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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Feb 29. 2024

엄마가 양육비를 안 보낸 이유

우리 엄마는 부자일까?

처음 통화를 마치고 나서 며칠 지났다. 엄마가  어릴 적 사진 톡으로 내왔다. 아마도 새아빠 몰래 간직하고 있던 사진들일 것이다. 그중에는 내가 갖고 있던 사진도 있고 처음 보는 사진도 있었. 낯선 사진  엄마 어린 나를 안고 수줍게 웃고 있었다.


엄마는 가끔씩이라도 내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엄마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대로는 리 사이불공평(?) 한 것 같엄마가 해준 말이 맞는지 확인도 해볼 겸, 엄마 주소를 몰래 알아보기로 했다.


가까운 주민센터에 가서  신분증을 내고 가족관계증명서 1통과 엄마 주민등록초본 1통을 떼 달라고 했다. 시라도 원이 엄마 신분 보여달랄까봐 긴장이 됐지만, 다행히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곧바로 서류를 발급해 줬다. 태연한 척 서류를 방에 집어넣고 주민센터를 나섰다. 엄마가 사는 곳을 알아내는 게 무 쉬워서 나도 모르게 순간 웃음이 나왔다.


으로 돌아와 꼼꼼히 서류를 살펴다. 엄마 주소는 서울이었다. 게다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혼한 후에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줄곧 서울을 떠나지 않았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다. 엄마는 나보다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이런 엄마에게.. 나는 배신감이 들었다.




우리에겐 짚고 넘어갈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바로 양육비 얘기다. 자고로 돈 쓰는 곳에 마음이 있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내게 양육의 의무도, 경제적 의무도 아무것도 책임지질 않았다.  덕에 난 몇 천 원밖에 안 되는 EBS교재를 사달라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좋아하는 피아노 학원도 1도 채 다니지 못했다. 엄마가 몇 푼이라도 보태줬더라면 이렇게 궁핍하게 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학벌이 곧 능력이 되는 대한민국에서, 성적이 아니라 돈이 부족해 전문대를 가야 했던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었다. 반드시 내 돈으로라도 꼭 4년제 대학을 다니겠노라 결심했고, 직장 일과 편입공부를 병행하며 25살이 되어서야 4년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몇 달 후, 국가장학금 신청 시기가 됐다. '부모님 정보'란  민등록번호를 넣었더니 이상하게 자꾸 오류가 났다. 객센터에 전화해 보니 시스템이 바뀌어서 이제 돌아가신 분은 입력이 안된다며,   정보라도 야 한다고 다. 이미 인연이 끊 사람의 정보를 넣는다는 게 했지만, 부모님 정보가 필수사항이라고 하니 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둘러 가족관계증명서를 떼고 거기에 나와있는 마의 주민등록번호를 넣어 장학금 신청을 마무리다.


그런데 얼마 후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게 됐다. 내가 국가장학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거였다. 지난 학기 장학금을  받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객센터에 물었더니,  소득분위가 너무 높아서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했. 이럴 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모르던 엄마 때문에 내 장학금이 안 나온다니...?


실에 사는 친구도 국가장학금을 받았다던 엄마가 보다 잘 산다는  믿기지가 않았다. 은 가장 낮은 1분위인데, 엄마는 가장 높은 9분위라니... 


엄마가 재혼단 소린 일찌감치 들었지만 그들의 경제적 사정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알아봤자 라지는 것도 없고, 어차피 남인데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엄마 소식을 전해 들으니 무방비 상태로 뒤통수를 은 기분이었다. 렇게 잘 살 여태껏 양육비도 안 주다니.. 엄마에게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




초본에 적힌 엄마 주소를 보니 날의 기억되살아났다.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연락은 그렇다 쳐도, 그동안 양육비는 왜 안 준 거냐고. (왠지 점점 취조하는 느낌이 ) 그러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양육비 주고 싶었는데 엄마도 그럴만한 사정이 아니었어. 이혼하고 나서 네 아빠가 재산분할해 준  없지. 부모 형제들도 다 지방에 있지. 엄마도 그땐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어. 엄마 혼자 벌어서 집세도 내고 생활비도 써야 하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혼자 버는 걸로는 감당이 안되더라. 그러다 몇 년 뒤에 새아빠를 만난 거야. 재혼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컸어."


재혼하고나서부터는 당장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과일 하나 사 먹는데도 새아빠 눈치가 보였다고 했다. 날 낳고 나서 피임수술을 했는데 아빠테서 낳은 아이가 없어서인지 새아빠는 늘 엄마가 도망갈까 봐 불안했고, 자다가 갑자기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내 돈 딴 데 갖다 쓰지?" "그 돈 어디다 숨겨놨어?"라며 엄마를 끊임없이 의심다고 한다.


그렇다고 새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다준 것도 아니었다. 공무원이 월급도 뻔했다. 그러면서도 새아빠는 사람 만나는 걸 워 좋아해서 이 사람, 저 사람하고 만나 술 마시고 다니라, 정작 엄마 품에 안겨준  얼마 없었다. 돈으로 활하기만도 빠듯한데 사사건건 의심까지 받으니 마는 돈 한 푼조차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동안 이사 다녔던 집들도 전부 엄마가 경매공부하면서 발로 뛰어 얻은 결과라고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예상던 것달랐다. 부잣집으로 시집서 잘 사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니... 엄마 혼자서만 잘 사는 것도 화가 나지만, 이혼 후 내내 고생만 했다는 것도 이상하게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네 아빠와 이혼하기로 한 건 내 선택이었지만, 이혼하고 나서 엄마도 별로 행복하지가 않았어. 내 자식은 보지도 못하는데 남의 자식을 키우는 게 마냥 즐거웠겠니?"


그 말이 너무 진심 같아서 더 이상 아무것도 따질 수가 없었다. 나를 책임졌어야 하는 엄마로서가 아니라 '여자 대 여자'로 생각해 보니 젊고 외로운 여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차라리 재혼해서라도 좀 잘 살지... 엄마가 한없이 안쓰러워졌다.


수능 끝나고 읽었던 '죄와 벌'이 떠올랐다. 그 책을 읽는 동안 '죄책감'이란 게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란 걸 느꼈었다. 나를 이제야 찾아온 게 설령 엄마의 '죄'라 하더라도, 지난 시간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굳이 내가 더 보탤 필요가 있을까.


지난 세월 보상받을 방법은 이제라도 엄마와 행복하게 지내는 거라 생각했다. 우리도 언젠가 다른 모녀들처럼 쇼핑도 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진정한 서로의 편이 돼줄 수만 있다면 우리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란 건 의외로 힘이 세고, 인내심이 꽤 강한 편이니까.


그사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할아버지 건강이 악화되었다. 이러다간 내게 남은 가족이 아무도 없게 될 것이다. 이런 타이밍에 엄마를 만나게 된 건 쩌면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일지도 모른다. 이건 하늘이 나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엔 엄마와 만나보기로 했다. 어떤 옷을 입는 게 좋을, 옷장을 전부 뒤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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