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2010년 2월 22일~26일, 주식회사 위드
구정 연휴가 끝난 주에도 감사 필드 한 군데를 다녀왔고, 드디어 이번 주엔 상장사를 감사한다. Big Four도 아닌 우리 같은 중소 회계법인도 상장사 감사를 다 하는구나. 박직새 전무님 능력 있으시네. 영업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인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인맥이 곧 영업력인가? 오늘 킥오프 회의에는 박직새 전무님도 오시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공식적인 킥오프 회의[1] 전에 이미 실무자들이 회의실에 들어와 저마다의 안건을 가지고 매니저 심의구 이사님, 나독립 선생님, 원대조 선생님, 그리고 노대차 선생님과 각각 면담 중이었다. 나와 김장수 선생님은 그저 분위기만 살폈다. 이분들 모두 작년 중간감사 때 뵙긴 했지만 역시 다들 회계에 정통한 실력파다. 과장님만 셋. 한 과장님은 재고 담당만 10년 째다. 한 과장님은 원대조 선생님에게 재고 손실 처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심각했다. 이 과장님 역시 진지하고도 상당히 예의 바른 태도로 노대차 선생님과 이야기 중인데 수출 담당 10년 째로서 한 과장님과 입사 동기라고 했다. 그리고 연 과장님 역시 결산 담당 10년 차로 나독립 선생님과 이번 연결 이슈와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이들 과장님 셋이 위드 회계부서를 거쳐간 많은 신입사원들 중 퇴사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삼총사로서 과장을 단지도 벌써 3년째라고 했다. 그 위로 두 명의 회계 차장님과 한 명의 회계부장님, 그리고 재무이사님이 있다. 두 분 회계 차장님은 회계부장님의 정년퇴직까지는 기다려야 둘 중 한 분이 부장이 될 거고, 그 빈 회계 차장의 한 자리는 삼총사 과장님들 중 한 분이 되겠지? 이 분들 중간감사 술자리에서 뵈었을 때는 회의실에서와는 다르게 꼭 친구 같아 보이던데... 분위기 좀 묘해지겠는데?
박직새 전무님이 위드 재무이사님의 에스코트로 회의실에 들어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회사 담당자들과 인사 나눈 후 오랜만에 만난 우리를 보고는 반가워하시며 안부인사를 주셨다. 두 분 이사님들은 회의실 안의 한쪽 테이블에 앉으셨고, 삼총사 과장님들 중 가장 위트 있고 가장 몸놀림이 가벼운 한 과장님이 회의실 한쪽에 준비되어 있는 간이 탕비실에서 민첩하게 커피를 준비하여 이사님들에게 내왔다. 다시 과장님들과 우리 법인 선생님들은 소곤소곤 자신들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이제 두 분 이사님의 대화에 관심이 갔다. 박직새 전무님은 세무팀장님이신 손금산 선생님과 함께 우리 본부의 파트너 중 한 분이자 우리 본부를 대표하고 있다. 우리 회계법인의 대표이사는 따로 있지만 각 본부별로 이익을 달리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테면 내 월급은 두 분의 파트너 즉 박직새 전무님과 손금산 선생님에게 결정 권한이 있으며, 특히 박직새 전무님의 영업 능력에 따라 우리 본부의 크기가 결정된다. 손금산 선생님이 세무 실무를 직접 하시는 것과는 달리 박직새 전무님은 영업에 집중하시고 우리 감사 실무에는 크게 개입하지는 않는다. 적정이 아닌 감사의견이 거론되는 경우에는 다르지만. 그래서 박직새 전무님은 주로 사무실이 아닌 곳에 계시며 듣기로는 프로 급의 골프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작년 회계법인 골프대회에서도 1등을 했을 정도라고 하니. 박직새 전무님이 주로 골프와 대외 활동을 통한 영업에 집중하시기 때문에 감사 실무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은 심의구 이사님이 맡고 계신다. 박직새 전무님은 위드의 재무이사님에게 등산 근황을 물으셨고, 위드 이사님은 박직새 전무님에게 골프 근황에 대해 물으셨다. 그리고는 위드 대표님의 바둑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위드 대표님에게 박직새 전무님은 30년 지기이며, 재무이사님은 20년 된 오른 팔이다. 박직새 전무님과 위드 재무이사님은 한 배를 탄 것 같기도, 경쟁관계인 것 같기도 한편으로는 삼각관계에 있는 것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박직새 전무님은 우리들을 향해 수고하라는 끝인사를 하시고는 대표이사 실로 안내받아 나가셨다.
나독립 선생님이 중간감사 때 할당한 계정과목을 토대로 어싸인을 마쳤는지 외쳤다.
“회계하셨으니 감사합시다.”
