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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혹박 Oct 22. 2021

(한국 최초 회계 감사 소설) 회계하고 감사하라

6화. 2010년 2월 8일~9일, 밸류투자조합 3호


회계하고 감사하라

(수습 회계사의 이야기)




6화. 2010년 2월 8일~9일, 밸류투자조합 3호    



“대차가 안 맞잖아요. 대차가.” 

지난번 감사 나갔다 온 인서울에듀의 노대차 선생님이 나를 향해 고함쳤다. 노대차 선생님이 이렇게 화가 난 건 처음 봤다. 요청받은 게 많아서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오전에 출근했는데 원대조 선생님과 노대차 선생님이 이미 와 있었다. 엑셀 재무제표에서 대차차액[1]이 1이 떠 있었다. 회사에서 최초로 받은 재무제표 그러니까 감사 전 재무제표와 수정사항을 반영한 후의 재무제표를 한 표로 작성해서 회사로부터 수취한 최종 재무제표에 대한 날인 본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내가 만든 엑셀 재무제표와 회사에서 수취한 최종 재무제표의 계정과목 별 숫자를 하나하나 대사해 보았으나 숫자가 다 맞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차대[2]가 안 맞느냐 말이다. 반나절이 지나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원대조 선생님이 끙끙대고 있는 나에게로 왔다. 

“회사에서 받은 재무제표와 숫자 대조한 거죠? 그런데도 대차차액이 떴단 말이에요? 그것도 1? 그럴 땐 아마 숨겨진 소수점 때문일 겁니다.” 

원대조 선생님이 엑셀 시트 위쪽의 소수점 표시 아이콘을 한 번, 두 번, 세 번 누르니 재무제표의 숫자들 뒤로 소수들이 한 자리, 두 자리, 세 자리 보이기 시작했다. 8로 끝나는 것으로 보였던 숫자가 사실은 7.89999999…이었고, 그렇게 숨은 소수 자리가 있었던 숫자가 몇 개 눈에 보였다. 원대조 선생님은 소수가 ‘0’이 아닌 숫자들이 있는 셀에 커서를 두고 말했다.

 “여기 이 소수와 또 여기 이 소수가 더해져 ‘1’이 커지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수정사항 반영하는 과정에서 수식이 걸려있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이럴 땐 수정사항은 수식이 아닌 값만 가져오거나 아니면 round 함수를 이용해 소수점 이하의 숫자를 버리거나 가져와 표시된 수와 실제 수가 일치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뭘로 하든 그건 선생님 편할 대로 하십쇼.” 

이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와, 내가 1 때문에 쩔쩔매고 하루의 반을 날려 버린 거야? 원대조 선생님이었다면 1분이면 해결되었을 것을… 고생 끝에 한 수 배우면서 미션 완료. 




“대차가 안 맞잖아. 대차가.” 

어느새 출근한 김장수 선생님에게 노대차 선생님이 소리쳤다. 우리의 친절했던 사수 선생님이 아무래도 대차차액에 많이 민감하신 것 같다. 김장수 선생님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김장수 선생님 자리로 슬쩍 가보았다. 

“샘, 대차가 안 맞대요?” 

아는 척하며 물으면서 보니 김장수 선생님 손에 문서가 들려 있었다. 그건 ‘경진정공 주식회사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라고 프린트된 A4 크기의 꽤 두꺼운 종이 더미였다. 김장수 선생님은 풋팅이라는 걸 했다고 했다. 

“풋팅? 그게 뭐예요?” 

김장수 선생님은 설명하기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감사보고서 상의 모든 숫자가 맞게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재무제표가 회사에서 수취한 날인 재무제표와 맞는지 대사하고, 재무제표 숫자와 주석의 숫자가 서로 일치하는지 대사하고, 참고로 그 주석에 포함된 가로, 세로 합계가 맞게 들어갔는지 계산 검증하는 거래요. 근데 나 다 한 것 같은데 어쩌다가 재무제표에서 대차가 안 맞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1원 때문에 이러고 있다니…” 

김장수 선생님은 다시 풋팅을 하겠다는 듯이 계산기를 손에 쥐었다.

“감사보고서 작성은 엑셀로 하는 게 아닌가요? 아니면 워드로?” 

내가 물었다.

“DART[3]에 공시하기 위해서는 전자문서편집기라는 걸 이용해야 한대요. 엑셀로 만들어진 최종 재무제표를 전자문서편집기에 붙여 넣으라고 해서 제가 붙여 넣었어요.”

 김장수 선생님이 내가 빨리 가주기를 바라는 얼굴로 답했다. 

