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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잉 Jul 15. 2024

3년차 수습회계사 이야기(EP.6)

EP 6. 탈출 작전 본격 시작 - 플랜 B

이번 에피소드는 로컬회계법인 면접 썰입니다. 



보통 로컬회계법인은 신입을 잘 받지 못하는 입장입니다. 현재까지는 대부분의 합격생들은 Big 4에서 다 물량 소화를 해줬거든요. 시험을 붙기만 하면 Big 4에서 경력을 시작하기가 수월합니다.(올해부터는 아니겠지만 말입니다).그리고 모든 수험생들이 다 출발을 로컬해서 하는 걸 꺼려합니다. 왜냐면 로컬에서 다루는 회사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라 일을 깊게 배우기가 힘듭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보통 일을 Big4에서 깊게 배우면서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다가, 워라밸도 찾을겸 해서 로컬로 가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애초에 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는 자격은 등록된 회계법인에게만 주어지며, 그 중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는 자격은 가군 회계법인, 즉 Big 4가 전부입니다.


로컬도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사람을 가르쳐서 쓰기 보다는 즉시 전력감의 경력직을 원합니다.

제일 로컬로 가기 쉬운 연차가 3~5년차죠. 나이도 적당히 어리고, 풀타임으로 채용하기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은 연차거든요.


여튼 한공회 구인공고를 뒤적거려서 항목 별로 조건, 해당 법인에서 원하는 인재, 담당 직무 등 여러가지로 분류해보니 총 40개의 공고가 엑셀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 중 90%가 3년차 이상을 원하고 있었고, 나머지 10%는 수습회계사(신입회계사) 채용 공고였습니다.


감사 경력이 없어서 상당히 불리하겠지만 여튼 여러 군데 지원서를 냈고 면접을 보러가게 됩니다.



지금부터 면접 썰을 풀 때 무슨 회계법인의 무슨 팀 이렇게 쓸텐데, 그건 로컬회계법인의 특성인 '독립채산재'(약칭 독채)때문에 그렇습니다. 


독립채산재란, 각각의 팀들이 뭉쳐 단일 법인을 이루는 형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홍길동 회계법인이 있다고 해봅시다. 홍길동 회계법인에는 감사 1팀, 감사 2팀, 감사 3팀이 존재하죠. 그런데 보통의 회사와 다른점은 독립채산제의 감사 1팀, 감사 2팀, 감사 3팀은 사실상 '별개의 회사'라는 것입니다. 일을 가져오는 파트너도 다르고, 당연히 클라이언트도 다르고, 성과급도 다르게 나옵니다. 사무실에 자리를 공유하고 있을지 언정 사실 별개의 회사입니다. 당연히 감사 2팀의 막내가 감사 1팀의 타 회계사를 직장상사로 대우하지 않으며, 그건 감사 1팀의 타 회계사도 마찬가지로 저 사람은 자기 부하 직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대로 치면 딱 옆 중대 아저씨 느낌인거죠.


감사 1팀, 감사 2팀, 감사 3팀을 이끌어가는(일을 물어오는) 각각의 파트너들은 서로 할 것을 하면서 한 지붕아래 모여있는 셈이 되는 거죠.


왜 굳이 이렇게 할까요? 그건 직접 창업을 하는 것보다 회계법인의 이름을 빌려쓰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홍길동 회게법인 감사 3팀에 있는 A와 B와 C는 동업을 하고 있는 파트너들입니다. 원래 진짜 완전 창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사무실 구하는거랑 임대료는 그렇다치고 회계법인 이름도 정해야 되는데, 정했다 한들 아무도 자기네들 회계법인 이름도 모릅니다. 


그럴바에야 이미 이름이 좀 알려진 홍길동 회계법인에 가방 싸들고 거기서 팀을 꾸리는 게 낫죠. 따라서 기존 고객들한테는 자기네들이 개업했다고 알리고 관계를 이어가고, 새로운 고객들에게는 홍길동 회계법인의 이름을 빌려 영업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당장 어디 회계법인인지 얘기할 때 매출액 TOP 10에 드는 회계법인 이름을 얘기하면 알아듣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100위 바깥으로 벗어나면 그런 데도 있냐는 반응이 99%입니다.

