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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울 Feb 28. 2021

낯선 거리 (5/10)

  정석의 소개로 전은빌딩 지하, 일식집이 문을 닫은 자리에 분식집을 열었다. 명예퇴직 위로금이 조금 있었고 은행원 출신이라는 것도 개업 자금을 조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위치가 좋았다. 청계천 옆 도로변이었고 건물 1층을 통하지 않고 도로에서 지하상가로 바로 연결되는 계단이 따로 있었다. 건물 입구에서 청계천 옆의 인도로 이어지는 건널목이 있어서 간판의 노출도 좋았다. 게다가 지하철 종각역과 을지로입구역, 시청역이 각각 십 분 거리여서 최고의 역세권이었다. 1층에 입주해 있던 전북은행 서울지점에 직원들이 이십여 명이나 근무하고 있었고, 지하상가의 유일한 분식집이었기에 ‘전은분식 Since 1998’로 이름을 지었다. 백 년 이상 살아남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담았다. 전 직장 근처에서 분식집을 한다는 게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몸이 약한 아내와 어린 준수를 생각하면 그런 기분은 사치에 불과했다. 직장인들이 짧은 점심시간에 간단히 먹고 복귀할 수 있는 메뉴로 구성했다. 김밥, 떡볶이, 순대, 만두 등 서빙하기 좋고 먹기 편하고 회전율이 높은 메뉴들이었다. 개업 당시에는 모든 메뉴가 삼천 원을 넘지 않아서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식자재는 정석을 통해서 S식품에서 공급받았다. 젊은 손님들은 분식을 먹고 일어나면 금세 배가 고팠으므로 카운터 옆에 단팥빵과 바나나 우유를 진열해 놓았다. 빵과 우유를 추가로 계산하는 손님들이 의외로 많았다. 뭔가 독특한 메뉴가 있어야 입소문이 난다는 남진의 조언에 따라 시금치를 갈아 넣은 초록색 면을 뽑아 ‘시금치 우동’이라 이름을 붙였다. 몸에 좋은 양파를 듬뿍 볶아서 올린 ‘양파 볶음밥’도 추가했다. 건강 트렌드에 맞아떨어져 둘 다 인기가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만두집에서 일손을 거들었던 누나가 직접 빚어서 공급해준 만두 3종(고기․김치․군만두) 세트도 제법 잘 팔렸다. 옛날 B은행의 입행 동기들도 가끔 들락거리면서 매상을 올려주었다. 정석이가 ‘맛․푸․싸’(맛있고, 푸짐하고, 싸게)로 대박이 난 어느 칼국수집을 알려줘서 직접 가 먹어보기도 했다. 전은분식 메뉴는 뭐든 맛있고 푸짐하다는 소문이 나도록 단맛과 비주얼에 신경을 썼고 접시 가득 담아서 내놓았다.


  개업 초기에는 라면 팔아서 벤츠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대학 동창들 사이에 퍼졌다. 벤츠는 아니었지만 국산 고급차를 뽑았을 정도로 잘 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식당이라는 게 경기를 많이 타는 장사라서 무탈하게 넘어가는 해가 없었다. 서울시내 한복판의 사무용 건물이라 주5일 근무가 시작되면서 토요일 매상이 없어져 버렸다. 직원들 월급을 깎을 수는 없었기에 그만큼 내 수입이 줄었다. 1인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는 사업장은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을 의무화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추가된 보험료만큼 내 수입이 또 줄었다. 아내도 점심시간에 나와서 거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인 에코 세대의 입맛이 서구화되면서 ‘김떡순’(김밥, 떡볶이, 순대)을 주된 메뉴로 하는 분식집의 미래는 내리막길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최저임금 인상률이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껑충 뛰었다. 직원 두 명의 급여와 보험료가 오른 만큼 내 수입이 더 줄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불경기의 와중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최저임금 충격이 한겨울 강바람이었다면 코로나는 한여름 태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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