“아, 그럼 애초에 샘이 가지고 있는 그 엑셀 재무제표에 소수점 이하의 숫자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요. 엑셀 재무제표 지금 가지고 있죠?” 

나는 원대조 선생님에게 배운 대로 김장수 선생님에게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 회사의 엑셀 재무제표에도 숨은 소수점 이하의 숫자가 있었고 그걸 처리한 후 감사보고서 숫자와 다시 대사해보니 1원이 차이 나는 계정과목을 찾아냈다. 그리고 다시 차변 합계를 재계산해서 수정해주니 대변 합계와 일치했다. 김장수 선생님은 1원 달라진 계정과목과 관련된 주석을 모두 찾아 수정해야만 했다. 

“우리가 1원 때문에 이렇게 진땀 뺄지 알았어요? 중요성 금액[4] 단계로는 넘어가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말하는 내 마음속에는 난관에 봉착했다가 함께 해결했을 때 생긴다는 그 뭔가 끈끈한 동기애 같은 거랄까 하는 게 조금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독립 선생님은 오전 내내 자리에 없더니 오자마자 탕비실로 직행했던 건지 믹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손에 들고 나에게로 왔다. 주말에는 출근 안 하시나 보다 했다. 금요일 저녁 어딘가로 술자리에 갔다가 만취했었다고 말하는 나독립 선생님의 상태는 말끔하지 못했다. 

“기동차 쌤, 감사조서 폴더 열어서 감사완결조서 철에 있는 리스트 쭉 보고 경진정공 꺼 준비해 봐요. 할 수 있는 데까지 채워서 나 주고.” 

대차차액 1원도 해결했겠다 이제 집에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나독립 선생님의 요청에 서류들을 백업하느라 벌써 저녁이 돼버렸다. 나머지는 내일 해야겠다.   




 그렇게 주말 꼬박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월요일, 오늘은 밸류투자조합3호에 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밸류창업투자회사라고 해야겠다. 밸류창업투자회사는 밸류투자조합3호의 출자자이자, 업무집행조합원이다. 우리는 밸류투자조합3호와 밸류창업투자회사의 감사인이다. 오늘은 나독립 선생님과 나 이렇게 둘이서 밸류투자조합3호를 감사하기 위해 나와 있고, 곧이어 원대조 선생님을 인차지로 하는 노대차 선생님, 김장수 선생님의 감사팀이 밸류창투 감사를 하게 될 것이다. 투자조합의 특성상 대부분의 자산이 투자자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형자산은 아예 없고, 판관비도 조금만 있다. 나독립 선생님이 투자자산 전부를 자신에게 할당했기 때문에 ‘회계하셨으니 감사합시다.’ 하셨지만 나는 예금을 은행조회서와 대사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나독립 선생님은 투자주식 계정들과 관련하여 투자계약서라든가, 피투자회사의 재무제표라든가, 피투자회사의 사업설명서라든가 하는 자료들을 요청해서 보고 있다. 나독립 선생님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습’ 하는 소리를 내며 괴로워하는 것 같아 보인다. 결국 감사 철수 시각이 다가오자 이자수익과 배당수익으로 이루어진 회사 제시 당기순이익 2천만 원이 투자주식감액손실[5] 2건이 반영되어 당기순손실 20억 원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렇게도 되는구나.  





 다음 날 나독립 선생님과 나는 또 다른 감사 필드에서 감사를 하고 있었다. 나독립 선생님의 핸드폰이 울렸고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하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알겠으니 끊고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나독립 선생님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사님, 밸류창투 이 부장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혹시 차다리라는 회계사,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 회계사가 밸류투자조합3호 투자자 모집하는데 브로커였다고 하는데요. 최대출자자가 다판다 물류거든요. 네, 그 상장사요. 밸류창투 대표님이 이미 저희 감사 전 재무제표를 차다리 회계사에게 넘겼고, 차 회계사는 다판다 물류로 넘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 감사 끝나고 이 부장이 수정 후 재무제표를 차 회계사에게 보냈더니 당기순손실 20억 난 거 보고 밸류창투 대표님한테 전화해서 대거리를 한 모양입니다. 밸류창투 대표님도 이 부장을 좀 심하게 몰았나 본데요. 이 부장이 세게 나오네요.” 

이렇게 전말을 얘기한 나독립 선생님은 잠시 듣고 있더니 핸드폰을 탁하고 접었다. 심의구 이사님과 통화한 것일 것이다.




 우리는 그날 저녁 사무실로 들어갔고, 나독립 선생님은 심의구 이사님과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 나누었다. 심의구 이사님은 손실을 좀 줄일 수 있겠냐고 물었다.

