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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울 Mar 02. 2021

낯선 거리 (7/10)

  경찰서 유치장의 철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준수는 나오지 않고 담당 형사만 철제 책상 건너편으로 와서 앉았다. 엄마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출근하신 분이라 자신이 사라져도 아빠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실 거라며 준수가 면회를 거부했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와 준수의 거리는 몇 센티였을까? 나는 삼십 센티라고 생각한 거리가 준수에겐 일 미터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했던 어머니처럼 나 역시 생활비, 용돈, 학원비면 다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돈이 자식과 나와의 거리까지 줄여주진 못했다. 준수는 재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아직도 취준생이다. 요즘 하고 다니는 꼴이 좀 이상하기는 했다. 평소와 달리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왔다. 코로나의 유행으로 집 근처의 도서관과 독서실이 문을 닫아 요즘은 PC방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PC방이 코로나에 더 취약하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다 큰 녀석이라고 생각해 내버려 뒀다.     


  형사가 건네주는 ‘피의자 이준수 진술서’를 받아서 읽었다. 준수는 몇 달 전 홍대 앞에서 여자 친구와 만났다. 마스크 십 만장을 구할 수 있냐고 여자 친구가 물었고, 준수는 가능하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잘 다뤄 게임동호회 회장, 해커스 클럽 회장을 했는데 중국인 유학생들이 중국에 보낼 마스크를 많이 수집하고 있다는 걸 알고 거길 털기로 했다. 해킹을 통해 유학생들의 마스크 주문이 여자 친구의 집으로 배달되도록 조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매크로를 돌려서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물량을 최대한 긁어모았다. 10만 장을 넘긴 후에 남은 물량은 동네 맘카페에 올린 후 아파트 주차장에서 몰래 팔았다. 휴대폰, 카드, 인터넷에 기록이 남았고 시시티브이에도 찍혔다. 프라이버시가 없다고 할 정도로 동선 파악이 쉬운 한국에선 바이러스조차도 숨을 곳이 없다고 하는데, 준수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진술서를 끝까지 읽고 나자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담당 형사에게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혐의 사실을 다 인정했고 초범이고 신분과 거주지가 확실하니, 변호사를 잘 구하면 구속은 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잘 부탁드린다고 한 번 더 머리를 조아리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온몸이 쑤시고 기운도 없었다.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식당에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분식집은 저녁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에 홀 담당에게 전화로 부탁했다. 5층 아파트까지 걸어서 올라가는데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거실 탁자 옆 어른 키만 한 책장의 중간쯤에서 아내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준수는 당신처럼 착해, 한 번 실수한 거니까 잘 달래줘, 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유난히도 준수를 아꼈던 아내는 일 년 남짓 췌장암으로 고생하다 작년 겨울, 내 곁을 떠났다. 암을 발견하기 전 청계산 아래 주말농장에서 함께 지냈던 두어 달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져버려 모자를 쓰고 있던 아내가 내 손을 붙잡고, 준수를 부탁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와 나의 거리는 몇 센티였을까? 나는 당연히 아들보다 아내랑 더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아들이랑 더 가까웠다. 친구들에겐 자주 내어주던 어깨를 정작 아내에겐 내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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