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울 Feb 27. 2021

낯선 거리 (4/10)

  대학을 졸업하던 봄에 나는 B은행에 들어갔다. B은행 무교동지점으로 첫 출근을 하던 날 아침, 평소처럼 만두를 빚고 있던 어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그 바람에 이마의 깊은 주름이 드러났다. 어머니의 주름이 나를 키웠다는 걸 식당이 어려워진 요즘에야 깨달았다. 입행 삼 년 후에 결혼했고 결혼 이년 후에 준수가 태어났다. 준수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해에 행원에서 대리로 승진했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로울 수는 없었다. 준수가 유치원에 들어갔던 그해 겨울, 외환위기가 터졌고 이듬해 B은행은 A은행에 합병되었다. ‘따듯한 가슴, 냉철한 머리’를 강조했던 원로 경제학자의 원론과 달리 현실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따듯함은 없었다. 경쟁에서 밀려난 B은행의 직원들은 전쟁에서 패한 포로들처럼 처리되었다. 구조조정의 아픔은 오로지 피합병된 은행원들의 몫이었다. 다수가 나갔고 소수가 남았지만 남아 있는 소수도 여전히 미생이었다. 난 평화로울 때는 소수파였고 난세에는 다수파에 속했다. 희망퇴직을 가장한 정리해고의 희생양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팔 년간 고층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마치 죄인처럼 빌딩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왔던 1998년 5월의 마지막 오후, 하늘은 맑았고 봄볕은 따스했지만 내 마음엔 온종일 차갑고 어두운 비가 내렸다.


  그날 저녁 무교동 낙지집에 쓰리고 멤버들이 모였다. 대학 졸업 후 식자재 납품을 전문으로 하는 중소기업 S식품에 들어갔던 정석은 당시 대리에서 과장으로 막 승진해 있었고, 남진은 삼수 끝에 서울시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구청 위생과에서 일하고 있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았는데 나를 바라보는 두 녀석의 표정이 영 불편했다. 얼굴이 붉어진 남진이 예의 그 썰렁한 농담을 했다.

  “바람처럼 빨랐던 구파발 척후병이 위기에 빠졌지만, 다시 기회를 잡을 거야!”


  정석이 재계 3위 D그룹이 망할 줄 그 누가 알았겠냐며 B은행은 죄가 없고 나 또한 잘못이 없다며 힘내라고 어깨를 쳤다. 술기운에 걱정 마, 나 아직 안 죽었어!, 라며 호기를 부렸다. 식품회사 영업 담당이라 거래처를 돌아다니다 보면 외환위기 여파로 시내의 목 좋은 빌딩에 문 닫은 식당들이 많다며, 맡아서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정석이 물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위생 점검을 하러 나가는 남진도 요식업계 사정을 좀 안다면서 거들었다. 엄마의 음식 솜씨까지 들먹이며, 만두가 진짜 맛있었다고 남진이 입맛까지 다셨다. 그 얘기를 들으니 만두집 하느라 고생만 하다 위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속이 쓰리고 허리가 쑤신다며 앓는 소리를 하면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쉬엄쉬엄하시라는 말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음식은 정성이라고 꾀를 내면 손님들은 금방 알아챈다고 했다. 그 깐깐한 성격이 속병을 불렀을 것이다. 평생을 찬물에 손 담그며 손님 비위까지 맞추다가 세상을 떴는데 그 일을 나보고 하라고? 그 일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날 저녁에 쓰리고 멤버들은 만취했고 나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전 03화 낯선 거리 (3/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