이에 심의구 이사님이 웃었다. 심의구 이사님은 5일 내내 자리를 지킬 예정이라고 했다. 5일 동안 자리를 지키시는 했으나 전화받는 일로 많이 바쁘셨다. 나는 중간감사 때와 마찬가지로 유형자산 계정을 맡았는데 그때 알게 된 것이 위드가 의류 제조, 판매 및 수출 기업이기는 하지만 제조는 모두 해외 자회사가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내 본사는 디자인 등의 제작 과정을 담당하고 있지만 실제 제조는 해외 공장에서 이루어지고, 그 제작 의뢰한 물량을 수입하여 국내 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해외 유명 브랜드로부터 사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수출 매출도 발생하고 있었다. 제조 공장은 해외에 있기 때문에 의류 제조와 관련된 유형자산 또한 여기 국내에 있지 않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해외 자회사가 그 제조 관련 유형자산을 가지고 있으며, 그 해외 자회사는 국내에 있는 위드가 국내 수입을 위해 매입한 상품, 그리고 유상사급[2]으로 위드가 제공한 원자재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작년 회사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유상사급에 대한 회계처리에 대한 지적을 받은 바 있었다고 한다. 유상사급은 경우에 따라 두 가지로 회계처리될 수 있는데 (1) 원재료 소유에 대한 위험과 보상이 대부분 임가공업체로 이전된다면 발주회사 입장에서는 원재료 구매 대행으로 보아 원재료 구매 및 판매 차액을 영업외수익으로 계상하여야 하며, (2)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상사급의 회계처리와 동일하게 원재료 매입 시 재고자산 입고로 계상한 후 원재료 이전과 관련된 회계처리는 하지 않고, 제품을 입고받을 때 가공비를 재고자산 입고로 계상하도록 되어 있다. 위드는 위 두 가지 회계처리가 아닌 원재료 이전 시 원재료 판매대금을 매출로 인식한 후 가공 완료 후 입고받을 때에 원재료 가격과 가공비를 가산한 금액을 매출원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매출과 매출원가가 과대 계상되었던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위드가 방글라데시 회사로 원재료를 이전한 후에도 원재료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계약의 내용 상 소유에 대한 위험을 여전히 부담하고 있으므로 위드는 (2)의 회계처리를 했어야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오류를 수정하는 회계처리를 반영하는 대소동이 있었다는 것을 원대조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아 관련 문건을 며칠 동안이나 들여다본 후에야 겨우 이해가 되었다. 따라서 원재료가 실물 기준으로는 위드 내에 존재하지 않지만 방글라데시 법인 내에 있는 원재료가 위드 재무제표 상 원재료 즉, 재고자산으로 표시되므로 외부감사인인 우리는 방글라데시의 원재료에 대한 재고 실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올 1월에 나독립 선생님과 노대차 선생님이 재고 실사 차 방글라데시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회계사들이 해외 출장 가는 곳은 순 해외 오지 공장이라고 나독립 선생님이 출장 전 나에게 그 괴로움에 대해 토로했다. 나는 이번에 백화점 재고 실사에만 다녀왔지만 언젠가는 해외 출장을 가보겠다는 단 꿈을 꾸고 있는데 주 대리님이 부르는 소리에 그 꿈에서 깨었다.
“기동차 회계사님, 유형자산 자료 요청하신 거 여기 들어 있습니다. 전기 감사 때 노대차 회계사님이 유형자산 맡으셨을 때 잔존가액 있는 플로터 등의 디자인 장비들의 진부화에 대해 지적하셔서 그 이후 작년 내내 디자인 장비들의 순공정가치[3]와 사용가치[4]를 구해서 자료 넣어놨습니다”.
이게 바로 중급회계 과목에서 배운 유형자산 손상차손 챕터구나. 주 대리님이 넣어 놓은 자료를 보며 그 방대한 자료의 일목요연함과 본 적 없었던 엑셀 함수에 놀라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주 대리님이 갑자기 내게 질문을 했다.
“회계사님, 할인율[5]이요. 왁[6]이 세후 할인율인가요? 세전 할인율인가요? 세후 할인율이면 세후 현금흐름으로 바꿔서 할인해야 하잖아요? 제가 이번에 처음 해보는 거라 제대로 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음… 밑도 끝도 없이 훅 들어오니 뇌 속에 저장된 어느 분야를 끄집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손상차손, 손상차손, 손상차손. 사용가치를 구할 때 현금흐름 할인법을 쓰기 때문에 갑자기 할인율 얘기를 꺼내신 거구나. 할인율, 할인율. 어떻게 구했던가? 나는 이미 정신을 놓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몰랐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음… 그게… 저 일단 CAPM[7] 이용해서 자기자본비용 구하고, 가중평균자본비용 구하신 거죠?”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CAPM 공식을 더듬어보자. ‘(1-t)’가 있었는데… 그럼 세후?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가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과 회사 분들을 의식하니 얼굴이 더욱 뜨거워졌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모면하자.
“세후 할인율이니까 세후 현금흐름을 할인해야죠.”
“아, 네. 그렇게 했어요.”
