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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울 Feb 25. 2021

낯선 거리 (2/10)

  지상에 있는 지하철 동작역 플랫폼에 서 있으면 숨이 확 트였는데 오늘은 달랐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국립묘지 뒷산의 울창한 녹음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출근길 피크 타임이 지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젊은 남녀가 마스크를 쓴 채로 키스했다. 키스도 아닌 키스였지만 두 사람에겐 간절한 사랑의 표시인 듯했다. 코로나19의 시대에 마스크를 쓰는 건 귀찮기는 해도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전거리 2미터를 유지하기란 의외로 어려웠다. 너무 멀면 외로웠고 너무 가까우면 불편했다. 어느 심리학 전문가에 따르면, 서로 편안하고 적당한 거리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족 간에는 삼십 센티, 친구와는 육십 센티, 직장 동료와는 백이십 센티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서로 상처받지 않는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굶지는 않았지만 용돈은 한 푼도 없었기에 간식으로 제공되던 빵과 우유를 신청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생 시절 내 별명은 땅콩이었고, 키 이야기는 상처로 남았다. 친구들이 땅콩이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부르르 떨었다. 땅에서 머리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하늘에서 머리까지의 거리가 ‘키’라고 새롭게 정의했고, 내 키가 제일 크다고 땅콩이 아니라 킹콩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나만의 일방적 감정표현은 오해와 상처를 낳았다. 북한산 자락의 오래된 한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마당 한 귀퉁이에 닭장이 있었고 그 옆에서 토끼도 키웠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토끼장에 새끼가 다섯 마리나 태어나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귀여워서 새끼들을 한참 쓰다듬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기 전 토끼장을 둘러봤다. 새끼들이 모두 널브러져 있었다. 토끼가 새끼를 낳으면 예민해져 물어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고교시절 같은 반 아이들과의 사이에서도 거리 조절이 쉽지 않았다. 저쪽에서 다가오면 내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고, 내가 갑자기 다가가면 그쪽이 당황한 듯 멈칫거리다 멀어졌다. 편안하고 적당한 거리를 느끼고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기도 했다. 대신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춤 실력을 갈고닦았다. 운동회나 소풍의 장기자랑 시간에는 무조건 앞으로 튀어나가 당시 유행했던 고고나 디스코를 추었다. 그러다가 쓰리고 친구들을 만났다. 


  쓰리고 안에는 나름의 역할과 체계가 있었다. 키가 작고 눈치가 빨랐던 나는 교육청 합동단속반이나 학생주임이 나와 있는지 망을 보는 척후병이었다. 짧고 높은 휘파람 소리는 공습경보였고 그런 날 고고장 입구는 썰렁했다. 말주변이 좋고 노래와 춤에 소질이 있었던 남진은 전투병이었다. 겉보기엔 조용한 모범생 스타일이지만 능구렁이처럼 의뭉스러웠던 정석은 고고장에 필요한 가발과 의상을 챙기는 보급병이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누나들을 발견한 척후병이 신호를 보내면, 전투병이 접근하여 분위기를 잡아 놓고, 보급병이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결산해보면 나랑 남진은 늘 헛똑똑이였고 실속은 정석이 챙겼다. 정석이 제일 먼저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 3개월 만에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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