거기서 영업을 해서 자기들이 한 만큼 가져가고, 이름 빌리는데 드는 수수료, 사무실 공동 이용 비용, 전기료, 복사료 등을 별도로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회사 형태가 저희가 흔히 알고 있는 1팀, 2팀, 3팀이 별개의 회사가 아닌 부서로 엮여있는 삼성전자같은 구조의 회사입니다. 이를 원펌 체제(One-Firm)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한공회에 구인공고가 났다고 칩시다. 홍길동 회계법인의 1팀과 홍길동 회계법인의 2팀이 동시에 공고를 냈습니다. 다른 팀이라지만 그래도 같은 홍길동 회계법인의 팀이니 아무데나 지원하면 될까요? 조직문화나 급여 이런것도 다 비슷할까요? 하는 업무도 비슷할까요?


전혀 아닙니다. 진짜 완전 다릅니다. 조직문화부터 시작해서 하게 되는 일, 뭐 하나 같은 게 없는 별개의 회사입니다. 지원하실 때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원펌 체제를 구축한 로컬들도 소수 있지만 절대 다수는 독립채산제입니다.





첫 번째로 면접봤던 법인은 A회계법인의 모 팀입니다.

구직자에서 회사를 볼 때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인데, 대부분 크게 크게 보면 조직 문화, 급여 수준, 향후 성장성(나의 직무 성장 기회) 일 것입니다. 물론 저 세 개가 모두 알이 꽉찼으면 좋겠지만 세상에 그런 유니콘 기업은 있을 리 없고, 있다해도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겠죠. 


우선 조직 문화는 딱 봐도 좋아보였습니다. 회계사는 직무 특성상 개인이 아닌 팀으로 일하게 되는데, 보통 로컬에서 면접을 보면 파트너 한 사람, 같이 실무 뛰는 한 사람 이렇게 면접을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면접보러 회사에 갔을 당시, 휴가 및 필드 이탈해있던 분들 말고는 전부 면접을 본다고 내려오셨습니다. 즉, 팀원분들은 최대한 면접에 많이 참여해준 셈이죠. 구직자 입장에서도 이건 좋은 신호에 해당합니다. 최소한 일하는 사람을 뽑는데 모든 인원의 의사가 고루 반영된다는 반증이며, 아무나 안 뽑겠다는 신호니까요.


그리고 저는 피면접자다보니 안전하게 풀 정장을 입고 갔는데, 당시 면접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편한 복장이셨습니다. 대놓고 얘기하면 갑자기 누가 단톡방에서 PC방 가자 했을 때 동네 남자들이 번개로 만나는 복장 정도?


풀정장 입고가니 당황하시더군요. 자기들도 클라이언트한테 갈 때는 이렇게 안 입고 가는데 사무실 올 때는 복장에 큰 신경 안 쓴다고 오해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제 동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체계가 없어 보인다거나 아니면 뭔가 피면접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 같다고 싫어했을거라고 합니다. 충분히 동감합니다. 옷 하나에 체계는 좀 가혹할지라도 피면접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 같다고는 확실히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쫄땐 쪼고, 풀땐 푸는 자유로운 분위기 같아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도 제가 배우고 싶어하는 회계감사와, 로컬 수준이라 수준은 낮겠지만 실사와 용역도 고루 배울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실제로 수임을 해오시는 이사님들 업무가 서로 다 달라서 다양한 업무를 가지고 와서 품앗이하는 구조였습니다(근데 이건 로컬에서 팀 단위로 개업하면 대부분이 이렇긴 합니다).