휴, 주 대리님이 회의실 밖으로 나가고 한 숨 돌리고 주 대리님의 작업 파일을 검토했다고 하고 싶지만 현금흐름 할인법을 예제 속이 아닌 실물에서 마주하자 눈과 머리가 핑 돌았다. 주 대리님은 작년 중간감사 회식 자리에서도 느꼈지만 회식 자리에서조차 예의 바른 자세를 놓지 않았으며, 만들어 온 자료를 보니 똘똘하기까지 한 것 같다. 과연 연 과장님이 찜 할 만하다. 연 과장님은 주 대리님을 결산 회계 주니어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연 과장님 닮아 참 스마트하다. 조심성도 많고. 그때 원대조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기동차 선생님, 모를 땐 모른다고 하십시오. 아는 척 대답했다가 큰 일 나는 수가 있습니다. 솔직하게 지금은 모른다고 얘기하고 검토 후에 다시 얘기 나누자고 하면 됩니다. 회계사라고 해서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공부하면 알 능력은 있잖아요. 그래도 회계산데.”
부끄러움에 땅 속으로 꺼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똘똘한 과장님들과 주 대리님에게 5일 연속으로 자료 폭탄 맞고, 촌철살인의 예리한 질문 공격에 지친 것도 모자라 우리는 저녁이면 회식으로 평균 10시까지 함께 있어야 했다. 이 분들 체력과 정신력이 왜 이리 강하지? 궁금해 하던 차에 회식 자리에서 그 해답을 얻었다. 우리가 와서 회식을 한 것이 아니라 술 좋아하는 부장님 덕분에 거의 매일 회식이 있다시피 해 부장님 이하의 회계 부서 팀원들이 2~3명을 한 조로 당번을 정해서 회식 자리에 참석한다고 했다. 또한 등산을 좋아하는 재무이사님 덕분에 주중의 격무와 잦은 회식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아침에 산도 타야 한다고 한탄하는 한 과장님의 말에 나는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 분들 여러 가지 면에서 보통 실력자가 아닌 것 같군. 그 경이로움은 연결회계[8]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나는 수험생 시절 비용과 효익의 법칙[9]에 따라 고급회계[10]를 깔끔하게 포기한 바 있다. 그것이 내가 동차[11]한 비결이라고나 할까? 그런 나로서는 연 과장님과 원대조 선생님이 나누는 연결 이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위드 연결의 어려움은 IT 대기업도 두 손들고 나가떨어지게 했다고 한다. 위드 자체도 의류 제조 및 수출입을 하는 대규모 회사이기도 하지만 해외 제조업체 외에도 국내에 업종이 다양한 자회사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투자 방식이 직접 투자[12]뿐만 아니라 2차, 3차 간접 투자[13]에 순환 출자[14]까지 마구 얽힌 형국이라 IT 대기업이 자신들이 개발한 연결 프로그램으로는 위드의 이 연결 고리를 풀어내지 못해 결국 커스터마이징 실패로 계약이 무산되었고, 그 후로 연 과장님이 엑셀로 이 모든 연결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드의 연결 감사는 원대조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원대조 선생님도 연결의 신이 되어 우리 법인 다른 본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연결 이슈에 자문으로 불려 간다는 소문을 들었다. 원대조 선생님, 역시 에이스야. 에이스.
[1] 감사절차 수행 전 회사 담당자와 한 자리에 모여 인사도 나누고, 그간의 회사 변화나 이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로 일종의 감사의 시작을 알린다.
[2] 가공을 외주 줄 때 원청업체가 원재료를 사서 하청업체에게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거래를 유상사급이라고 한다. 이때 대가를 받지 않는 거래는 무상사급이라고 한다.
[3] 공정가치에서 처분 부대 비용을 차감한 금액을 말하며, 공정가치란 쉽게 표현하면 시장가격을 말한다.
[4] 해당 자산으로부터 창출될 것으로 기대되는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말한다.
[5]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의 가치로 만들어주기 위해 사용된다. 예를 들면, 5년 후의 100원은 현재가치로는 100원보다 낮을 것이라는 것을 관념적으로 알 수 있다. 그 할인된 금액을 산정하기 위한 수치가 재무학과 회계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할인율은 가중평균자본비용이다.
[6] WACC로서 가중 평균 자본비용을 말한다.
[7] 재무학에서 자기자본비용을 산출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자본자산 가격 결정 모형을 말한다.
[8] 기업(이하 지배기업)이 다른 기업(이하 종속기업)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또는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해당 종속기업을 해당 지배기업과 같은 실체로 간주하여 지배기업과 종속기업의 재무제표를 합하여 표시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것을 연결 회계라고 하고 이 작업을 연결한다고 한다.
[9] 비용과 효익을 분석하여 비용 대비 효익이 크지 않다면 포기한다는 기동차만의 법칙이다.
[10] 회계학에서는 재무회계를 난이도에 따라 중급회계와 고급회계로 구분하는데 고급회계에는 연결회계, 환율변동회계, 파생상품 회계가 포함된다. 나머지는 모두 중급회계에 포함된다.
[11] 같은 해에 공인회계사 1차 시험과 2차 시험을 동시에 합격한 것을 말한다.
[12] 회사가 다른 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13] 회사가 투자한 피투자회사가 또 다른 회사에 투자한 경우 최초 투자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2차 간접 투자에 해당한다. 이런 식으로 3차, 4차, 5차 등 끝없이 계속될 수 있다.
[14] 2차, 3차, 4차 등의 간접 투자로 인한 피투자회사가 최초 투자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는 경우 순환 출자의 상태가 된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