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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Jan 11. 2021

아빠가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했다고?

방 안 가득한 아빠의 냄새

"학교 다녀왔습니다."


 가득 햇살이 다. 활짝 열린 창문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아빠 방이 이렇게나 환한 곳이었다니…….(아빠 늘 불을 꺼뒀었다).


할머니가 아빠 방에 쭈그려 앉아 걸레질을 하고 있다. 아빤 다른 사람이 자기 방에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아빠는 안 보이고, 오늘따라 집 안도 조용한 게 뭔가 이상다.  


"아빠는?"

"너 학교 간 사이에 병원에 입원했어. 어휴, 몇 달째 술만 마시고 사람을 아주 못 살게 굴어, 술 안 먹게 해주는 병원으로 보냈어."


학교는 나의 도피다. 술 취한 빠를 피해 학교와 학원, 친구네 집으로 겉돌았. 우리 집만 아니면 어디든 좋았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나는 '공부'라는 핑계로 늘 집 밖을 배회했고 그러는 사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술에 절은 아빠를 밤낮으로 감당해야 했다. 늘그막까지 나이 든 자식 뒤치다꺼리하느라 들의  깊게 파인 주름은 펴질 날이 없었다.


나는 잠잘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둑처럼 살금살금 으로 들어왔다. 아빠 방 문이 열려있으면 문이 닫힐 때까지 쥐 죽은 듯 내 방에 숨어 있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몇 시간씩 다. 그런데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다니……. 당분간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학교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 오늘 아빠 만나러 갈 거야."


평일 오후의 스는 한산했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또 버스를 탔다. 먼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지난번에 입원 알코올 중독 병원과는 또 다른 곳이었다.


면회실 앞에 있는 갑고 단단한 문을 바라보니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윽고 철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너머에환자복을 입은 아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다행히 아빠 얼굴이 좋아 보였다. 그동안 세수도 말끔하게 하고 밥도 잘 드셨나 보다. 집에서는 항상 화난 표정이었는데 여기서 만난 아빠는 온화한 사람 같았. 우리 발견한 아빠가 활짝 웃. 저렇게 환하게 웃을 줄도 알다니. 그런 표정을 짓는 아빠가 낯설고 어색했다.

 

"여기서 지내는 건 괜찮? 밥은 잘 나오고?" 할머니가 물었다.

"그럭저럭 지낼 만 해."

나도 아빠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랜만에 만났지만 딱히 할 말 없어서, 할머니와 아빠가 나누는 대화를 잠자코 듣기만 했다.  


"아빠, 또 올게. 잘 지내."

아빠는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었다. 나도 아빠에게 화답하듯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문이 굳게 닫혔다. 우리 사이를 차갑게 가로막은 철문을 보니, 조금 전에 아빠의 얼굴을 마주했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아빠를 만나기 전까진 별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덤덤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특별히 서글프다거나 그리운 마음도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 또 이 먼 길을 달려와, 저렇게 편안한 표정을 짓는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러내렸다.


아무렇지 않 줄 알았는데, 정말 괜찮 줄 알았는데……. 환자복 입은 아빠 직접 고 나니 괜찮지가 않았다. 그동안 외면해 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뒤엉켰고 한번 터진 눈물샘그칠 줄을 몰랐다. 


환한 얼굴로 아빠가 웃어줬는데, 그런 표정을 보고 나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얼마나 삶이 고단했으면, 그 좁고 캄캄한 방에서 오죽 속을 끓으면, 집이 아닌 병원에서 저렇게 후련한 표정을 짓는 걸까?


해맑기까지 했던 빠의 미소가 잊히질 않았다. 내가 알던 아빠는 렇게 살가운 사람이 아닌데. 그만큼 우리가 그리웠던 걸까. 만큼 내가 많이 보고 싶었던 걸까…….


아빠는 술이 싫다고 말했다.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게 아니라고. 라도 마셔야 숨을 쉬고 잠을 잘 수 있어서,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거라 했다. 아빠가 어쩔 땐 나약해 보이고 한심스럽다가도, 또 어쩔 땐 사냥꾼에게 홀로 내쫓긴 사슴처럼 한없이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다. 화도 내고, 간절히 부탁해 봐도 아빠의 알코올중독은 나아지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아빠에게 변화를 기대하다가는 내가 먼저 망가져버릴 것 같았다. '분노'와 '연민'의 감정을 수없이 오가고나니, 이제는 아빠란 사람에게 철저하게 무뎌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연민' 진하게 남은 날이었다. 언젠가아빠가 술을 끊을 수 있을까? 작은 기대감이 움트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헛된 희망은 품지 않는 게 좋다. 이뤄지지 않으면 지금보다 좌절스러 테니까.


흔들리는 버스 안으로 여러 감정이 파도처럼 들어왔다가 밀려나가기를 반복했다. 그 요동이 모두 잠잠해질 때까지, 그저 말없이 창 밖의 풍경만 바라보았다.




며칠 뒤, TV나 실컷 보자 싶어 아빠 방에 들어갔다(TV가 안방과 아빠 방에만 다). 오랜만에 한참 웃고 즐기다 보니 벌써 자정이 훌쩍 있었.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 방에 이부자리를 폈다. 내일 아침 뜨자마자 TV  생각이었다.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TV 전원을 자, 방 안을 가득 채란한 빛과 시끌벅적한 소리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아빠의 베개를 베고, 아빠가 덮던 이불을 덮고, 아빠가 눕던 자리에 아빠보다 한참이나 작은 몸을 뉘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아빠의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이 방을 떠난 지 벌써 몇 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아빠 향이 나는 게 신기했다. 익숙한 그 향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와 다르게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나도 그저 평범한 사춘기 소녀일 뿐이었.


"아빠.. 아빠.. "

울먹이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굵은 눈물방울이 자꾸만 마른 베개를 적셨다.

"아빠.. 너무 보고 싶어요. 아빠... 사실은...  많이 사랑해요..."

잠든 아빠에게 이야기하듯 조곤조곤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닿지 못할 고백인 걸 알기에 어느 때보다  직해질 수 있었다. 병원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이 주인 없는 방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아빠가 돌아오면 이 방에서 내 온기를 느낄 수 있을까. 예민한 아빠라면, 베개를 적신 그리움을 알아챌 수 있을까. 방 안 가득 아빠의 냄새처럼, 나의 그리움도, 사랑한단 고백들도 디 여기에 오래도록 남아주길 바랐다. 전하지 못한 나의 진심이 아빠의 외로운 밤을 위로해 줄 수 있기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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