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2010년 3월 2일~3일, 매혹문화재단
위드에서 놀란 마음을 그 후 작은 회사들 몇 개를 다니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은 또 색다르게 문화재단에 와 있다. ‘문화재단도 회계감사를 받아야겠구나. 그러네.’ 하며 그래도 세상이 빈틈없이 잘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공익법인을 감사한다고 하니까 사명감도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훗. 아주 으리으리하지는 않아도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설계부터 공을 들였을 예쁜 3층짜리 건물 안에는 이름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부서명이 적힌 문패들이 달려 있는 방 들이 쭉 있었다. 외감이 아닌 회사들은 중간감사를 따로 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문화누리부’, ‘지식정보부’, ‘국제협력부’, ‘지역협력부’를 지나 ‘경영혁신부’. 나독립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곳은 경영혁신부 안 쪽의 한 책상. 회계 팀 직원인 듯 보였고, 그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고, '팀장님'하며 회계팀 장으로 추정되는 분이 앉아 있는 책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우리는 그 두 분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참으로 멋졌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아직도 쌓여 하얗게 단장한 나뭇가지들이 청량한 촉감까지 담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독립 선생님이 회계팀장님과 회계직원에게 나를 소개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을 탐색 중이었는데 그 두 사람에게도 내가 새로운 건 마찬가지였으므로 서로가 서로를 탐색 중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어쩐 일인지 회계팀장님의 말씀 속의 회계 어휘가 어색하게 들렸다. 과연 이곳은 또 어떤 곳일까?
회계직원으로부터 받은 유에스비를 나독립 선생님이 저장하고 나에게 전달해주며 말했다.
“자료 열어보면 알겠지만 여긴 구분경리 이슈가 있습니다.”
구분경리? 그게 뭔데? 내가 공부하면서 또 뭘 빼놨나? 얼이 빠져 있는데 나독립 선생님이 말했다.
“법인세법 첫 부분에 ‘비영리법인이라고 할지라도 수익사업에 대하여는 과세한다.’ 기억 안 납니까?”
아, 기억난다. 와~ 책으로 배웠던 것들이 다 진짜였어. 나독립 선생님의 말을 정리해보면, 이 문화재단은 예술가들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법인으로서 공익법인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고 있으며, 예술가 지원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을 접목하여 지원 예술가들을 강사로 한 시민 예술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수강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는 법인세법상 수익사업에 해당하여 법인세가 과세된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듣고 나서 엑셀 파일을 열어보니 ‘총괄’ 시트가 있고, ‘목적’과 ‘수익’ 시트가 각각 있었다. 지금까지 들은 얘기와 회계사의 감으로 종합해보건대 ‘목적’ 시트에 있는 재무제표와 ‘수익’ 시트에 있는 재무제표를 합치면 ‘총괄’ 시트에 있는 재무제표와 일치하겠지? 자, 그럼 나는 뭘 하면 될까?
나독립 선생님은 ‘총괄’ 시트에 있는 재무제표의 모든 계정과목의 입증 업무를 나에게 맡겼다. 그렇다면 본인은? 본인은 구분경리가 제대로 되었는지만 보시겠단다. 나독립 선생님의 어싸인은 옳았다. 공익법인의 특성상 모든 수입은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이었고, 모든 지출은 예산에 책정된 대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 구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지출절차도 내부규정대로 지출 요청자와 결재자와 출납자가 모두 분리되어 있었으며, 각 세 사람으로부터 발생된 증빙이 한 묶음이 되어 지출결의서에 철 되어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처음에 감이 없었을 때, 한 계정과목 원장[1]에서 임의로 10개를 추출해 지출결의서를 요청해서 봤는데 모두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었다. 그 뒤 다음 계정과목부터는 표본 개수를 5개씩으로 줄였다. 음… 내부통제시스템의 관리가 철저하군. 입증 감사도 수월하게 되고 있고 하니 다른 호기심이 생겼다. 예산대로만 움직이니 내부통제가 잘 될 수도 있겠지만 변수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할까? 이 정도 기관이 운영되려면 돌발상황도 많을 테고, 그 변화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그래서 회계직원에게 물어보니 예산 규정에 예산 변경에 관한 규정이 따로 있다고 했다. 예산 변경 절차에 따라 진행되지만 예산 변경이 타 부서의 타 사업 간인 경우는 아주 드물며, 사업 내 예산 변경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1년이 지나고 사업이 완료되고 나면, 사업별 집행 잔액은 국고로 반납하게 되어 있다고 했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출이 이미 짜인 예산 내에서만 이루어지니 집행 잔액이 남지 않도록 무분별하게 목적 없이 집행해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겠지만 당초 예산 편성할 때 최선을 다해 무리해서라도 예산을 많이 잡지는 않을까?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아니 용기라기보다는 1년 차가 부리는 객기라고 받아들이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회계 직원에게 가감 없이 물었다. 