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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울 Mar 04. 2021

낯선 거리 (9/10)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진이 도착했다. 홀 담당 알바에게는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주방으로 들어가 제육볶음과 오뎅탕을 만들었다. 음식과 술을 테이블에 막 올려놓는데 정석이 들어왔다. 출입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밖에서도 잘 보이도록 ‘CLOSE’(영업 종료) 팻말을 출입문 안쪽 손잡이에 걸었다. 앞치마를 걸친 채 테이블로 가 앉았다. 맨 먼저 도착한 남진이 건배하자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쓰리고를 위하여…… 잔을 내려놓더니 남진이 투덜거렸다.

  “오랜만의 회식인데, 분식집이 뭐냐?”

  “가성비 좋고 맛도 좋은데, 뭐 어때?”

  정석이 나를 보며 얼른 대꾸했다. 나는 별말 없이 술만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고, 오늘 한턱을 내야 하는 좋은 일이 뭐냐고 내가 물었다. 정석이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우더니 만년 부장, 딱지 뗄 거 같다고 했다. 명예퇴직 신청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서류를 냈더니, 사장이 연말에 임원으로 승진시켜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단다. 사장 아들을 연말에 부장으로 승진시킬 예정인데 잘 부탁한다는 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일제히 건배를 외쳤다.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비웠다.


  “내가 이사로 승진하면 절반은 전은분식 덕분이다.”

  정석은 원래 실속파였으니까 식자재를 납품하면서 아름아름 잘 챙겼을 것이다. 주방장과 홀 아주머니의 밀린 퇴직금이 S식품의 밀린 식자재 대금보다 우선 변제되어야 한다는 것, 법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남진이 말했다.

  “나, 명퇴 신청했다. 부구청장 승진이 아쉽긴 하지만…….”

  남진은 같은 부서의 여자 후배와 집이 같은 방향이었고 살사동호회도 같이 했다. 너무 친한 거 아냐, 라고 농담하는 직원도 있었다. 남진이 승진을 앞두게 되자 누군가 투서를 올렸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갑자기 분위기가 머쓱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남진이 새로운 얘기를 꺼냈다.

  “내일 구청에서 원산지 표시 점검하러 나간대. 여기는 별일 없지?” 

  나는 마시려던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전에는 네가 빼주지 않았냐고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명퇴 소문이 나서 그런지 후배들이 금방 안면을 바꾸네. 세상인심이 그래.”

  식자재를 중국산으로 바꾼 지 두 달이 지났으나 메뉴판의 원산지는 아직도 국내산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밤 열 시가 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정석과 남진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거리가 조금 더 멀어진 느낌이었다. 식당 문을 잠그기 전에 한 번 더 안을 훑어보았다. 세 평 남짓 비좁은 주방, 손때가 묻은 조리 기구들, 열 개의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 책상 위가 정리가 안 돼 어수선한 카운터, 카운터 바로 위에 걸려 있는 열 시 이십 분을 향하는 시계, 삼면의 유리벽에 어른 키보다 약간 높게 붙어 있는 오래된 메뉴판, 남진한테 부탁해서 억지로 받아낸 ‘착한 가게’와 ‘백년 가게’ 인증서. 특히 ‘콩국수 개시 8,000원’이라고 굵은 매직펜으로 써 붙여놓은 세로글씨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개업할 때 삼천 원이었던 제육덮밥과 콩국수가 지금은 팔천 원이었다. 이십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고 5층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가 열 배 이상 오른 걸 고려하면 음식값이 세 배 남짓 오른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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