질 않았다. "아빠, 아빠.." 하면서 아빠 손을 잡고 계속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둘째 고모가 아빠에게 눈을 감으라고 한 뒤, 아빠를 위해 기도했다.


"지금까지 지은 죄 모두 다 용서해 주시고, 이제 평안히 쉬게 해 주세요.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빠, 오빠도 아멘이라고 해."

"... 아멘."


그 말을 마치자 '삐-' 하는 기계음 소리가 들렸다. 약하게 오르내리던 파동이 그치고 선명한 선 하나가 려졌다.


'아멘'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아빠의 영혼이 떠났다. 미안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어떠한 당부도 없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13시 8분 사망하셨습니다."


의사가 사망선고를 했다. 직접사인은 패혈증이었다.




정신없이 울었다.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아빠의 사망소식을 전했다. 그 사이 중환자실에 있던 아빠의 침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걸 봤다. 영안실로 내려가는가 보다. 우리는 상의 끝에 아빠를 다른 장례식장으로 옮기로 했다.


아빠의 시신을 옮기기 위해 사설 앰뷸런스를 불렀다. 나는 앰뷸런스 조수석에 타고, 고모들은 각자 타고 왔던 차를 운전해서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앞에, 시신이 된 아빠는 뒤 칸에 탔다. 여전히 아무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출발하자마자 앰뷸런스는 도로 위를 날아다녔다. 응급상황이 아닌데도 사이렌을 울리며 여기저기로 차선을 변경했다. 앰뷸런스는 신호 위반에 안 걸리나? 고속도로가 아닌데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니. 사고가 날까봐 불안할 정도였다.


이번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방지턱을 지나갔다.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내 시선은 앞을 향해있었지만, 온 신경은 아빠에게로 쏠려있었다. 


지금 아빠의 몸이 얼마나 많이 흔들리고 있을까.

피부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체온은 얼마나 차가워졌을까.

아빠의 몸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아빠는 복수가 찬 배를 보며, 썩어 들어가는 발을 보며, 밤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란 걸 예감했을까. 조금 전까지만해도 분명 살아있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시체, 시신'라고 불리는 사실이 낯설었다.


저만치 앞에서 노란불이 켜졌다. 하지만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횡단보도를 반이나 넘고 나서야 급정거를 했다.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확 쏠렸다.    


"X발!!!!!!!!!!!! 아, 죄송합니다."


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빨간불에 졌다는 게 화가 났나 보다.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몇 번이나 삼켰던 말을 꺼냈다.


"이미 돌아가셨으니, 천천히 가셔도 돼요."


그때부터 그는 더 이상 욕을 하지도, 속도를 내지도 않았다. 


장례식장까지 차 안의 세 사람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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