 “투자주식 2개 감액한 게 전분데 그럼 감액하지 말고 지나갈까요? 아무리 임의감사[6]라 해도 투자사들이 상장사에, 외감 업체에 다들 그런데…” 

나독립 선생님이 볼멘소리로 답했다. 나독립 선생님의 저항이 거세자 심의구 이사님은 나독립 선생님과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서 나온 나독립 선생님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탁탁 거리며 거칠게 작업을 했다. 그 바람에 사무실에 냉기가 돌았다. 나독립 선생님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원대조, 밸류3호 재무제표 다시 보냈다. 밸류 창투 업무집행수수료 계산하는 데 참고해라.”

그렇게 말하면서 나독립 선생님은 심의구 이사님을 쏘아보았다.




 다음 날, 나와 나독립 선생님은 어제 나갔던 감사 필드에 이틀 째 나와 있다. 또 나독립 선생님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맞는데요.” 

한참을 듣더니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말을 더듬으며 제대로 입도 뻥긋 못하고 있었다.

 “감액을 요구하기는 했는데 회사 측에서 지나치게 보수적인 판단으로 감액을 했기에 다시 조정했을 뿐입니다.” 

나독립 선생님의 계속되는 주장과 변명에는 어떤 설득력도 실려 있지 않았다. 자신의 의도와 의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압에 의해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제3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독립 선생님은 핸드폰을 탁 접어 끊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 다시 핸드폰을 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말했다.

 “방금 정도회계법인에서 전화 왔었는데요, 다판다 물류 감사 인차지한테서요. 재무제표 숫자가 왜 바뀌었냐고 묻대요. 처음엔 이익 2천에서 손실 20억 원으로 바뀌더니 다시 손실 10억으로 줄었다며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근데 이미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다 알고 있대요. 자기네가 당기순손실 20억짜리 봤을 때 지분법 손실[7] 8억 반영하여야 한다고 했더니 회사 담당자가 중요성 금액 얼마까지 허용되냐 물어서 4억이라고 했다고.  그래서 지금 이거 10억으로 낮춰준 거 아니냐고. 이거 너무 뻔하잖아요. 창피해 죽겠네.”

‘그래서 너는 뭐라 답했노?’ 라고 심의구 이사님이 질문한 것 같았다.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판단한 것 같아서 좀 조정했다고 했습니다. 근데 우리가 조정해서 당기순손실 10억으로 보고한다 해도 그쪽에서는 손실 20억 버전으로 가겠답니다. 자기네 법인 자체적으로 보수적으로 가겠답니다.”

나독립 선생님은 끝인사도 없이 탁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독립 선생님의 분노가 느껴졌다. 전후 사정 상 수치와 분노가 섞여 있을 것이다. 




 다른 회사로 인한 숨 막히는 상황 때문에 이 감사 필드에서의 감사가 어찌 끝났는지도 모르게 끝났고, 회사 직원분들과 함께 회식 자리로 옮겼다. 나독립 선생님은 평소보다 더 시끄러운 목소리와 과장된 웃음소리로 많이 취했다. 그리고 슬퍼 보였다. 회계사란 무엇인가? 감사인이란 무엇인가? 1원과 씨름하고, 외압으로 인해 자괴감에 빠지고, 또 외압에의 굴복 후에 맛보게 되는 수치감까지. 그 모든 걸 겪게 될 수도 있는 그런 자리구나, 회계사란. 진로의 날에 중학생 친구들에게 난 어디까지 소개해야 할까?






[1] 차변 합계와 대변 합계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차이 금액을 말한다. 


[2] 차변과 대변의 줄임말이다. 회계의 원리인 복식 부기에서의 기본 개념이므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계원리를 공부하면 된다.


[3]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을 말한다.


[4] 감사 시 발견한 오류로 인한 과대 계상액 또는 과소 계상액이 중요성 금액에 미달하는 경우 즉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이 금액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 감사보고서의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5] 투자한 금액보다 회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이 현저하게 낮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 그 투자금액을 감액하고 그 금액을 손익계산서 상 손실로 계상한다. 


[6] 외감법 상 감사가 아닌 경우 임의감사라고 칭한다.


[7] 회사가 다른 회사에 출자한 지분율이 20% 이상이 되면, 피투자회사의 손익을 지분만큼 투자회사의 손익에 반영하는 것을 지분법의 적용이라고 한다. 이 경우와 같이 밸류투자조합 3호의 손실 20억에 지분율 40%를 적용하면 손실 8억 원이 지분법손실이라는 계정으로 투자회사의 손익계산서에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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