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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Nov 07. 2020

아빠.. 제발 그 칼은 내려놓고 말해.

술 취한 아빠의 협박

너까지 날 무시해? 감히 내 말에 대꾸를 안 해?

   

숨이 막혔다. 눈을 떠보니 아빠한쪽 발로 내 배를 찍어 누르고 있었. 다급한  비명소리에 안방에 계시던 할머니가 놀라서 쫓아왔다.


남들에겐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이었. 날씨도 유난히 좋았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집으로 돌아왔고  늦게까지 무원 시험 공부 하느라 피곤해서 모처럼 늦잠을 자고 있었다. 건넌방에서 나를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지만 눈꺼풀이 무거워 눈이 떠지질 않았다. '네'대답해봐도 목이 잠겨서 윙윙대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러다 다시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고나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몇 달새 아빠는 전혀 딴 사람이 다. 전엔 술을 마셔도  손찌검 하 않았는데 마전부터 거친 욕을 입에 담기 시작더니 급기야는 폭군 되어버다. 내 배를 무참히 짓밟은 그날도 밤새 술을 마신 상태였다.


칠 전엔 자기 부모를 방구석에 몰아놓고, 아이를 혼내듯 빗자루로 때리기까지 했다. 할아버지가 아빠의 팔을 붙들고 안간힘을 다해 저지하, 이번엔 으로 가서 칼을 가져 우릴 위협했다.


"아버진 방구석에 처박혀서 주둥아리 닥치고 있어. 그리고 어디 가서 사내 새끼라 하지 마. 너 따위가 같은 남자라는 게 창피하니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충격적인 말들 이어졌다. 빠는 한참 동안나 가족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내가 나가면 찍소리도 내지 마. 한 마디라도 나불대면 바로 쫓아올 거야. 그땐  가만 안 둬."

드디어.. 아빠가 안방을 나갔다.


"......"


방 안엔 적막만이 가득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 우리 셋은 방바닥에 주저 지끈거리는 이마쌌다. 오래도록 셋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번 추석 연휴 경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OO지역의 알콜 치료 병원에서 환자들이 무단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빠 소식을 뉴스로 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최근 알콜 치료병원에 입원 게 화근이었다. 어떻게 그 따위 병원에 입원킬 수가 있, 거기서 자기를 사람 취급도 안 했다며 어마어마한 분노를 가족들에게 쏟아냈. 다른 곳에 입원했을땐 잘 지다왔는데 이런 은 처음었다. 나쁜 사람들과 친해진 걸까? 도대체 어떤 취급을 당했길래 이런 일까지 벌였을?


퇴원 후, 우린 빠의 부모 자식 아니었다. 주체할  없이 불타오르는 복수 대상 뿐이었다. 병원 측 당사자에게 복수할 수 없었던 아빠는 몇 달째 가족들에게 두고두고 앙갚음을 다. 고모들도 자기 눈에 띄면 다 찔러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고모들이 그 병원 입원 수속을 밟았다는 이유였다. 아빠는 밤에도 머리맡에 식칼을 두고 잤다. 요리할 때마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칼을 잠시 빌려야 할 정도였다.



"이젠 이판사판이야. 내가 죽든지, 당신들이 죽든지. 어떻게 죽을까? 뱃가죽을 그을까?" 아빠는 윗 옷을 올리고 자기 배에 식칼을 대고 쭉 긋는 시늉을 했다. 저러다 진짜 피라도 날까봐 무서웠다. 아빠를 사랑했던 추억이 있었기에 변해 버린 아빠를 미워하기만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 이해 수도 는 노릇이었다. 아빠에 대한 감정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오락가락했다.


내 아들이 저러는 게 아니야. 다 술이 시키는 거야.

그러나 와는 다르게 할머니의 마음은 확고했다. 빈속에 깡술을 들이붓는 아빠 속을 걱정하며, 먹지도 않을 아빠의 밥상을 차렸다가 반찬통에 그대로 다시 넣기를 반복했다. 방금 전에 자식에게 그렇게 몹쓸 짓을 당해놓고선 화도 안 나 자존심도 없는 건지, 그런 할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빠가 차라리 내 삶에서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다른가 보다. 이게 바로 자식과 부모의 차이인 걸까.




쨍그랑! 아빠가 밥상에 있던 반찬 그릇을 2층 베란다 밖으로 무참히 던져 버렸다. 


"술 사 와! 지금 당장 술 사 오라고!"

나는 얼른 뛰어가 상 위에 있는 (아직 무사한) 반찬 그릇들을 치웠할머니는 밖으로 나가서 여기저기 튄 유리 파편과 길가에 널브러진 반찬을 주어 담다.

"!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맞으면 어떡하려고 ! 지금 당장 사 올테니까 제발 그러지 좀 !"


밥상 앞에서는 절대 아빠의 심기를 건들지 말아야 했다. 언제 반찬 그릇이 창문 밖으로 날아갈지 모르니 아빠 말에 순순히 따라야 했다. 생각해보니 아빠에게 크게 대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화가 날 때도 입술을 꽉 깨물고 그저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가야 겨우 숨통이 트였다.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이 받쳐 올라올 땐 울 곳을 찾아 인적 드문 곳 무작정 어갔다. 교회에 가면 앉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끄윽끄윽 울어면 내 사정을 알리가 없는 사람들은 신앙심이 참 깊은 아이라며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신이 아니면 대체 누구한테 얘기할 수 있었을까? 이 어마어마한 일들을. 사람들의 도움은 지레 포기해버렸다.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음지의 삶을 도저히 이야기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별거 아닌 농담에 남들보다 많이 웃는 것뿐이었다. 렇게라도 따뜻한 기운 워야 집안의 차갑고 짙은 어둠을 견뎌 수 있을 테니까.


이제는 가족임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에 부쳤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격한 울분을 가슴 속에만 담다 보니 속이 썩어문드러.


그때 우리 집 화장실 칫솔걸이에는 Sweet home이라는 문구가 있었. 나는 를 닦는 내내 그 글자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나도 번쯤은 sweet 한 home에서 살아고 싶. 거기 그려진 곰 세 마리 가족은 나와 다르게 참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몇달 째 밤낮없이 시달지만 아빠의 술주정은 그치질 않았다. 이번엔 유난히 심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긴 한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둘째 고모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아빠가 술에 취해 낮잠을 잘 때까지 고모는 집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날도 집안 꼴 말이 아니었다. 고모는 바닥에 브러 음식과 깨진 그릇을 보고 단을 내렸다. "엄마. 짐 싸."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었다. 이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각자 자기 물건을 챙겼다. 아빠가 깨기 전에 신속하게 이 에서 나가야 다. 다행히 밤새 가족들과 씨름을 벌 아빠는 지 골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잠든 고양이 앞을 살금살금 피해 가는 생쥐 마냥 우리는 그 집에서 도망쳐나왔다.


잘 있어라. sweet home이길 바랬던 우리 집. 21년간 들었던 방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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