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통화를 마치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엄마가내 어릴 적 사진들을카톡으로 보내왔다. 아마도 새아빠 몰래 간직하고 있던사진들일 것이다. 그중에는 내가 갖고 있던 사진도 있고 처음 보는 사진도 있었다. 낯선 사진 속에 엄마는어린 나를 안고 수줍게 웃고 있었다.
엄마는 가끔씩이라도 내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나는엄마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이대로는 우리 사이가 좀 불공평(?) 한 것 같아서 엄마가 해준 말이 맞는지 확인도 해볼 겸, 엄마주소를 몰래 알아보기로 했다.
가까운 주민센터에 가서 내신분증을 내고 가족관계증명서1통과엄마의 주민등록초본1통을떼 달라고말했다.혹시라도 직원이 엄마 신분증을보여달랄까봐 긴장이 됐지만,다행히아무것도 묻지 않고 곧바로 서류를발급해 줬다.태연한 척서류를 가방에 집어넣고 주민센터를 나섰다. 엄마가 사는 곳을 알아내는 게 너무 쉬워서 나도 모르게순간헛웃음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꼼꼼히 서류를살펴봤다. 엄마 주소는 서울이었다. 게다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이혼한 후에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줄곧 서울을 떠나지 않았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다. 엄마는나보다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이런 엄마에게.. 나는 배신감이 들었다.
우리에겐 짚고 넘어갈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바로 양육비 얘기다.자고로 돈쓰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내게 양육의 의무도, 경제적 의무도 아무것도 책임지질 않았다. 그 덕에 난몇 천 원밖에 안 되는 EBS교재를 사달라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좋아하는 피아노 학원도 1년도 채 다니지 못했다.엄마가 몇 푼이라도 보태줬더라면 이렇게 궁핍하게 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학벌이 곧 능력이 되는 대한민국에서, 성적이 아니라 돈이 부족해 전문대를 가야 했던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었다. 반드시내 돈으로라도 꼭 4년제 대학을 다니겠노라 결심했고, 직장 일과 편입공부를 병행하며 25살이 되어서야 4년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몇 달 후, 국가장학금 신청 시기가 됐다.'부모님 정보'란에아빠주민등록번호를 넣었더니 이상하게 자꾸오류가 났다.고객센터에전화해 보니시스템이 바뀌어서이제 돌아가신 분은 입력이 안된다며,이혼한엄마 정보라도넣어야 한다고했다. 이미 인연이 끊긴 사람의 정보를넣는다는 게찜찜했지만,부모님 정보가 필수사항이라고 하니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서둘러 가족관계증명서를 떼고 거기에 나와있는 엄마의 주민등록번호를 넣어 장학금 신청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얼마 후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게 됐다. 내가 국가장학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거였다. 분명 지난 학기엔장학금을많이 받았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객센터에물었더니, 엄마의 소득분위가 너무 높아서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럴 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모르던 엄마 때문에 내 장학금이 안 나온다니...?
잠실에 사는 친구도 국가장학금을 받았다던데 엄마가 그보다 잘 산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딸은 가장 낮은 1분위인데, 엄마는 가장 높은9분위라니...
엄마가 재혼했단 소린 일찌감치 들었지만그들의 경제적 사정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알아봤자달라지는 것도 없고, 어차피 남인데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엄마 소식을 전해 들으니 무방비 상태로 뒤통수를얻어맞은 기분이었다.이렇게잘 살면서 여태껏 양육비도 안 주다니.. 엄마에게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
초본에 적힌 엄마 주소를 보니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연락은 그렇다 쳐도, 그동안 양육비는 왜 안 준 거냐고. (왠지 점점 취조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양육비를 주고 싶었는데엄마도 그럴만한 사정이 아니었어.이혼하고 나서네 아빠가 재산분할해 준건 없지. 부모 형제들도 다 지방에 있지. 엄마도 그땐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어. 엄마 혼자 벌어서 집세도 내고 생활비도 써야 하는데...아무리 발버둥 쳐봐도혼자 버는 걸로는 감당이 안되더라. 그러다 몇 년 뒤에 새아빠를 만난 거야. 재혼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컸어."
재혼하고나서부터는 당장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과일 하나 사 먹는데도 새아빠 눈치가 보였다고 했다.날 낳고 나서 피임수술을 했는데 새아빠한테서 낳은 아이가 없어서인지 새아빠는 늘 엄마가 도망갈까 봐불안해했고,자다가도 갑자기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내 돈 딴 데 갖다 쓰지?" "그 돈 어디다 숨겨놨어?"라며 엄마를 끊임없이 의심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새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다준 것도 아니었다.공무원이라 월급도 뻔했다. 그러면서도 새아빠는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해서이 사람, 저 사람하고 만나술 마시고 다니느라, 정작 엄마 품에 안겨준 돈은 얼마 없었다.그 돈으로 생활하기만도 빠듯한데 사사건건 의심까지 받으니 엄마는 돈 한 푼조차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그동안 이사 다녔던 집들도 전부 엄마가 경매공부하면서 발로 뛰어 얻은 결과라고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잘 사는줄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니... 엄마 혼자서만 잘 사는 것도 화가 나지만, 이혼 후 내내 고생만 했다는 것도 이상하게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네 아빠와 이혼하기로 한 건 내 선택이었지만, 이혼하고 나서 엄마도 별로 행복하지가 않았어. 내 자식은 보지도 못하는데 남의 자식을 키우는 게 마냥 즐거웠겠니?"
그 말이 너무 진심 같아서더 이상 아무것도 따질 수가 없었다. 나를 책임졌어야 하는 엄마로서가 아니라 '여자 대 여자'로 생각해 보니 젊고 외로운 여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차라리 재혼해서라도 좀 잘 살지... 엄마가 한없이 안쓰러워졌다.
수능 끝나고 읽었던'죄와 벌'이 떠올랐다. 그 책을 읽는 동안 '죄책감'이란 게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란 걸 느꼈었다. 나를 이제야 찾아온 게 설령 엄마의 '죄'라 하더라도, 지난 시간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굳이 내가 더 보탤 필요가 있을까.
지난 세월을 보상받을 방법은 이제라도 엄마와 행복하게 지내는 거라 생각했다. 우리도 언젠가 다른 모녀들처럼 쇼핑도 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진정한 서로의 편이 돼줄 수만 있다면 우리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란 건 의외로 힘이 세고, 나는 인내심이 꽤 강한 편이니까.
그사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할아버지 건강이 악화되었다.이러다간 내게 남은 가족이 아무도 없게 될 것이다. 이런 타이밍에 엄마를 만나게 된 건어쩌면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일지도모른다.이건 하늘이나에게 주는 선물일지도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