하지만 연차를 1년 까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마음에 걸렸습니다. 반박할 순 없습니다. 애초에 가군이나 나군같은 대형회계법인이 아니라 전산감사를 쓸 일이 거의 없으며, 회계감사를 해본적 없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수준이라 등록회계사의 연봉을 그대로 주고 고용하긴 부담스럽다는 거죠. 원래 연봉이라는게 자기 능력대로 받는 것임을 고려하면 무리한 제안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당장 저한테 3년차 연봉을 지급했을 때 3년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100번 물어도 대답은 다 '아니오'라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회사가 구직자를 평가하는 것 처럼 구직자도 회사를 평가합니다. 면접해본 입장에서 A회계법인의 모 팀은 조직문화 만족, 성장성 OK, 급여 수준이 세모 였습니다.(연차 1년 다운 그레이드)


두 번째 면접 경험은 B회계법인의 모 팀입니다.


면접은 파트너 한 분, 어드민 한 분 이렇게 총 두 분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약간 스탠다드 형태에 가까운 셈이죠. 면접볼 때 사실 조건은 제일 괜찮았습니다. 평소에 비시즌때는 11시 출근, 5시 퇴근이라 워라밸도 사실 날먹이고, 감사경험이 없지만 특별히 깎지않고 연봉을 맞춰준다고 한 것이죠. 


이렇게만 보면 당장이라도 가야할 것 같았지만, 크게 망설이게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선, 팀이랄 게 없었습니다. 저를 고용하는 파트너 한 분만 제 직장상사이며, 다른 팀원들이 없었죠. 원래 본인이 클라이언트를 가지고 본인만 일을 하고 있는 구조였으나, 일거리가 늘어 사람을 찾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회계감사 경험이 없습니다. 하지만 파트너는 대부분 고객 관리에 집중하지 실무를 잘 가르쳐주지 않으며, 따라서 적당한 선배 연차의 팀원이 있는게 저한테는 절실한데 당장 그 분과 저 이렇게 둘만 있는 팀에서 무슨 업무를 배울 수 있을까요? 


또한, 규모가 작다보니 감사고객 중에서는 IFRS가 없고, 용역에서만 IFRS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여기는 일을 배운 사람이 워라밸을 찾아서 올 곳이지, 일을 배우러 오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하면 조직 문화랄건 딱히 없고, 직무 성장성이 너무 낮으며, 급여 수준은 만족.


세 번째 면접은 C회계법인 모 팀이었습니다.


여기는 원래 그냥 안 갈까 고민하다가 면접 경험이라도 쌓을겸 갔던 곳입니다. 의외로 제가 지원한 회계법인 중에서는 제일 큰 법인이었으며(나군), 그만큼 큰 상장사를 할 일도 제일 많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독립채산제니만큼 어디 팀으로 가는지가 제일 중요하겠죠. 그렇게 큰 상장사는 회계법인 덩치로 따오고 여러 팀들이 협업을 하며, 그 외에는 속한 팀에서만 일하게 될테니까요.

 

근데 제가 면접을 봤었던 C회계법인 모 팀은 가기 전 부터 인상이 안 좋았습니다. 우선 다른 곳은 다 퇴직금 별도 인데 여기는 퇴직금을 연봉에 포함해서 주겠다고 하더군요. 연봉은 깎지 않고 맞춰주겠다고 했습니다. 의외의 제안이지만 여기에는 퇴직금이 포함되어 있다는 함정이 있죠. 즉, 맞춰주겠다고 했지만 맞춰주는게 아닌 셈입니다.


