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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Dec 28. 2020

우리 반 까불이한테 내 팬티를 들켜버렸다

팬~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정혜원~~ 팬티는~~~ 알록달록~~ 알록달록~~~"

(○○○는 바보래요~바보래요~바보래요~ 이 멜로디예요)


하필 우리 반 최고의 까불이한테 내 팬티를 들키고 말았다.


"야, 나 어제 네 팬티 봤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알록달록한 그림이~"

"네가 내 팬티를 어떻게 ?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 아니야~ 어제 너네 집 베란다에 려 있는 거 다 봤어!"

외동딸인 나는 동생 팬티 발뺌할 수도 없다.


"정혜원~~ 팬티는~~ 알록달록~~ 알록달록~~"

"야! 하지 말라고!"

쉬는 시간마다 그 녀석이 팬티 쏭을 대는 바람에 내 굴은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녀석은 한창 말썽 부, 나는 한창 예민할 시기. 우리는 6학년이었다.




어제는 유달리 수가 좋은 날이었다. 친구들과 학종이 따먹기를 하는데 내가 손뼉을 치는 족족, 학종이가 휙휙 뒤집어졌다! 학종이를 제일 많이 잃은 까불이 녀석은 가는 길까지 나를 졸졸 쫓아왔다.  

"야, 한판 더 해!"
내 책가방을 툭툭 치면서 '한판만, 딱 한판만' 노래를 부르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  

"하, 진짜 딱 한 판 만이다? 나중에 딴 말하기 없어."


그러고 나서 길바닥에 주저주섬주섬 학종이를 꺼냈다. 가위바위보를 이긴 내가 선공을 펼쳤다.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 손뼉을 치자 때마침 바람이 휭~ 하고 불어 학종이 탑이 휘리릭 뒤집어졌다. 손 쓸 새도 없이 전재산(?)을 잃어버 녀석의 허망한 표정이란!


"거봐.  나한테 상대가 안 된다니까?"

실력도 아니었으면서 한껏 잘난 체를 하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통수 째려보는 녀석의 뜨거운 눈빛 느껴졌다. 집에 들어간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녀석은 고개를 들어 우리 집 2층을 째려봤다. 그런데 그때 그 녀석의 눈을 반짝이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베란다 빨랫줄에 걸려있던 요란한 팬티들이었다!


그렇게 다음 날부터 팬티 쏭이 교실에 울려 퍼졌다. 어제 설움을 갚으려는 듯,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 가며 를 놀려. 아, 그 팬티만 아니었어도 완벽 나의 승리데! 젠장, 분하다!


 돌아오자마자 방바닥에 가방을 홱 벗어던졌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온 줄도 모르고 TV 앞에깔깔깔 웃고 계셨다. 

"할머니! 앞으로 내 팬티는 무조건 거실에 널어! 우리 반 남자애가 오늘 계속 놀렸단 말이야. 어제 베란다에 널어놓은 거 다 봤대!"

"빨래는 햇빛에 말려야 잘 라."

"그럼 걔가 또 하루 종일 놀린다고! 베란다에 널면 절대 안 돼! 알았죠?"


그 후로도 며칠 동안 그놈의 팬티 쏭을 듣느라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 집으로 걸어오다가 답답한 마음에 우리 집 베란다를 쳐다봤다. 그런데 글쎄, 요란한 팬티들이 또 바람에 펄럭펄럭 나부끼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저게 왜 또 저기 있어!!! (성난 헐크 변신 완료!!)

 

"할머니!!!! 내 팬티가  또 저기 있어?"

"거참, 빨래는 햇빛에 말려야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다고."

"안 뽀송뽀송 해도 ! 동네방네 내 팬티 촌스럽다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내 팬티 내가 빨 거니까 건들지 마!"

"저 저, 계집애 성질머리 하고는."


베란다에 예쁜 팬티가 걸려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창피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이게 다 그놈의 시장표 팬티! 싸구려 팬티! 촌티 팍팍 나는 유치 찬란한 팬티 때문! 저 팬티만 아니었어도!! 아, 그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얼마 전, 할머니와 함께 시장에 갔 때였다.

"아줌마,  입을 팬티 좀 보여줘요."


아주머니가 내 키를 쓱 쳐다보더니 팬티 세트 몇 개를 꺼내 주셨다. 상자에 가지런히 담긴 스텔 빛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음~ 고상하고 세련됐.


"이런 거 말고 더 싼 건 없어요?"

잠시 후 장님은 멀리서 봐도 요란한 팬티 몇 장을 들고 오셨다.  전의 것들과 달리 유아틱 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지금 4살짜리 우리 아들 팬티가 더 세련됐으니 말 다했지 뭐.)

"우리 집에서 이게 제일 싸요."


의자에 앉을 때마다 촌티 나는 팬티가 보일까 봐 걱정스러웠다. 상의가 조금 짧다 싶은 날엔 겉옷을 허리춤에 묶어서 철벽 방어. 그런  숱한 노력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팬티를 기리는 노래까지 만들어져서 이렇게 만천하 공개되어 버렸는데!


내가 직접 빨아서 거실에 널어그런 나의 노력을 비웃듯, 어느새 팬티들은 바깥바람을 쐬며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 할머니와 팬티를 붙들고 실랑이를 벌였지만 할머니는 결코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결국 할머니를 설득하는 건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게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종례 시간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챙겨 들고 바람처럼 쌩~하니 달려 나갔다. 반드시 그 녀석보다 빨라야 한다! 그 녀석이 우리 집을 지나가기 전에 베란다에 있는 팬티를 사수해야만 한다! 다다다다~ 좋았어, 오늘도 미션 성공!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린 덕분에, 녀석은 한동안 나의 팬티를 구경할 수 없었 드디어 팬티 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다.


할머니, 제 팬티는 제발 제가 알아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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