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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Mar 14. 2021

받아들이기 싫었던 실패 속에서도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

유일하게 합격한 다군은 대학도, 전공도 영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서 교대에 갈 자신이 없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큰 고모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집에 돈 버는 사람 하나 없는데 4년제 대학 가면 언제 졸업하고, 언제 취업해. 학자금 대출은 뭐 공짜니?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전문대가 있대. 거기 가 바로 취업 준비하는  어때?"


현실적으로는 너무나 맞는 말이었지만, 솔직히 자존심이 해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수능을 망쳤어도 그렇지, 아무리 집에 돈이 없어도 그렇지. 이 성적으로 전문대를 가기엔 시험기간마다 밤새 공부 들이 아깝게 느껴졌다(담임 선생님은 경희대를 추천해 주셨더랬다). 그래도 어른 말씀이니 듣는 시늉은 하자 싶어 지원을 하긴 했지만, 속으론 여기 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콧방귀를 뀌었. 진로 문제로 마나 스트레스를 던지 한 달 내내 장약을 먹어봐도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였다.


우물쭈물하는 새에 벌써 3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족들은 내가 전문대에 가는 줄 알고 있었지만 실은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기한 내에 입학 취소를 하면 등록금 환불된다는 얘 들었기 때문에, 일단 가보기라도 하자음을 먹었다. 가보면 재수든 공무원 준비 어느 로 가닥이 잡 거란 생각이었다.


암울한 입학일을 맞이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이불과 옷가지들을 들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섰다. 배정된 방에 짐을 풀면서도 난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다. 그 무렵, 고등학교 친구들 어느 대학으로 갔냐고 물을 때마다 자존심이 상해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점점 친구들의 연락을 피하게 됐그럴 때마다 또다시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다음 장학금 증서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운동장에서 벌써 입학식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잠시 후 마이크를 통해 누군가의 이름이 호명됐고, 인파들 틈에서 한 남학생이 당당한 자태로 걸어 나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저 사람이 수석 입학생이구나.' 그때 갑자기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장학금 한 푼도 못 받았? 우쭐거렸던 만큼 충격 또한 컸다. 내 점수만으로도 여긴 오기엔 아까워 죽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뭐지? 여길 왜 왔을까?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수석 입학생, 공군사관학교 면접 떨어져서 여기로 온 거래."

"저기 저 사람은 고대 졸업생이고, 저 언니는 이대 졸업생이라던데?"


갑자기 이 학교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회계사 세무사,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학교다 보니 공부에만 집중하려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전문대라는 것만 빼놓고 생각하면 '공무원'이란 목표 자체는 꽤 괜찮아 보였다. 원래 어릴 적부터 공익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어차피 교사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공무원도 괜찮은 선택지겠다 싶었다. 인생의 중요한 진로를 이렇게 얼떨결에 정해도 되나 싶을 만큼 갑작스럽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이 동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부유하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 안정되는 것 같았다.


이곳에 오게 된 건  타의였다. 전문대에 겠다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아주 잘못 온 것 같진 않았다.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는 충격과 함께, 이제부터는 어느 누구보다 잘 해내 겠다는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수능 때 같은 실수는 절대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쉽게 요동치지 않겠다고. 더 이상 상황 때문에 흔들리며 원망하고만 있진 않겠다고. 잠시 흔들릴지언정 아예 주저앉진 않을 거라고 결연히 마음을 먹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나는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하루 종일 공부에 매달렸다. 걷는 시간도 아까워서  먹으러 갈 때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속력으로 뛰어다녔다. 종일 귀에 들리는 라곤 사각사각 거리는 샤프심 소리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뿐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기숙사에서 혼자 공부를 면 고요한 밤바다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새카만데, 앞은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만 철썩철썩 들리는 느낌. 언제까지  망망대해 한가운데 있어야 할까. 얼마나 지나야 단단한 육지 위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어깨 위에 내려앉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건너편 기숙사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 하나가 있는 걸 발견했다. 도 나처럼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능에 실패했다는 좌절감 이번에도 실패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번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이 얽히섥히 뒤섞 밤었지만 그런 고민으로 뒤척이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아서 이름 모를 방 주인로 인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띠띠띠띠. 아침 알람이 울리자마자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짧은 세수를 하고 어젯밤에 미리 골라둔 옷으로 주섬주섬 갈아입고 친구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새벽에 내린 함박눈이 길목마다 내려앉아 있었다. 서둘러 나온 탓에 로션도 제대로 바르지 못해서 차디찬 새벽 공기가 살갗을 따갑게 파고들었다. 뽀드득뽀드득.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위를 다가 도서관 입구에 도착해서는 탁탁 탁탁, 운동화에 묻은 눈을 깨끗이 털어냈다. 형광등 스위치를 더듬더듬 찾아 누르니 잠들어 있던 도서관이 순식간에 밝아다. 이렇게 도서관 불을 켜면 이미 멋진 하루를 보낸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그런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


밤 11시가 넘어서 기숙사로 돌아오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피로를 녹였다. 유일하게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폭신폭신한 이불까지 덮으면 어둔 방안 가득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지금보다 더 내 삶에 최선을 다할 순 없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만족감으로 빛났다.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와 패배감 속도 어느덧 깨끗한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주말 오후푸른 나무 아래를 산책 삼아 거닐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가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청춘을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냐고.


기억이란 대부분 그런 것들이었다. 슬픔에든, 좌절에든, 고통에든 나를 온전히 내어줬던 시간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자신을 다 태워버린 연탄재처럼 무언가에 남김없이 몰입했을 땐,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움츠리고 초라했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봤다. 실패라 생각했던 순간까지 모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너무 어려워요.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가요."라며 교수님께 찾아가면 "에이, 그렇게 어려우면 그만해. 때려치워~"라고 한바탕 웃게 해주시기도 하고, 맛있는 밥도 사주셨다. 근로장학생으로 여기저기서 일하다 보니 교직원분들과도 친해졌고, 언제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도 하나 둘 늘어갔다. 이곳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어느새 많은 것들이 변다. 손 때가 묻은 책, 익숙한 도서관 자리, 나를 반가워하며 손 흔들어주는 사람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추억이 서려있었다. 어느새 이곳은 부정할 수 없는, 이제는 부정하고 싶지 않은 '내 학교'가 되어 있었다.


졸업식날, 마이크를 통해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수석 졸업생으로 강단 앞으로 멋지게 걸어 나갔다. 그동안 엄마가 없는 게 들통날까 봐 가족들을 졸업식에 초대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졸업 사진찍었다. 나에겐 그 어느 영화보다 감동적이었던 엔딩 장면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언제 어디서든 새로운 시작을 발견할 수 있 걸 배웠다. 상처도, 영광도 내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란 것도 알았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청춘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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