그리고 면접을 갔는데 나이가 저희 아머니나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만 있고,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주축인 첫 번째와는 많이 다른 경우였죠. 제가 가면 제 바로 위에 연차가 12년차 회계사 선배님이시던데, 사실 이런 곳에서는 업무를 크게 배우기 어렵습니다. 영업을 따오는 파트너들은 업무를 가르쳐 줄 여유도 시간도 없고, 보통 팀 선배한테 많이 배우게 되는데 12년차 정도 되시는 선배님들은 이미 모든 일이 상식처럼 느껴질 짬인데다 본인도 본인 고객이 있는 경우가 많아 일은 잘하시지만 가르쳐본 경험은 너무 오래 전일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두 번째로는 면접 상황. 구직자도 면접으로 회사를 평가합니다. 연령대가 상당히 높으신 분들이라 그런가 사회적으로 섣불리 물어보면 실례로 취급받는 질문들도 많이 하시더군요. 그것도 연속해서 4~5번을 계속 물으셨습니다.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게 고여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래 조직에서는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하고 갈등을 겪고 풀고 하는 과정에서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여기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던 적이 없었을테니 그게 실례되는 행동인지 자체를 모르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클라이언트. 해당 팀의 주 클라이언트는 중국회사 중 코스닥에 상장한 회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분기마다 중국 출장을 자주가는데, 중국가면 중국 애들하고 술을 먹고 잘 어울려주는 것이 굉장히 큰 비즈니스 매너라고 하더군요. 술 안 좋아한다, 싫어한다 이런 말이 아예 안 통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정말 술을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보통 술 많이 안 마신다고 하고 가보니까 술을 많이 마시더라 이런 스토리로 흘러가는데, 아예 '술을 많이 마신다'고 못 박고 시작할 정도면 얼마나 마신다는 걸까요? 그리고 걔네들이 소맥 먹겠습니까? 고량주 가지고 와서 때려붓겠죠?


저는 술을 좋아합니다. 근데 도저히 저런 분위기의 팀에서 저렇게 살고 싶진 않더군요. 구글에 그런 내용으로 검색하니 꽌시(关系) 라고 나옵니다. 팀 분위기와, 들어가면 어떤 느낌으로 살게 될지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합니다. 


법인 입사 전 중국어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어 공부를 해서 어학능력을 하나 취득해 놓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 팀에서는 그 중국어 공부를 했다는 부분을 보고 저를 한 번 불러본 게 아닐까 싶습니다. 회계감사 경험은 없지만 말이죠. 인생 살면서 도움될 일 하나 없을 것 같았던 중국어가 빛을 본 유일한 순간이었으며, 근데 하필이면 그런 곳에서 빛을 발할게 뭡니까. 여튼 뭐든 열심히 하면 어디든 쓸모가 있는 구석이 나온다는 말을 실감하면서도 애통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약하면 조직문화 심각. 직무 성장성 물음표. 급여 수준 세모 







저 세 군데 말고 다른 곳도 당연히 지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회계감사 경험이 없이 전산감사만으로 경험이 찬 회계사를 받아주는 곳은 많이 없었습니다. 예상했던 일입니다. 지금이 시장이 좋고 활황이면 괜찮겠죠. 일도 넘칠테고 어차피 연차도 낮은데 키워서 써먹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불황의 시대입니다. 사람을 키워서 쓰기 보단 즉시 전력감을 원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죠. 그래서 로컬도 좋은 로컬로 가기는 힘들겠다는 각오를 미리 해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죠. 나머지 두 군데는 진짜 딱봐도 좀 아니고, 괜찮은 팀도 하나 찾은 것 같아서 면접을 보고 집으로 오는 날 기분은 좋았습니다. 결과는 세 군데 모두 합격이라 원하는 곳을 골라서 보험으로 챙겨두면 됐었죠.


돌아오는 길에 첫 번째 면접을 보던 팀에서 추가적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요점은 연차는 깎고 싶으나, 지금 제가 받던 연봉보다는 좀 더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완전 1년 치를 통째로 까는 것에는 자기네들도 좀 꺼림칙했나 봅니다. 찝찝했거나 뭔가 양심에 찔렸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제가 원래 받던 수습 연봉 보다는 대략 몇 백 정도 더 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보험으로 챙겨둔다면 셋 중에 당연히 A회계법인의 모 팀을 챙겨둘 생각이었는데, 제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땡큐죠. 괜히 울적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 듭니다. 그래도 연차를 까야한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상 이종업계로 이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A와 B 플랜이 모두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제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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