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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스더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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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울 Dec 18. 2021

동백꽃

(6/10)

  비행기가 마침내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향해 고도를 낮춰가며 기체를 크게 틀었다. 짐을 찾아 입국장을 벗어나자 키가 작고 단발머리를 한 엠마가 다가왔다. 초등학교 이후 키는 거의 자라지 않은 듯했고 삼십여 년만의 만남이었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봤다. 슐로스도르프로 가는 차 안에서 사고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에스더가 아들의 같은 반 학부모들과 쾰른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갔다. 쇼핑을 마치고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이스탄불 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잠시 후 총소리와 꽝 하는 폭발음이 들리더니 인파가 몰린 거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어이없게도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를 향한 테러였다.


  노벨상을 수상한 바버라 매클린톡은 옥수수 알갱이의 색깔이 불규칙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톡톡 튀는 유전자, 트랜스포존 때문이라고 했다. 같은 동양인의 피부색이 천차만별이듯이 한국인 유전자의 70퍼센트는 북방 계통이고 20퍼센트는 남방 계통이며 나머지 10퍼센트는 기타 지역이었다. 내 머리가 길쭉한 걸 보면 북방 계통이고 짧은 다리는 남방 계통이었다. 유전공학 전문가들은 사람의 지능은 피부색이 아니라 교육과 환경에 좌우된다고 했다. 언제쯤 다름이 인정되는 사회가 올까? 그런 사회가 오기는 할까?


  나는 운전하는 엠마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가는 길에 동백꽃을 구할 수 있을까?”

  “동백꽃은 왜?”

  나는 대답 대신 침묵했다. 엠마가 나를 흘낏 보았다. 에스더네 한옥 마당에 있던 커다란 동백나무가 생각난다고 했다. 나무는 당시 자신의 키보다 컸고, 붉게 핀 동백꽃을 에스더 역시 좋아했노라고 말하면서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슐로스도르프로 가는 길에 쾰른 시내 꽃집 여러 곳을 들러봤지만 동백꽃은 없었다. 대신 붉은 장미를 한 다발 샀다.


  슐로스도르프까지는 쾰른에서 벨기에 국경 쪽으로 한 시간가량 차를 몰고 가야 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마을의 높은 언덕에는 중세시대의 성이 자리 잡고 있어서 운치가 있었다. 성 반대편 언덕배기에 있는 교회의 종탑에서 오후의 종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졌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가라앉았다. 교회는 팔십여 명이 앉으면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아담했다. 잠을 설쳐 눈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뻑뻑했다. 나는 눈을 꼬옥 감았다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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