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씨, 충주맨처럼 해봐"..제가요?

홍보맨의 일과 삶

by 이야기캐는광부

"충주맨처럼 해봐."


전국의 SNS 담당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아오… 또 이 말이야…) 제… 제가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내 목소리가 저절로 기어들어갔다. 웃으면서도 마음에 돌멩이가 하나 얹히는듯한 그 느낌.


충TV에 처음 영상이 올라온건 2019년 4월이었다. 그 유명한 ‘시장님이 시켰어요: 공무원 브이로그’ 영상이 그것이다. 해가 갈수록 당시 충주맨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다.


스크린샷 2026-04-18 오후 5.00.45.png


사실 나도 그보다 반년 앞선 2018년 11월부터 공무원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광역지자체 임기제 공무원 신분으로, 개인 유튜브 채널을 직접 파서 영상을 올렸다.전국적으로 공무원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펴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나와 같은 공무원 유튜버가 전국적으로 몇명 없었다. 희소성이 있었기에 나는 지역 언론 인터뷰 기사에 실리기도 하고,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첫 영상은 어머니와 함께 지역 명소를 찾아간 소소한 기록이었다. 그 영상이 당시 근무하던 지자체 SNS에 공유되면서,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 채널로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부가 업무가 되기도 했다.


당시 내 마음 상태는 이랬다. 공식 블로그 운영 업무에 익숙해질 무렵, 슬슬 새로운 분야로 넘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올라왔다. 새로운 툴을 익히고 싶은 학습 욕구로 머릿속이 꽉 차 있던 시기였다. 그때 유튜브를 만났다. 공무원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유튜브를 찍는 일이 드물었던 때라,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시도였다.


영상을 찍고, 밤을 새워 편집하고, 완성된 결과물을 세상에 공개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맥북으로 파이널컷 프로를 독학하면서 영상 편집을 익혔다. 주변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재밌어요!" 하는 격려부터, "좀 더 자기를 내려놓아야 해요"라는 따끔한 조언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들려오는 한마디. "충주시 영상에 비하면 좀 지루하지 않아요?". 주변의 피드백과 비교 속에서 나는 자신감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며 갈피를 못잡았다.

나름 열심히 만들었지만, 충주맨의 경지에는 끝내 닿지 못했다.


사진111.png ⓒ이야기캐는광부 / 당시 사무실에서 한 컷.


충주맨은 딱딱하고 재미없기로 정평 난 공공기관 홍보의 문법 자체를 갈아엎은 인물이다. 60초 안에 위트와 B급 감성, 정책 정보를 절묘하게 버무린 숏폼 영상으로 충주시는 물론 전국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홍보 방식까지 통째로 바꿔버렸다. 충격이었다. 나름 '전문 분야'로 뽑혔다는 임기제 공무원이었는데, 그와 같은 퍼포먼스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조용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SNS나 유튜브 영역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이겠구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충주맨은 성공하고, 나는 그러지 못했을까. 돌이켜보면 이유는 생각보다 명확했다.


충주맨이 성공한 이유(개인적인 생각)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숏폼으로 승부했다.

B급 감성이라는 확고한 컨셉을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유지했다.

매주 1편씩 올리며 시청자와의 약속을 꾸준히 지켰다.

유행하는 밈을 그냥 갖다 쓰지 않았다. 충주시의 정책과 사업에 맞게 녹여내고 재해석했다.

'충주맨'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7년이 넘도록 주변의 피드백에 흔들리지 않고 영상을 올렸다.

컨셉은 B급이었을지 몰라도, 기획만큼은 S급이었다.

딱딱하고 정보 전달 위주인 기존 지자체 유튜브의 문법을 과감하게 파괴했다.

앞부분에서 큰 재미를 주고, 끝부분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구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개인적인 생각)


일관된 컨셉이 없었다.

주제가 너무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다.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올렸다.

업로드 주기가 들쭉날쭉했다.

컨셉이 다른 지자체 영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미'보다 '정보 전달'을 앞세웠다.

유튜브 캐릭터 구축을 잘하지 못했다.

콘텐츠 기획 역량이 부족했다.


그래도 아예 얻은 것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공무원 리포터로서의 가능성'을 보이며 새로운 자아를 발견했다. 염원하던(?) 유튜브 업무 담당자가 됐다. 당시 기획부터 촬영, 영상편집까지 내 스스로 했었다.

삼각대에 스마트폰을 달고 사람들이 많은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깡(?)을 키웠다.

공무원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지역 방송에 몇 번 출연했고, 직장 동료들의 응원도 받았다. 지역을 홍보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시의원의 피드백도 있었다.

무엇보다 유튜브 영상을 만들며 고민했던 내용들이 석사논문 주제로 이어졌다. 광역지자체 유튜브를 주제로 한 논문을 팔자에도 없는 학술지에 실었다. 또 '공무원스러움'이라는 딱딱한 껍질을 조금이나마 깨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시기였다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요즘 지자체 유튜브를 보면, 예전보다 훨씬 치열한 선의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충주맨 이전에도 지자체 유튜브 씬에는 선구자들이 있었다. 충주시 SNS에 B급 홍보의 씨앗을 처음 심었던 충주시 SNS 담당 주무관, 직접 유튜브에 출연하면서 고군분투하던 문경시 주무관, 고양시와 부산경찰청 페이스북 담당 주무관들까지. 그들이 남긴 족적이 거름으로 쌓여 지금의 지자체 SNS 전성 시대를 열었다고 본다.


그 분들을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SNS 담당자라면, 이들처럼 한 번쯤은 자기만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이전 15화홍보 백서를 만들라고요? 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