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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울 Feb 26. 2021

낯선 거리 (3/10)

  이번 정차 역은 종각역이라는 지하철 안내방송을 듣고 내릴 준비를 했다. 청계천 방향 출구로 걸어 나왔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종각 네거리와 청계천 주변은 무성 영화와 흑백텔레비전의 시대로 돌아가 버렸다. 지하철 종각역을 오르내리는 직장인들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예외 없이 흰색이나 검정색 마스크가 하나씩 걸려 있었다. 사늘한 거리에 무수한 마스크들이 마치 다도해의 섬처럼 떠 있었으며, 바람에 날리는 싸락눈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무섭고 불안해, 라는 무언의 메시지는 크고 분명해서 다른 어떠한 말보다 알아듣기 쉬웠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은 휴대폰 속으로 들어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고 손에서 놓지 못하는 휴대폰과 나의 거리는 가깝고도 멀어서,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봄에서 여름으로 코로나의 시절이 길어짐에 따라 종각 네거리는 점점 더 한산해졌다. 식당의 손님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삼 분의 일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고,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식당의 지출을 크게 줄여줄 수 있는 것은 임대료였다. 코로나 이전에는 임대료가 전체 지출의 사 분의 일 정도를 차지했지만, 인건비와 재료비가 줄어든 지금은 지출 총액의 사십 퍼센트 이상이었다. 더군다나 일곱 달 가까이 적자를 보고 있었으므로 지출 비중이 가장 높은 임대료야말로 줄여야 할 필요성이 가장 크고 절실했다. 코로나가 심각해진 지난 2월부터 전화로 서너 차례 임대료 인하나 연기에 대해 문의했으나 아직 감감무소식이었다. 가게로 가기 전에 건물을 관리하는 회사에 들러 어떤 답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무교동에 있는 임대 사무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 과장을 찾았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비가 새는 통에 여러 번 찾아가 그와 다툰 적이 있었다.


  “중도 해지는 석 달 전에 서면으로 알려주셔야 하고, 아니면 석 달 치 임대료를 내야 합니다. 원상 복구에 들어가는 비용이 천만 원 이상이라는 것도 아시죠?” 

  내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지레짐작하고 김 과장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나 말고도 여러 가게에서 그 얘기를 하고 돌아간 모양이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변명하듯 말했다.

  “문 닫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인하해주면 정부에서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기사를 보고 우리도 인하해주나 알아보러 왔어요.”

  “우리 건물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 외국계 투자은행으로 넘어갔다가 재작년 초에 다시 국내 부동산 펀드로 넘어간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말 통하는 국내 회사랑 임대료 얘기 좀 해달라고요.”

  “정반대예요. 펀드의 관심사는 오로지 수익률이라 임차인이 나가든지, 임대료를 내든지, 둘 중의 하나지 건물주가 임대료를 내리는 일은 없습니다!” 


  나도 은행원 생활을 해봐서 세상 물정을 좀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요즘 청년들의 희망 1순위가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고 했다. 그동안 임대료 낸 걸 합치면 구파발 북한산 자락의 전망 좋은 아파트를 한 채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푸념만 속으로 곱씹으며 터덕터덕 식당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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