회계직원은 부서 간 이해관계 때문에 그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원금 수입이 몇 년째 고정이라고 했다. 해마다 그 고정되어 있는 지원금 수입 내에서 부서별로 기획된 사업에 부서 간 협의와 조율을 통해 예산을 배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의 부서에, 자신의 사업에 예산을 턱없이 많이 배부하기는 당초에 불가능한 구조였다. 또 하나 내가 질문했던 것은 ‘예산 규모가 꽤 커 보이는데 그 회계업무를 혼자 다 하는 건가, 그 안에서 회계팀장님의 역할은 또 무엇인가’였다. 그 회계직원의 말에 따르면, 전에 노대차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바 있었던 더존이라는 회사의 비영리법인 회계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으며, 연말마다 다음연도 사업에 대한 예산 편성이 승인되고 나면, 팀 별로 예산 등록 권한이 있는 한 사람이 예산 회계 프로그램에 사업비 세목 별 내용과 책정 금액을 등록한다고 했다. 그러고 나면 자신이 지출 예정 내용을 보고 예산과목 별로 회계 계정과목을 미리 입력한다고 했다. 그 후 실제로 집행이 이루어지면 버튼 하나로 집행 처리되고 회계처리까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본인은 오류는 없는지 가끔 확인만 하고 결산 시 결산 회계처리만 추가하여 주면 끝이라고 답했다. 물론 모든 부서의 예산 등록을 모두 합치면 개별 건수도 정말 많아지기 때문에 일의 양이 적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회계처리나 결산 과정에서의 회계팀장님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으며, 부서 간 예산 편성과 집행에 있어 분쟁이 있거나 조율이 필요한 경우 어레인지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덧붙였다. 이쯤 되니 회계팀장님은 예산회계 담당, 회계직원은 결산회계 담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산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회계팀장 님의 어휘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예산 회계의 세계는 결산 회계와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회계 지식이 조금 모자라 보이는 회계팀장님도 이해가 됐을 뿐 아니라 회계감사 리스크가 현저하게 낮은 곳이라는 결론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나독립 선생님은 구분 경리를 뭘 어떻게 하고 계시는 걸까? 오지랖 좀 떨어볼까? 나독립 선생님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선생님, 구분 경리 감사 어떻게 하는 거예요? 뭘 하는 거예요?”
나독립 선생님 노트북 옆에는 세무조정계산서 책자가 놓여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구분 경리 감사라기보다는 세무조정 영역입니다.”
평소와 달리 사뭇 진지하고 학구적인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감사수임업체는 대부분 우리가 법인세 신고 대행까지 합니다. 우리가 감사를 끝내서 재무제표 숫자가 확정이 되면 자료가 세무팀으로 넘어가 손금산 팀장님 지휘 하에 세무조정이 이루어지죠. 상장사의 감사보고서 같은 경우에는 주총 2주 전에 공시되어야 하기에 우리 감사 일정도 빠듯하지만, 감사가 끝나야 세무조정을 시작할 수 있는 세무팀의 경우에는 모든 거래처의 신고 마감이 3월 31일[2]이기 때문에 우리 손만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감사 완료 일정이 미뤄지거나, 세무팀 전달 후 숫자가 다시 바뀐다거나 하는 일이 가끔, 아니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손금산 선생님이 우리에게 조금 까칠한 것도 있고, 날카롭기도 하죠. 다른 팀원이 있기는 해도 그 팀원들은 개인사업자나 감사받지 않는 작은 법인사업자만을 담당하고 감사수임업체의 법인세 신고는 손금산 선생님이 직접 다 합니다. 기장과 세무 신고 대행을 하는 회계사무소 알죠? 듣기로는 손금산 선생님, 회계사무소 운영하시다가 우리 본부 처음 꾸려질 때 세무팀으로 합류했다고 들었어요. 그 팀원들도 그때 회계사무소 하시던 시절 그분들 그대로구요.”
여기까지 들었지만 아직 구분경리에 대한 얘기는 듣지도 못했다.
“그래서 구분경리는요?”
“아, 그렇지. 세무조정이라는 건 회계장부를 법인세법에 따라 과세소득을 구해나가는 과정이잖아요? 그래서 법인마다 크게 차이 날 것 없이 법인세법 업데이트만 잘하면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법인세 신고를 위해서 세무조정 이전에 구분 경리를 해야 하잖아요. 문제는 그 구분경리가 제대로 되었는지는 세무팀에서 자료만 받아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회계 감사하듯이 조직과 사업을 잘 이해하고, 담당자와 협업해야 비로소 그 법인세 신고를 위한 재무제표가 확정이 된단 말이죠. 그다음 세무조정은 일반 영리법인 세무조정과는 비교도 안되게 쉽구요. 좀 특이해서 어렵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결론은 여기 세무조정은 손금산 선생님이 아닌 내가 한다 이 말씀입니다. 물론 전자 신고하기 전에 손금산 선생님이 쫙 리뷰를 해주시고 말입니다. 비영리법인의 수익사업 법인세 신고라는 이 분야가 가이드라인이 명확하게 없어서 다소 헷갈리는 건 사실이지만 치열한 회계 시장에서 그만큼 블루오션이기도 합니다. 선생님도 저 잘 따라다니면서 잘 배워두십쇼.”
나독립 선생님은 말을 마치며 뿌듯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나독립 선생님, 이제 보니... 팔색조?
[1] 1년 동안 발생한 각각의 회계 거래를 계정과목 별로 모아놓은 회계장부를 말한다.
[2] 우리나라 대부분의 법인은 12월 31일을 결산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3개월 후인 3월 31일이 법인세 신고 기한이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