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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Jan 05. 2021

어느 소설 속의 멋진 주인공처럼

동병상련의 위로

나는 우리  창피다. 오래된 단독주택, 가난한 살림살이, 이단에 빠져 이혼한 엄마, 알코올 중독인 아빠, 무관심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내 배경에 관해선 어느 것 하나 떳떳한 게 없었다.


3월이 되어 친구들을 사귈 때마다 창피한 집안 배경이 드러날까 조심스러웠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곤란하게 했던 건 엄마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제 엄마가 제육볶음 해줬는데 엄청 맛있었어. 원아, '너네 엄마'도 요리 잘하셔?"

"어? 아.. 아니.. '우리 가족'들은 요리 못해. 근데 너 어제 그 드라마 봤어?"

대답을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다.


엄마가 없다는 말을 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이렇게 불쑥 들어온 질문에 쉽게 할 수 있는 대답 아니었다. 이혼이 옛날보다 흔해졌다고는 하지만, 나처럼 엄마가 없는 경우는 흔치 않았. 세상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이 있겠지라고 상상할 뿐,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엄마가 이단에 빠져서 집을 나갔다는 건 '나는 버려진 아이입니다. 날 낳아준 엄마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했어요.'라는 뜻 같아서 말하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친구들이 미안해하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도 싫고, 엄마 아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눈치를 보 것도 싫었다. 말한다고 해결될 도 아닌데, 그들 마음을 무겁게 하고 싶진 않았다. 친구들이랑 있을 때만큼은 나도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집안 배경은 나의 일부라 하기엔 존재감이 너무 컸다.  그게  전부인 것 같았. 친구들이 를 좋아해 주면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왜 좋아하는 걸까? 나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고 나서도 계속 좋아해 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계선 너머의 금지된 구역까지 밝혀지고 나면,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까 겁이 나기도 했다.

 

부잣집 친구까워질수록 내면의 갈등은 깊어져 갔다. 친해지고 싶으면서, 더 이상 친해지고 싶지 않 마음,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혼자 우물쭈물 대며 서성거렸다. 학교 밖에서도 만나 할까 봐 불안했다. 돈이 없으니 밖에서 만날 수도 없고 초라한 우리 집에 초대할 수도 없었다. 어야 할 엄마는 없고, 직장에 있어야 할 아빠는 집에 있었으니까.


이리저리 고민해 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 아픈 일은 차라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이힘들수록 밝게 웃었. 자연스레 명랑하고 활기찬 애, 긍정적인 애라는 수식어가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짜 그런 사람이라고,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 믿으, 현실을 속이고 슬픈 마음을 외면했다.



그러나 해소되지 못한 슬픔결국 나를 책으로 이끌었다. 거기엔  같은 주인공들다. 울한  마음을 쏙 빼닮은 사람 있었고 나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아픔을 겪은 도 있었다. 세상엔 내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고통과 슬픔이 존재했다.


가난에 허우적대는 것도, 말 못 할 가족사를 가진 것도, 아무 말 못 하고 꾸역꾸역 슬픔을 쌓아두는 것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 들었다. 몇백 년 전의 사람일지라도, 같은 국적이 아닐지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또 있다는 묘한 동질감. 그 동병상련이 답답한 마음을 후련하게 했다.  


위인전 누군가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났고, 군가는 노비의 신분이기도 했으며, 또 누군가는 누명을 써서 기약도 없는 긴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엄청난 불행들이 겹겹이 닥쳐 때,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읽어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나도 이들처럼 살 수 있을까. 내 인생도 이들처럼 멋지게 성장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덮으, 몰아치던 불안 어느새 고요한 바다 변해 있었다.  대 아주 작은 원망모두 내려놓고 싶어졌다. 헛된 미움으로 나를 갉아먹는 대신, 어떤 불행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 좁은 방 안에서 읽고 또 읽었던 멋진 주인공들의 이야기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이야기도 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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